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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39°C찍힌 문자도 읽씹…폭염에 '방치'된 택배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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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영상]39°C찍힌 문자도 읽씹…폭염에 '방치'된 택배기사들

    핵심요약

    폭염 속 선풍기 없이 상하차 작업하던 50대 택배기사 실신…"7월 한 달만 더위로 4명 쓰러져"
    택배노조 "택배사, 27일부터 시행중인 생활물류법 제대로 이행해야…국토부 관리감독도 필요"

    부산 롯데택배 사상터미널 명지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남모(57)씨가 28일 오전 9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왼쪽은 쓰러진 남씨가 이송되는 모습. 오른쪽은 당시 대리점 안을 측정한 온도계.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부산 롯데택배 사상터미널 명지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남모(57)씨가 28일 오전 9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왼쪽은 쓰러진 남씨가 이송되는 모습. 오른쪽은 당시 대리점 안을 측정한 온도계.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택배기사 남모(57)씨가 생활용품 매장을 찾았다.

    "온도계 어디 있나요?"
     
    온도와 습도가 함께 표시되는 네모난 온도계를 집어들고 남씨가 서둘러 매장을 나섰다.

    4년차 택배 기사 남씨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아침인데도 창고 안 공기는 한낮처럼 뜨거웠다. 양 옆으로 높게 쌓아놓은 박스 속에서 일하다보면 뜨거운 공기에 숨쉬기도 힘들었다.

    '소장님, 너무 더워서 일 못하겠습니다. 선풍기라도 설치해 주세요.'

    대리점 소장에게 선풍기를 설치해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현장 기온이 찍힌 온도계 사진도 같이 찍어 보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답이 오지 않았다. 남씨와 동료들이 찍은 온도계 사진에는 '온도 39.0·습도 42%' 숫자가 선명했다.
    택배 물류센터의 모습. 기사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택배 물류센터의 모습. 기사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그리고 다음날, 남씨는 "어지럽다"는 한 마디를 내뱉고 그대로 쓰러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주저앉은 그를 동료들이 발견해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요. 키 170cm에 몸무게 60kg로 왜소한 편이지만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조기 축구하다 요즘은 주말마다 자전거도 타는데 이렇게 쓰러질 줄은 몰랐어요."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지만 이상 소견은 없었다는 그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열에 의해 쓰러진 것 같다고 한다"고 전했다.

    폭염에서 일하다 쓰러진 택배기사는 남씨뿐만이 아니다.

    29일 전국택배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26일 권모(51)씨가 배송 현장에서 탈진해 병원으로 이송됐고, 지난 23일 서울복합물류센터 내에서 택배기사가 차량에서 탈진해 응급처치를 받는 등 4명의 택배기사가 더위 속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태풍오면 비 맞고 화장실도 없어 노상방뇨···"낡은 선풍기, 고장 잦아"

    택배기사들은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열악한 근무 '환경' 역시 기사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상남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7년차 택배기사 박모(40)씨는 "터미널이 실내에 있는 곳 빼고는 에어컨이 있는 곳은 전무하다"며 "저도 허허벌판에서 택배상자를 차에 싣는다"고 말한다.

    지붕이 없어 비가 올 때는 맨몸으로 비를 맞고 일을 하기도 한다.
    택배기사들이 비를 피해 작업하는 모습.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택배기사들이 비를 피해 작업하는 모습.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우산 쓰고 상자를 나를 수 없으니까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아야 해요. 전에 태풍 왔을 때도 비 그대로 다 맞았어요."

    비오는 날 굴다리 밑에서 짐을 정리하거나, 대리점에 화장실이 없어 노상방뇨를 하기도 했다. 기사들이 화장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현재는 화장실이 마련됐다고 한다.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다.

    폭염에 택배기사들이 연이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택배사들은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CJ대한통운은 쿨스카프 4만 400여개를 현장에 배포했다. 터미널별 상황에 맞게 에어컨과 선풍기, 제빙기 등 냉방기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택배기사 휴게실 운영, 식염포도당 제공도 병행중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택배사가 지난 27일부터 본격 시행된 생활물류법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36조 3항에 따르면, 택배사는 혹서·혹한·폭우 또는 폭설 등 기상악화로 생활물류서비스종사자의 활동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한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택배연대노조 강민욱 교육선전국장은 "택배기사들은 야외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기 때문에 냉방대책이 절실한데 택배사들의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라며 "기사들을 사실상 폭염 속에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에서 6년째 택배기사로 근무중인 정모(50)씨는 "터미널에 선풍기가 있는데 처음부터 낡은 선풍기를 제공해서 고장이 자주 난다"며 "근무하는 사람은 130명인데 선풍기는 12개고 그마저도 3분의 1은 고장이 났다"고 전했다.

    택배노조는 "현재 시행중인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따라 폭염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국토교통부가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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