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 법원이 소송을 제기한 요건이 안 된다며 각하 판결했다. 3년 전인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과 정반대 결론으로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0여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소송을 각하한다며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는 "판결문이 길어 결론만 말씀드린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서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결 근거를 설명했다. 아울러 원고가 소송에서 졌다고 판결하며 소송 비용 또한, 원고 측이 부담하라고 덧붙였다.{RELNEWS:right}
재판부는 추후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이 판결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당시 대법 전합은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다수 의견으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의 경우 당시 소수의견으로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전합 결정과 반대의견을 낸 바 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재판부는 당초 10일 예정됐던 선고를 이날로 급작스럽게 변경한 이유에 대해 '이 사건은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결 선고기일을 변경하고, 소송대리인들에게는 전자송달 및 전화연락 등으로 고지했다"고도 설명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피해자 및 유족 측은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해 온 강길 변호사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봐야 하지만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족인 임철호(86)씨는 "한국 판사와 한국 법원이 맞느냐.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입을 열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1심 선고기일이 당일 변경된 점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고 참석할 기회를 제대로 부여 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이 소송은 일제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국내 법원의 소송 중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피해자와 유족을 합친 인원이 80명을 넘고 원고소가(재판 승소시 얻고자 하는 금액)은 8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2015년 5월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후 일본 기업들이 소송에 응하지 않아 장기간 실질적인 심리는 진행되지 않았고 올해 3월에서야 재판부가 공시송달을 진행하며 재판 진행에 속도가 붙었다. 이와 함께 재판부가 선고기일을 지정하자 일본 기업들이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