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장기인 액션에 휴머니즘과 현실감을 적절히 조합하되, 신파는 배제하며 '제대로 된 생존'을 그려냈다. 이처럼 영화 '모가디슈'는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할지 적절하게 계산해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다.
대한민국이 UN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인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생각지도 못한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린다. 외교전 속 갈등을 일으켰던 남과 북은 오직 하나의 목표인 '생존'을 위해 외교전은 임시 휴전하고 하나로 뭉친다. 이제 자신들이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해 모가디슈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군함도'(2017) 이후 류승완 감독이 들고 온 이야기는 '생존'이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모가디슈'는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아프리카 북동부의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거짓말 같은 상황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움직여야 했던 남과 북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UN에 가입하려는 대한민국이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안기부 출신의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부터 대사 부인 김명희(김소진), 서기관 공수철(정만식), 사무원 조수진(김재화), 막내 사무원 박지은(박경혜)까지 여섯 명의 인원이 주 소말리아 한국대사관의 전부다.
이들은 한국보다 20년 앞서 아프리카 국가들과 대외 외교를 시작한 북한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탈취와 모략이 판치는 남과 북 대사관의 외교전(外交戰)은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전쟁이다. 외교전의 상대국인 북한 인물들의 대사는 자막으로 나오는데, 이는 북한 사투리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으나 북한을 하나의 외교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장치로 읽힌다.
영화 초반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지는 남과 북의 외교전은 당시의 남과 북, 그리고 소말리아의 시대 상황과 정치적 상황은 물론 주요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도 같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 관객들은 점차 총알이 빗발치는 내전의 상황에 놓일 준비를 마친 것이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소말리아 반군이 일으킨 내전이 본격화되면서 외교전은 내전으로 중심이 옮겨 오게 된다. 차라리 외교전이 낫다 싶을 정도로 무장 반군과 정부군 간의 충돌은 모가디슈를 전쟁터로 만든다. 피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것도 자국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머나먼 땅 모가디슈에 남은 남과 북 사람들에게 UN 가입이나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여전히 껄끄러운 사이지만 의심은 일단 뒤로 한 채 남과 북은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외교전을 통해 서로 부딪히고 들여다봐야 했던 그들이기에, 말 한마디 안 하는 타국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그들이기에 생존이라는 처절한 목표 아래 믿음으로 뭉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영화는 많은 부연설명을 하지 않지만, 지리적인 위치와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가 모든 걸 납득시킨다.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남과 북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어린아이조차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 상황,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 등 소말리아 내전의 참상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총격 소리를 생생하게 구현하며 당시의 상황이 더욱 피부로 와 닿게끔 만든다.
영화 후반 시가전과 카체이싱 장면이 등장하며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어김없이 발휘된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남한 대사관으로 오기까지의 과정 등 작은 장면들은 물론이고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필사의 탈출을 위해 책 등으로 무장한 자동차를 나눠 탄 채 총알 세례를 뚫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긴박감 넘치는 순간이다. 제작진은 이를 생동감 넘치면서도 숨 쉬는 것조차 잊게 만들 만큼 스릴 넘치게 완성했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또한 영화 초반부터 한신성 대사나 강대진 참사관 등 등장인물을 보여줄 때, 특수한 상황 속 특수한 직업군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들 역시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영화를 더욱 극적이고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장치 중 하나다.
물론 안기부 출신 강대진이 존재하지만 영화 '아르고'(감독 벤 애플렉)에서처럼 훈련된 CIA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고립된 이들을 구출시키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정치적 갈등 상황을 넘어서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쳐 연대하고 이를 통해 극한의 상황을 헤쳐나간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보기에도 이들이 처한 상황과 탈출 과정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모가디슈'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이처럼 필사의 탈출과 생존이라는 이야기를 거대한 블록버스터 안에서 그려내는 과정에서 이른바 '신파'의 요소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 사이에 넣을 수 있는 지나친 드라마나 신파를 버리며 영화는 감정적으로 질척거리지 않고 아쉬움마저 남을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게 되는데 감독과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점과 장점이 적절히 조합된 결과로 보인다.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등 배우들의 앙상블은 물론이고 모로코 올로케이션으로 빚어낸 풍광과 빛의 완급 조절을 통해 이뤄낸 미장센까지 '모가디슈'는 무더운 여름 관객들을 사로잡을 요소가 가득하다.
121분 상영, 7월 28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