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아수라장'이란 단어가 가진 이미지를 인간들을 통해 구현해낸다면 이런 모습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현실에 지옥을 불러들인 인간들로 인해 혼란과 공포에 빠진 세상을 그려낸 뒤 묻는다. 인간의 자율성이란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서울 한복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인간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하더니 불에 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불안과 혼란에 휩싸이고, 이를 틈타 신흥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사람들을 현혹하기 시작한다.
새진리회의 정진수 의장은 죄지은 사람만이 고지를 받으며, 이 모든 현상은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신의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화살촉 집단들이 신의 의도에 반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다니면서 세상은 또 다른 지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새진리회에 맞서 민혜진 변호사는 세상을 신이 아닌 인간의 것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전작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통해 냉혹하고 잔혹한 세계관, 맹목적 믿음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를 보여줬던 연상호 감독이 '지옥'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솔직한 세계관을 드러냈다. 감독은 인간이란 지옥 그리고 인간이란 희망, 이 양면적인 속성에 관해 질문한다.
'지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고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자 인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잠식당해 혼란에 빠지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인간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이 나타난다.
공포에 휘둘려 자신을 놓아버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신이라는 존재에 맹목적으로 매달린다. 매달릴 곳이 없어 신에 매달리는 것일 테지만, 어쩌면 그들이 매달리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말을 전한다고 칭하는 또 다른 인간들, 바로 새진리회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당장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타개해 줄 것 같이 보이는 실체가 존재하는 '인간'에게 이상하리만치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만든다.
이러한 맹목성은 결국 인간 개개인이 가진 자율성을 내려놓게 만든다. 자율성을 잃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를 거부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그저 지옥이다. 공포에 굴종한 인간들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공포에 떠는 인간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새진리회와 화살촉이다.
새진리회는 믿음과 말이라는 정신적인 방식으로, 화살촉은 물리적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폭력적인 믿음을 강요한다.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은 폭력적인 인간과 집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새로운 정의로 만든다. 이러한 새진리회와 화살촉은 인간이 가진 극단적인 일면, 즉 기만과 폭력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존재이자 집단이다. 이들을 보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작금의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우리네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시리즈에서 인간 세상을 공포와 혼돈에 빠뜨린 지옥행을 고지하는 천사나 고지를 시연하는 지옥 사자들의 정체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실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가는 '지옥'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천사와 사자들은 하나의 '계기'일 뿐,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 즉 인간의 자율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 세계의 현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지점이다. 그렇게 '지옥'은 자연스럽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지 질문한다. 자율성의 표면적 의미에만 기대어 폭력을 휘두르는 삶을 경계할 것인가, 아니면 자율성과 믿음으로 가장한 폭력에 무너질 것인가에 대한 답은 스스로 구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인간이란 지옥을 조금이라도 사람 사는 곳답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이다. 당장 눈앞의 공포 탓에 혼돈에 빠져 현실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발견하고 이어가게 된다. 진경훈 형사, 민혜진 변호사, 배영재, 송소현, 그들의 아기 튼튼이, 튼튼이를 지켜내려는 배영재와 송소현을 바라보던 아파트 주민들 등 모든 사람이 '지옥' 속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선사한 무작위적인 폭력, 공포에 떨던 인간들과 그 공포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인간들이 배영재와 송소현의 저항을 목도했다. 폭력에 저항해 한 생명을 살려내는 광경을 마주했고, 저항의 생존자이자 결과물인 튼튼이라는 실체적인 존재를 봄으로써 비로소 실체 없는 공포에 맞서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분명 '지옥'이 가진 문제점도 존재한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이고 압도적인 공포감을 통해 인간의 자율성을 빼앗는 과정이 가진 간단함과, 이를 드러내는 방식의 폭력성은 쉽게 보기 힘들다. 이 시리즈가 무서운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쉽고 빠르게 공포에 무릎 꿇는다는 것이다. '지옥'을 보는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가고, 공포와 폭력에 무기력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 자체가 지옥이기도 하다.
그러한 '지옥'의 디스토피아와 냉소 가운데서 현실이나 시청자가 지옥에 남겨지기 않기 위해서는 '지옥'에 야트막하게 깔린 희망의 끈을 붙잡아야 한다.
'지옥'의 시선은 후반부에 이르러 폭력과 맹목적 믿음에 저항하는 인간들을 바라본다. 극 중 진경훈 형사의 말처럼 인간의 자율성이 가진 양면성 중 희망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이 어떤 방식,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이 사는 세계는 지옥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세계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이건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고, '지옥'의 엔딩을 보며 어떻게든 희망을 잡으려 애쓰게 된다.
총 6화, 11월 19일 넷플릭스 공개, 청소년 관람 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