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8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재판 선고기일
|
재판장 "재판부가 과거 기록과 재심 청구를 하면서 피고인이 주장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파악한 진실과 피고인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진실이 다르거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피고인이 재심 대상 판결로 징역을 복역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셨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과거 판결에 대해 위로와 함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디 명예를 회복하고 쌓였던 응어리를 벗어버리고 보다 자유롭고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선고를 마치겠습니다"
|
재판부가 무죄 선고에 덧붙여 과거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에 사과하자 70대 노인 A씨는 재판 내내 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1970년 10월 13일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꼭 같은 장소에서 '보안 사범'으로 전락했던 평범한 대학생이 51년 만에 백발의 노인이 돼 '주홍글씨'를 지워내는 순간입니다.
1970년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가 보낸 학자금 몇 푼과 편지에 평범한 대학생에서 졸지에 '간첩'으로 몰리고 모진 고문 후 옥살이까지 한 A씨.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던 아버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이라는 이유로 편지와 학자금을 일방적으로 받은 것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구성원과의 통신하고 자금을 수수한 것이 돼 징역형까지 선고됐는데요, 이 억울함을 혼자 간직해온 A씨가 5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사연과 이후 이어진 법정에서의 이야기를 그간 법정B컷에서 상세하게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21.4.30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청구 2차 심문기일
|
A씨 "그때 주변에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했냐'거나 '아버지의 활동이 자랑스러운 듯 말을 했다고 한 적이 있냐'고 해서 그런 일은 없으니 계속 부인했는데 두 번 물어보지도 않고 양 팔목에 수건을 감고 포승줄로 저를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다리를 팔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해서 했더니 겨드랑이에 파이프를 집어서 들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책상 두 개 사이에 저를 걸쳐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얼굴에 큰 수건을 덮고 물을 부으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숨이 넘어갈라 하면 잠시 수건을 들어주더라고요. 잠시 헉헉 숨을 쉬면 이제 시인하라고 안 하면 다시 (고문을) 시작했습니다.
|
재심 과정을 요약하자면 A씨 측은 그간 재판에서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가 수시로 있었고 이에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한 내용이 진술조서에 담겼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수사관들은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했냐" "아버지의 활동이 자랑스러운 듯 말을 한 적이 있냐"며 이를 부인하면 인정할 때까지 폭언과 구타 심지어 도구까지 이용해 고문했다는 게 A씨의 말이었습니다.
아울러 경찰이 최초 A씨를 체포할 때 영장을 제시하거나 받고 있는 혐의와 변호인 선임권 등에 대해 고지하지 않은 채 불법 체포했고 체포 시점 또한, 보고서에 허위로 작성한 점도 재심 청구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21.12.8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재판 판결 中
|
인사와 안부 수준을 넘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의 대면이나 그 목적수행을 위한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중략) 피고인이 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받았을 뿐이고 반국가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을 반국가단체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사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
재심 재판부 또한, A씨가 가혹 행위를 당한 점은 입증이 부족하지만 나머지 불법 체포 등은 있었다고 판단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재심 재판에서 A씨가 아버지로부터 편지와 학자금을 일방적으로 받았을 뿐 반국가 단체에 이익이 되는 행위를 했거나 국가의 존립 혹은 안전을 해칠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 내용은 "너 자신의 운명을 너 자신이 개척하기를 바란다" 등 아들에게 보내는 인사와 안부 수준일 뿐이고 송금한 돈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A씨가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로 모두 사용한 점을 재판부는 무죄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이렇게만 보면 재심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준비부터 이 결과를 받을 때까지 그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재심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만 하는 거창한 절차로 알았던 A씨는 우연한 계기로 2018년 겨울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이후 변호인단과 함께 흩어져 있던 50년 전 일에 관한 기록을 모아가는 작업을 2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다른 역사적 사안들과 달리 정말 A씨 만이 기억하는 일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입증할 자료 자체도 많지 않았고 여기에 수사 자료를 가진 검찰마저 중요한 기록 제출을 거부하며 재심 준비에는 난관이 많았습니다. 이에 A씨 변호인단은 소송까지 하는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쳤고 마침내 이를 통해 확보한 경찰의 '체포보고서' 등 수사 기록에서 위법의 정황이 드러나며 A씨는 그제서야 재심 청구에 이를 수 있게 됐습니다.
21.10.22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재판 결심
|
재판장 "검사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검사 "양형부당으로 항소하였습니다만 법과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고자 합니다." (중략) 재판장 "옛날 기록에 증거 목록이 따로 안 보이는 거 같은데요. 검찰에서 증거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검사 "당심에 이르러 재심 결정 절차에서 재심 청구인이었던 피고인 진술 그리고 지인의 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가혹행위의 실체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증거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헌법과 형법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그랬던 검찰이 재심 재판을 거치며 보여준 변화도 뜻깊었습니다. 지난해 3월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심문기일 당시만 해도 공판에 나온 검사는 A씨의 주장을 "기각해달라"거나 변호인의 자료 제출 요구에 시큰둥한 태도를 유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 절차를 밟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재심 결심에 이르러서는 "이 사건 가혹 행위는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이례적으로 무죄를 구형하기도 했습니다. A씨가 수사기관에서 당한 고문과 폭행이 비록 자신의 기억 말고는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부족해 재심 사유가 되지 못했지만 이 재판을 지켜봐 온 검사의 판단을 바꾼 셈입니다.
연합뉴스21.10.22 서울중앙지법 A씨 재심 재판 결심
|
변호인 "다니던 대학교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됐죠?" A씨 "4학년 1학기 등록금까지 냈는데 경찰에 체포되고 조사 받으면서도 쉽게 풀려나지 못하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한 사람을 면회하게 해주면 제가 휴학계라도 내겠다고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에 제적 처분이 됐죠. 변호인 "피고인은 결국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 낙인이 찍혔는데 이걸로 기업 취직은 어려웠죠?" A씨 "대학에 다닐 당시만 해도 제가 여러 군데서 뭐 입사하게 해줄 테니 원서를 내라고 말도 받았었는데 (형을 살고 나오니) 시청에서 발부하는 증명서가 있는데 그걸 붙여서 원서에 내게 돼있었어요. 그 증명서를 받으려 하니까 처벌 기록이 남아서 도저히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취직은 할 수 없었습니다.
|
50년 만에 선고된 무죄도, 검찰의 달라진 변화도 A씨가 그간 겪은 고초를 모두 위로하기에는 턱 없는 일임은 자명합니다. 엄혹했던 군부 시절 평범한 대학생에게 하루아침에 새겨진 '보안사범'이라는 낙인은 꿈 많던 청춘의 삶과 일상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형기를 마치고도 수사기관의 관찰 대상이 돼 1년에 몇 번이고 경찰 정보과에 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계속 써내야 했고 집에도 걸핏하면 정보경찰들이 찾아와 A씨를 감시했습니다. 어떤 기록을 떼도 적힌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라는 주홍글씨로 취업은 생각도 못 했고 떠밀려가는 대로 말 그대로 "살아냈다"는 게 그의 말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보다 늘 그를 짓눌러왔던 건 이러한 억울함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고 사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혹시나 과거의 처벌 이력이 남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삶마저 흔드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 혼자만 간직해왔습니다. 그러다 마무리가 다와 가는 삶의 여정에 이 아픔을 묻고 가려니 도저히 눈을 편히 감을 수 없었다는 게 A씨가 재심 청구를 한 이유입니다.
그랬기에 어쩌면 무죄라는 법적 언어 만큼이나 A씨가 듣고 싶었던 말은 자신에게 그토록 잔혹했던 국가 권력의 사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두려웠던 법정에 A씨가 스스로 다시 피고인을 자처했던 이유기도 합니다. 재판장의 사과에 아무 말 없이 참아 온 눈물만 쏟아내던 A씨. 1년 3개월의 재심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됐지만 재판부의 말처럼 이번 판결로 A씨가 앞으로의 생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응어리를 벗어던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