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뉴스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가해행위 당시가 아닌 장애 판정 등 성범죄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전직 테니스 선수 김은희씨가 가해자 코치 A씨(41)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김씨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19일 확정했다.
이번 소송은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김씨가 17년 전에 당한 성폭력 피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법원의 최종 판단에 관심이 모아졌다. 통상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10년이 지나면 시효가 끝나 청구할 수 없다.
김씨의 경우 초등학생 때인 2001~2002년 코치 A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지만 어린 시절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뒤에 상담소와 법률 전문기관을 찾았지만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대답을 듣고 고소를 포기했다.
그런 김씨가 코치 A씨를 우연히 만난 건 2016년 5월 한 테니스 대회에서다. 이후 김씨는 악몽과 두통, 불안 등 이상증세에 시달리면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같은해 6월 병원에 간 김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재판의 쟁점은 코치 A씨를 상대로 한 김씨의 손해배상청구권에 시효가 남았는지 여부였다. A씨는 마지막 범행이 있었던 2002년부터 10년이 지나 김씨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불법행위로 인한 김씨의 손해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김씨가 최초 진단받은 2016년 6월에 잠재하고 있던 손해가 비로소 현실화됐다고 봐야 한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을 확정했다. 그러면서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을 때를 의미한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