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깨동무] IN 코너 : 여순사건을 그리는 화가들 |
① 15m 화폭에 담긴 73년 전 여순사건…"질곡의 역사, 양심이 누른 붓" (계속) |
그림의 시작은 전남
여수의 한 바닷가.
겁에 질린 얼굴
을 한 마을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다. 이들 앞에 선 한 소년도 두려움에 떨며 항복하고 있다. 주변에는
시체들이 즐비하고, 그 옆엔 확인 사살을 위해
총을 든 군인들이 어슬렁 거린다.
역사적 사실 여순사건, 화폭에 담기까지
여수지역 작가
강종열 화백(70)이 3년 동안 혼을 담아 그려낸 작품, '
여순사건'이다.
200호 5개, 총 15m의 대작엔 73년 전 한이 서린 여순사건의 역사가 담겨 있다.
강 화백이 담고자 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또 공포, 원통함, 처참함, 슬픔 등 산 자와 죽은 자가 겪은
여순사건의 참상이다. 그림 전체의 색채를 통해서도 여순사건의 비극을 표현했는데 밝은 색 하나 없는
어두운 색채는 여순사건의 한(恨) 서린 암울한 분위기를 대변한다.
15m 대작 '여순사건' 일부. 박명신 VJ"구상과 스케치만 1년이 걸렸습니다. 깊은 곳에 있는
심정을 끄집어 내어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작품을 보는 이들이 눈이 아닌 마음으로
여순사건의 한(恨)을 마주하도록 질곡된 역사를 온 힘을 다해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강 화백은 '동백꽃' 화가로 유명하다. 겨울에 꿋꿋하게 피어나는 꽃 '동백'을 그린 세월만 수십 년이다. 그런 그가 여순사건을 그리게 된 이유는 뭘까.
"영원한
마음의 숙제였다"고 말한 강 화백은 여순사건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일은 좌익과 우익의 자손들이 모두 살아있는 시대에서 부담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역의 아픔으로 남은 이 사건을 작가로서 눈 감을 수 없었다.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그 나라의 풍경을 그려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곳은 우리나라 6.25 이후 처럼 전쟁으로 인한 처참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풍경을 그릴 때가 아니다."
강 화백은 '
작가의 양심'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왜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여순사건을 그리는 데는 멈칫하고 있었나'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순사건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미룰 수 없는 숙제, 3년의 작업 "원통함 느끼려 죽은 시늉도"
"여순사건은 작가로서 특히 이 지역의 생존 작가로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어요. 특별한 의미라기보다
해야한다는 중압감이었죠. 제가 여수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면 이번 같은 작품은 그릴 수 없었을 거예요. 또 내가 그리지 않으면
후배들은 더 쉽지 않았을 것 같구요. 여든살쯤 하려 한 작업을 앞당겨 하게 됐죠."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1937년 작품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독일 콘도르 비행단이 무차별 폭격해 1천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사건을 고발한 작품이다. 기이하고 입체적인 형상에 무채색을 입혀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했다.
강종열 화백이 책임감을 가지고 그린 이번 작품에 '여순사건'이란 이름을 붙인 건 소도시 이름을 작품명으로 달아 그린 피카소와 같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을
널리 알리고자 한 바람이 담겼다.
'내가 먼저 죽어봐야 한다' 는 생각으로 표현한 '사살된 남자' (강종열 作). 박명신 VJ강 화백은 '여순사건' 대작을 그리는 3년의 시간을 고통의 시간이라 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망연자실한 얼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시신의 얼굴 등 역사의
원통함이 붓터치 하나하나로 다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 죽은 자들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죽어봐야 한다며 옷을 다 벗고 바닥에 누워
죽음을 느끼려고 했다. 이것은 '사살된 남자' 라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죽어 봐야 안다. 고통을 느껴봐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죽는 시늉까지 했죠. 감정 없이는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려야 해요. 그래야만 그들의 원통함이 붓터치 하나하나로 다 나올 수 있죠. 인물 자체도 그 당시 때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 사회상을 보는 것과 같이 느낌을 살려 그리는 게 그림의 역할이니까요."
73년 만에 만난 군인과 민간인…손 잡고 평화로
'여순사건'의 주제는 '
상생과 화해'다. 그림 중앙에 군인과 민간인 둘이 악수를 하는 장면을 통해 '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두 사람의 악수는 지금이라도 화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 자유, 화합으로 나아가자는 바람이다. 그림 속 주변 사람들은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며 울며 기도하고 있는데 '화해를 못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냐'는 회한을 표현했다.
"작가의 사상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힘들죠. 이 그림은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민간인과 군인의 악수, 십자가, 주변 사람들의 기도와 눈물 등이 73년 만의 화해와 상생을 말하고 있죠."
'트라우마' (강종열 作). 박명신 VJ
대작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여순사건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작품 '여순사건'이 대주제를 담았다면 그 안의 에피소드와 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담은 '무너진 하늘', 여순사건 등 비극적인 역사가 남긴 상처를 그린 '트라우마', 여순사건이 발생하기 전 암울한 암시를 담은 '전조' 등. 아울러 수십 편의 목탄화도 그려졌다.
이 작품들을 포함한 80여 점은 '여수의 해원' 이란 주제로 오는 19일부터 한달 간 여수엑스포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기념하는 강 화백의 첫 여순사건 전이면서 100번째 개인전이기도 하다. 또 이번 전시회에는 여순사건을 미래융합기술로 재현한 가상공간도 마련돼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강 화백은 작품 '여순사건'을 포함한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에요. 인간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거잖아요.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잘못된 이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면 좋은지, 젊은 세대도 이 작품 앞에서 이와 같은
물음을 던져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