순수한 '덕질'이라지만 어느덧 제도권 정치에 주요한 변수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 자칭 '문파(文派)' 얘기다. CBS노컷뉴스는 수백통 문자폭탄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실체를 본격 파헤친다. [편집자 주]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문자메시지 캡처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휴대전화 '무음' 설정은 기본이다. 전화기를 두 대씩 쓰는 '투폰'은 유행이다.
문자메시지 수백통이 단번에 몰려드는 이른바 '문자폭탄' 속에서 업무를 지속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
개인을 향한 문자폭탄이 점차 위력을 더하면서 당 쇄신 방향이나 정책 관련 의사 결정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족 장애까지 들먹이며 '악담'"미친XX, 개XX, 소XX, … 이런 육두문자는 그나마 참을 만해요. 그런데 가족을 들먹이며 욕하실 때면 마음속에서 욱할 때가 있습니다. 국회의원이지만 저도 사람이잖아요."
최근 빗발치는 문자폭탄에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버릴까 고민했다던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의 토로다.
젊은 초선 의원들은 4·7 재보선 참패 직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감쌌던 걸 후회한다고 밝혔다가 사나흘 동안 온종일 문자폭탄에 시달려야 했다.
메시지 발신자와 내용을 일일이 확인할 순 없지만 육두문자나 성희롱은 부지기수고, 심한 경우 가정사나 가족의 장애까지 들먹이며 악담을 퍼붓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초선 의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24시간 욕을 먹다 보면 정말 멘붕(멘탈 붕괴)이 된다"며 "심할 때는 스마트폰이 먹통이 돼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그나마 덜 바쁜 오전 시간에 짬을 내서 여러 명에게 답장을 보냈다는 한 수도권 의원은 "왜 성의 없이 복사, 붙여넣기로 답장을 보내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이런 메시지 전부를 일명 문파(文派), 즉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자폭탄에 종종 가담했다는 한 지지자는 "저쪽 진영, 작전 세력이 한 짓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역구 민심 왜곡될라…의원들도 전전긍긍평소 '지역구 관리'에 사활을 거는 의원들은 향후 선거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협박을 받을 때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네가 잘나서 당선된 줄 아냐. 너랑 공천에서 붙은 ○○○를 찍을 걸 그랬다"라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했다는 전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직접 문자폭탄을 보내는 적극적 지지자는 수천 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의 강성 발언이 지역 당원이나 유권자들에게는 자칫 과대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