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만큼 지금 단계에서는 백신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 해 백신 수급과 접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지난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수급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을 향해 작심하고 이같이 경고했다.
야권이 백신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경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는 최근 야당의 공세가 정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 수준에서 벗어나 도를 넘었다고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에 대한 공격은 물론 국민들에게 백신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야당의 행태가 계속됐고, 최근에는 도를 지나쳤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에 대통령이 나서서 백신의 정치화를 경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야당은 정부가 지난 24일 화이자 백신 2천만명 분을 추가로 도입한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연일 독한 논평을 쏟아내며 공세를 이어갔다.
어르신들이 화이자 백신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25일 "백신 수급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여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산과 중국산 백신의 도입 검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백신 접종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인데 어느 국민이 기꺼이 중국산 백신을 접종받겠나"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같은날 청와대를 향한 공격에 가세했다. 안 대표는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을 겨냥해 "제가 작년 5월, '빠르면 연말에 백신이 나올 테니 대비해야 한다' 말했다"며 "그런데 당시 이에 '정치인의 블러핑(bluffing, 허세)'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청와대에 가 계신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발 입국을 금지한 대만은 지금까지 확진자가 1100명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문가들이 초기에 그렇게 주장했지만 의견이 무시당했다"면서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지금 맞고 있는 백신은 소용없게 될 수 있다"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도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박종민 기자
특히 국민의힘은 백신 총공세를 펼치면서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백신 확보 호소인이냐"(배준영 대변인), "백신 확보에 그렇게 자신있게 큰소리 치더니 굼벵이 짓만 했다"(정우택 전국위의장), "안전성이 제대로 점검이 안 된 이야기를 정책담당자들이 함부로 뱉는게 혼란의 원인"(주호영 원내대표)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청와대는 이런 자극적인 발언들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각인시킨다고 보고 본격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최근에 화이자 백신 2백만명 분을 추가로 계약하는 등 백신 확보에 성과를 내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치명률이 낮은 점 등을 들어 '우리 스케줄대로 가도 된다'는 자신감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계획대로 4월 말까지 300만명, 상반기 중으로 1,200만명 또는 그 이상의 접종이 시행될지 여부는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일"이라며 자신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형편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것 없이 우리의 형편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차질없이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타국과의 단순 비교를 지양했다.
우리나라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규모가 절대적으로 적은 만큼,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 대규모 유행을 겪은 뒤 백신을 서둘러 접종한 나라들과 상황 자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백신 문제는 곧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도 폭발력을 가진 이슈인 만큼, 청와대가 보다 선제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백신 접종과 코로나 방역은 대선 때까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야당의 무차별적인 공세 속에서 사실관계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