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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여성은 '출가외인'이라 시부모가 부양의무자?…"차별"

사건/사고

    기혼여성은 '출가외인'이라 시부모가 부양의무자?…"차별"

    희귀병 진단에 의료비 신청하려니 "시부모 소득내역 제출"
    질병관리청 "기초생활보장사업보다 더 완화된 기준" 해명
    인권위 "적용기준 달라…여성만 혼인상태 따라 부양관계 변경"

    스마트이미지 제공

     

    기혼여성에게만 부양의무자를 친부모가 아닌 '시부모'로 규정하고 있는 희귀질환자 관련 의료비 지원지침은 "합리적 사유가 없는 평등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7일 질병관리청장에게 성별에 따라 부양의무자를 달리 정하고 있는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의료지원사업) 지침에 차별적 요소가 없도록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기혼여성인 A씨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은 뒤 보건소에서 알게 된 의료지원사업을 통해 의료비를 신청하려던 중 "기혼여성은 '출가외인(出家外人)'이므로 시부모가 부양의무자가 된다"며 시부모의 소득내역 제출을 요청받았다.

    진단사실 자체를 시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A씨는 "이 제도로 내밀한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부당하다. 결혼한 남성과 달리 기혼여성은 친부모가 아닌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의무자로 지정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진정을 제기했다.

    희귀질환관리법에 근거한 의료지원사업은 질병관리청이 지정·공고한 926개 희귀질환 및 24개 중증난치질환에 대해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 기준에 따라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신청자의 소득·재산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대상자를 선정해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10%)·간병비(월 30만원)·특수식이 구입비 등을 지원한다.

    질병관리청은 조사과정에서 오히려 해당기준이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기초생보사업)보다 완화된 기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 사업은 기초생보사업의 부양의무자 가구 산정기준을 준용하고 있다"며 "개인의 민감정보가 시부모에게 노출될 것에 대한 우려는 공감하나 희귀질환의 치료가 어렵고 의료비 부담이 과중함을 고려해 친정부모의 소득재산조사를 면제하는 것이므로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기초생보사업과 의료지원사업의 기준 범위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료지원사업 지침 상 환자가 기혼여성일 경우 친부모는 부양의무자에서 제외되고 배우자의 부모(시부모)가 부양의무자에 포함되는 반면 기혼남성이 대상일 때는 친부모가 부양의무자에 들어가고 배우자의 부모(장인·장모)는 빠지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인권위는 "기초생보사업에서 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 범위는 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정하고 있어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직계혈족인 부모가 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에 해당된다"며 "다만, 기초생보사업은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및 부양의무이행여부 등을 조사·판정하는데 혼인한 딸은 친정부모에 대해, 혼인한 딸에 대해서는 친정부모가 부담하는 부양의무를 완화해 산정하고 있다"고 짚었다.

    혼인 여부와 성별이 차별 요소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도 꼽았다. 인권위는 "헌법 제11조 제1항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법 제2조 제3호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사유로 고용이나 재화·용역 이용 등 영역에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UN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제3조는 전 분야에서 여성의 완전한 발전 및 진보를 확보해줄 수 있는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남성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의료지원사업 지침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취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 사업과 기초생보사업의 부양의무자 적용기준은 동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취지와 목적이 다름에도 피진정인이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사업의 기준을 준용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피진정인은 진정인의 민원 관련 회신서에서 혼인한 여성은 '출가'한 존재이고, 혼인한 여성의 가족관계성을 고려할 때 시가, 시부모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전통적 가족개념 및 사회적 통념에 따라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의무자로 선정했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의 입장이 지금은 사라진 호주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의 이같은 입장은 여성이 혼인을 통해 '출가'해 배우자의 가(家)에 입적되는 존재라는 전통적 가족관계와 고정관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가치에 따른 호주제는 이미 오래 전에 폐지됐고 오늘날 경제활동 및 사회 전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족관계도 부부를 중심으로 가족구성원 개인의 자율적 의사가 존중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피진정인은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으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제도와 규범 속에 남아있는 성불평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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