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발사하고 29일 공개한 화성-8형 미사일 발사 모습. 뉴스1 제공북한은 29일 관영매체를 통해 전날 쏜 미사일이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시험발사"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분리된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의 유도기동성과 활공비행 특성을 비롯한 기술적 지표들을 확증했다"며 "목적했던 모든 기술적 지표들이 설계상 요구에 만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군 당국도 "개발 초기 단계로 실전배치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해당 사실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 종합해 보면 선진국들이 보유하거나 개발하고 있는 극초음속 무기 성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극초음속 활공체(HGV) 개발 초기 단계에서 비행 특성을 실증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탐지와 요격이 쉽지 않아 우리 군 미사일 방어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남북한 군비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도미사일처럼 빠르고, 순항미사일처럼 경로 자유자재…개발에 열 올리는 미·중·러
극초음속(Hypersonic)이란 음속(340m/s, 마하 1) 5배, 즉 마하 5 이상을 뜻한다. 로켓엔진을 쓰는 탄도미사일 같은 경우 상승단계 이후엔 마하 5 이상 속도가 나올 수 있지만, 이를 극초음속 무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순항미사일처럼 비행경로를 자유자재로 바꾸기는 힘들어서다.
순항미사일은 궤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데 비행기와 똑같은 터보팬, 즉 제트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도미사일보다 느리고 요격이 쉽다. 순항미사일을 극초음속으로 만들려면 더 빠른 스크램제트 엔진을 사용해야 하는데,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다.
극초음속 무기가 가진 강점은 탄도미사일처럼 빠르되, 순항미사일처럼 비행 경로를 바꿀 수 있어 빠른 시간 내 원하는 표적을 원하는 비행경로로 타격하는 데 있다. 즉 탄도·순항미사일이 가진 특성을 모두 갖춘 셈이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초록색 선)과 HGV(빨간색 선)가 비행하는 모습. 파란 점선은 레이더 탐지 범위.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Hypersonic Weapon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극초음속 무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극초음속 활공체(HGV)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이다. HGV는 탄도미사일을 발사체로 하되 실제 탄두 부분엔 자체 추력 없이 활공하는(gliding) 비행체를 실어 날려보내는 방식이다.
탄도미사일은 원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상승단계 이후 정점고도에 가고 나면 극초음속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분리된 비행체는 따로 추진력이 없기 때문에 날개를 움직이는 식으로 비행경로를 바꾼다. 배로 치면 돛을 바꿔 방향을 조절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반면 HCM은 순항미사일에 스크램제트 엔진을 달아 발사 초기 단계부터 극초음속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HGV가 탄도미사일에 극초음속 탄두를 실어 날리는 비교적 쉬운 방식이라면, HCM은 처음부터 순항미사일을 극초음속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후자가 훨씬 어렵다.
다만 러시아는 지난해와 올해 '치르콘' HC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비행속도 마하 9, 사거리 1000km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ICBM에 실어 마하 20을 넘긴다는 HGV '아방가르드'도 개발해 실전배치한 상태다. 중국은 둥펑(DF)-17이라는 HGV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보다는 조금 뒤처진 미국도 HAWC, ARRW 등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8차 당 대회서 언급된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탄도미사일에 실어 HGV 날려
합동참모본부는 28일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을 언론에 알리며 "군은 오늘 06시 40분쯤 북한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쪽으로 발사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며 "현재 포착된 제원의 특성을 고려하여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미사일은 비행거리, 속도, 고도 등 제원이 기존 탄도미사일 또는 순항미사일이 가진 일반적 비행 특성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의문은 다음 날 풀렸다. 북한이 "9월 28일 오전 자강도 룡림군 도양리에서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앞서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신형 탄도로케트들에 적용할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를 비롯한 각종 전투적 사명의 탄두개발 연구를 끝내고 시험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전부터 연구는 진행해 왔고 당 대회에서 언급한 뒤 8개월 뒤인 9월에 공개된 셈이다.
일단 '화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점에서 액체연료 기반 탄도미사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화성 계열 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속하는 15형까지인데, 갑자기 8형이 등장했다. 화성-7형은 노동이고 화성-9형은 스커드-ER(사거리 연장형)인데, 이를 만들던 시기 함께 개발하던 미사일을 기반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공개된 미사일 발사 사진을 보면 1단 로켓은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과 비슷한 탄도미사일인데, 탄두 부분에 날개가 따로 달려 있다. 전형적인 HGV처럼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띄운 뒤, 비행체를 분리해 활공시키는 기술을 테스트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북한은 이번이 "첫 시험발사"라며 "능동구간에서 미사일의 비행 조종성과 안정성을 확증하고 분리된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의 유도 기동성과 활공비행특성을 비롯한 기술적 지표들을 확증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북한은 이른바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과 그 개량형들을 여러 차례 발사했다. KN-23은 목표를 노리고 내려가는 종말단계에서 활공한 뒤 풀업 기동(하강단계 상승비행)을 하는데, 이를 통해 북한이 관련 기술 노하우를 쌓아 왔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선진국 극초음속 무기엔 못 미쳐…그럼에도 걱정되는 남북 군비경쟁
다만 이 미사일을 아방가르드 등 군사강국들이 개발한 장거리 HGV와 같은 대열에 놓고 볼 수는 없다. 극초음속까지 속도를 올리는 그 자체가 큰 관건인데 여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며, 최신형 HGV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어서다.
합동참모본부는 29일 오후 기자들에게 "개발 초기 단계로 실전배치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한미연합자산으로 탐지 및 요격이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탐지된 미사일 정점고도는 30km 이하, 마하 3 정도로 전해졌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이 기술적으로 '극초음속'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를 '극초음속 무기'라고 하지는 않는데, 활공비행체가 마하 3 정도 속도라면 활공 자체는 성공했더라도 '판을 뒤집는' 극초음속 무기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탐지된 정보와 사진 등을 볼 때 북한이 마하 5~8 정도, 즉 극초음속을 약간 넘는 HGV를 만들 수는 있다"면서도 "KN-23도 활공비행을 할 때는 마하 5 이상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레이더 반사면적(RCS)이 줄어들기 때문에 탐지가 어려워지지만 선진국들이 개발하고 있는 HGV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거리가 짧아 미국 본토 등을 노리진 못하더라도, 탐지와 요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진행될수록 우리 군이 대응할 수단이 마땅찮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탐지 문제가 있다. HGV 특성상 속도가 빨라 레이더로도 잡기 어렵고, 열추적으로도 찾아내기 어렵다. HGV엔 열을 내는 엔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면서도 비행경로를 비교적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 요격도 어려워진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탄도에서 순항, 극초음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사일 체계를 완성하여 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력, 자위적 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며 "강대강, 선대선 등 무력과 대화 모두 준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풀이했다.
한편으론 지난 15일 우리 군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고위력 탄도미사일, 초음속 순항미사일 등을 공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북한도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 '장군멍군'식 대응을 하고 있다고도 풀이된다.
'첫 시험발사'라고 했다는 점에서 실제 성능은 어떨지 몰라도, 언론을 통해 이러한 첨단무기들이 계속 공개되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걱정하던 남북한 군비경쟁에 불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