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2021.4 '공무상비밀누설' 피고인 A씨 결심공판 검찰 구형 中 |
검사 "피고인이 유출한 수도권 강화된 2단계 거리두기 조정 방안은 일반에 공개된 사실이 아니고 제한된 업무부처만 알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당시에 정부의 거리두기 완화 방침이 확정적이라거나 공개됐던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보호 필요성이 있는 비밀에도 해당합니다. 문서 현상과 내용의 특수성 코로나 19 업무 담당인 점을 살펴보면 공무상 비밀누설의 고의도 인정됩니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서울시 담당 공무원으로 성실히 복무하고 자수한 정황은 유리한 요소지만 온 국민 관심 집중된 사안을 공식 발표 전 누설해 혼란을 야기한 점은 가볍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징역 10월 및 증제 1호 몰수를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지난해 9월 방역당국의 공식 발표에 앞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수도권 등 2단계 조치 조정방안'이라는 제목이 붙은 공문 형식의 자료가 떠돈 적이 있었죠. 거리두기 조정안 유출 사건으로 이름이 붙어 방역당국의 수사 의뢰로 수사기관을 거쳐 이 사건은 현재 1심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 이 문건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이는 방역 업무를 담당했던 지자체 소속 공무원 A씨. 구체적으로 수도권에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2.5단계)가 시행 중이던 9월 10일 방역당국이 회의자료로 배포한 거리두기 조정 방안 문건 일부를 촬영해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가 친구가 이 사진을 외부로 나르며 유출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이 이러한 A씨의 행위에 대해 적용한 죄명은 공무원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공무상비밀누설죄. 1심 선고 전 마지막 재판이었던 이날 공판에 나온 검사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공식 발표 전에 문건을 누설해 혼란을 야기한 점은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A씨의 행위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그렇다고 아이디어 차원의 내용을 친구에게 먼저 알렸다고 징역까지 살아야 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을 겁니다. 또 반대로 '수위야 몰라도 확정도 안 된 사안을 공무원이 외부로 알렸으니 처벌은 받아야지'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죠. 변호인과 검찰이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 것도 정확히 이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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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캡처
2021.4 '공무상비밀누설' 피고인 A씨 혐의 中 |
전송한 자료 왼쪽 상단에는 붉은색으로 '대외주의' 표시가 돼 있고 그 내용에는 주요 시설별 구체적인 사회적인 거리두기 조치 조정 내용, 시행기간 등에 대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중략)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 전에 무분별하게 유출될 경우 허위 정보가 양산되거나 정부의 방역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되는 등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되어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
이 행위가 내부 내용이 외부로 알려졌다는 의미의 '누설'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가 이 재판의 쟁점입니다. 대법원 판례 상 공무상비밀누설의 비밀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하나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안 알려졌다고 다 비밀인 것은 아니고 알려질 시 불이익이 있어 보호할만한 것이라는 거죠.
이를 토대로 A씨를 기소한 검찰의 논리부터 살펴보면 이 문건의 내용은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고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인 A씨가 직무 과정에서 취득한 것으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 내용은 정부의 확정안도 아닌 아이디어 차원의 내용이고 외부에 알려질 경우 허위 정보가 생산되는 등 사회적 혼란 및 방역 업무의 지장을 초래할 불이익이 명백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입니다.
특히 문건 왼쪽 상단에 붉은 글씨로 '대외주의'가 쓰여 있는데 이는 비밀 사안이라는 뜻과 동시에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될 내용임을 A씨가 인지했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범행의 고의성이 있는 셈이니 그가 과거에 범죄전력이 없고 먼저 자수한 점, 공무원으로 장기간 성실히 국가에 복무한 점 등을 유리하게 참작해도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2021.4 '공무상비밀누설' 피고인 A씨 결심공판 변호인 최후의견 |
11일 시점에서도 객관적으로 감소세인 것을 인지하고 강화된 2단계가 원래 2단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국가의 기능에 위협이 초래됐는지 이 사건 공소사실과 비교해 말씀드리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파장이 크다', '사회적 혼란이 가중된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기재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변호인의 의견입니다. 다른 공무원의 개인 인적사항이나 확진자의 동선 등 개인 비밀 침해나 기본권 침해하는 내용은 전혀 아닙니다. 회의자료의 공개로 무조건 공무상 비밀누설이 된다고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는데 방역 위험을 입증할 실체적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변호인 의견입니다 |
반면 변호인은 부주의했지만 이를 형법상의 공무상 비밀로 보기는 지나치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당시 확진자 추세가 안정세에 접어들어 수도권에서 시행되던 거리두기 2.5단계 방안이 공문 내용처럼 9월 20일부터 완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던 점을 근거로 듭니다. 완화 가능성을 담은 보도들이 나오고 있었고 방역당국에서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이죠.
서울역광장 중구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박종민 기자
실제로 당시(2020년 9월 10일) 수도권 확진자는 그 전달 313명(441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내려와 7일 78명(전체 확진자 119명)→8일 98명(136명)→9일 100명(156명)→10일 98명(155명)으로 100명대의 비교적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방역당국 또한, 이 수치를 유지한다는 전제로 "추가적인 거리두기 연장은 필요 없을 것"(2020.9.7.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라며 완화 방침을 말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이 내용이 국민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제한된 카페 내 커피 취식이 언제쯤 풀리는지 등이 A씨의 친구를 포함해 모두의 관심사였고 이런 내용으로 회의를 하고 있다는 취지로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알린 것일 뿐 당국의 방역지침에 반대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목적은 없었다는 겁니다.
이에 더해 공개된 내용에 개인 인적사항이라던가 확진자의 동선 등 개인 비밀이 담기지 않아 구체적인 침해는 없었고 부적절했지만 A씨가 친구에게 보낸 취지 자체는 강화된 거리두기로 사회적 활동에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조금만 더 참으라'는 뜻으로 알린 점도 고려해달라는 게 변호인의 말입니다.
공무상비밀누설죄 대법원 판례 中 서울지법 1993. 9. 6. 선고 |
피고인이 1990년 3월경 위 실지감사귀청보고서 사본 1부를 언론사 기자 등에게 건네주어 신문에 위 보고서 내용이 보도되게 한 사실은 피고인도 자백하고 있고 기사 사본 등 증거도 있어 충분히 인정된다. 하지만 공무상비밀누설죄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서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이라 함은 국가공무원법 제60조에 규정된 '직무상 지득한 비밀'보다 좁고 엄격한 개념으로서 반드시 법령에 의하여 비밀로 규정되었거나 비밀로 분류 명시된 사항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 군사, 경제, 사회적 필요에 따라 비밀로 된 사항이나 정부나 공무소 또는 국민이 객관적, 일반적인 입장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된다 할 것이나 비밀로 규정되거나 분류된 바도 없고, 그 내용도 위와 같은 실질적인 비밀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이 단지 행정기관 내부에서 처리과정 중에 있는 중간문서라는 사유만으로 법령상의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
스마트이미지 제공
우리 대법원은 어떤 기준을 세우고 있는지도 한 번 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판결은 감사원 소속 감사관이 언론사 기자에게 내부 중간보고용으로 작성된 실지감사귀청보고서를 건네준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것으로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결과를 떠나서 지금 다루는 내용과 일정 부분 구조가 유사한 점이 있기에 어떤 점들을 판결 기준으로 삼았는지 참고할 만 것 같습니다.
공무상비밀누설죄의 목적은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비밀이 알려질 때의 위협을 보고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부 문서라 하여 그 자체의 유출을 이 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입니다. 이 죄의 비밀의 기준도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된 '직무상 지득한 비밀'보다 좁고 엄격한 개념이라는 점도 같이 들고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A씨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가 외부에 공유한 문건이 내부 중간보고용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이 내용이 공개됨으로 국가의 기능이 위협받았는지, 즉 방역당국의 공신력을 낮추거나 방역 업무의 어려움을 초래했는지, 국민 생활에 피해를 초래했는지가 중점적인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대외주의'로 취급된 이 문건이 이 법에서의 명백한 '비밀'인지도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2021.4 '공무상비밀누설' 피고인 A씨 결심공판 최후진술 中 |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 2020년 9월 10일 이후 8개월에 가까이 매 순간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공무원이라는 신분 책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 번도 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견디는 순간이 생소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2020년 1월 말부터 날마다 코로나 회의 자료를 항상 접하고 전파하고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게 너무 익숙해지고 한순간에 경각심이 무너졌습니다. 회의 시간에 자료가 필요한 다른 공무원에게 자료를 주려고 하는 도중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평상시에 다중 이용시설을 많이 이용하고 코로나에 지쳐 있던 터라 '그런데 가지 말라'고 설득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좀만 더 버티자' 이런 의미로 부주의하게 넘겼고 친구가 바깥으로 유출할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현실 직면이 너무 어려워서 도망쳐 살았고 직장에서 사람들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열심히 했는데 최선을 다해왔고 제 인생의 보람이었던 이 공직 생활에 대한 헌신이 한순간에 딱 실수로 인해 코로나 방역에 혼선을 줬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재판장님 저에게 있어서 직장은 저의 유일한 목표이자 전부입니다. 하루 한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그 자리가 주는 책임감으로 먼저 일어나서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코로나 연휴도 주말도 없이 일했습니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
A씨도 인정하듯 모두가 민감한 코로나19 시국 속에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악의가 없었더라도 방역 업무를 담당하며 알게 된 정보를 알린 것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데 큰 이견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악의는 없었다지만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알린 것도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형사소송절차는 단순 도덕적 귀책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닌 국가가 개인을 처벌하는 문제이기에 재판부는 공무상비밀누설죄의 판례에서의 엄격한 법리적인 기준들과 함께 여러 요소들을 꼼꼼하게 살펴볼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이달 말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