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부산 영도구에 사는 A(39.여) 씨는 넉 달 전 출산 기억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출산 예정일을 두 달 이상 앞두고 미세한 복통을 느낀 A씨는 평소 다니는 병원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어 인근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동네 산부인과는 자궁문이 열려 있어 출산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다른 병원을 갈 것을 권유했다. A 씨가 찾은 의원이 분만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무거운 몸을 이끈채 주치의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 A씨는 택시로 30분 넘게 걸리는 바람에 급기야 양수가 터지고 말았고, 택시기사의 기지로 서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목적지를 돌리면서 다행히 지금의 아이와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당시 A 씨의 처지는 부산에 살고 있는 산모라면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부산 구·군별 산부인과 중 분만 가능한 병·의원 현황. 그래픽=박진홍 기자부산시에 따르면, 1월 3일 기준 부산지역 산부인과 수는 127곳이다. 이 가운데 분만실을 보유한 산부인과는 32곳에 불과하다.
부산지역 전체 산부인과 가운데 75%가 '산과'라는 명패는 달았지만, 실제 산모가 출산할 수 있는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셈이다.
지난 2011년 만에도 분만실이 있는 산부인과가 69곳(보건복지부 집계)에 달했던 것과 비하면 10년 새 반토막 밑으로 떨어졌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는 금정‧사상‧동래‧강서‧남구에 겨우 1곳씩 있다.
기장군과 ‧수영‧동구에는 2곳, 북‧해운대‧사하‧서구에 3곳, 연제구와 부산진구에 각각 4곳과 5곳씩 집중돼 있다.
부산에서 한 해 출생아 수가 가장 적은 중구와 그 다음으로 낮은 영도구 이 두 곳에는 분만실을 갖춘 의료기관이 아예 없어 지역별 불균형도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부산시 16개 구·군 출생통계. 그래픽=박진홍 기자낮은 출산율로 인한 분만 건수 감소,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야간·고위험 분만 등 고강도 업무로 전공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대부분의 산부인과는 분만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산과 기피 현상으로 젊은 의사 수혈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관련 전문의도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산부인과 전문의 연령대별 인원수'를 분석한 결과, 전국 분만 시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평균 연령은 48.7세로 조사됐다.
부산은 전국평균보다 높은 49.2세로 나타났다.
부산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의대를 입학하고 최소 15년은 지나야 제왕절개 수술이 가능한 숙련된 의사가 될 수 있다"면서 "젋은 의료진이 산과를 기피하면서 이대로 10년이 지나면 부산에서 아이를 받는 의사들은 대부분 60세가 넘은 고령층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분만의 역할을 민간 의료영역에서 떠안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부산 유일 공공의료기관인 부산의료원은 지난 한 해 분만 건수가 0건으로, 분만실을 갖추고도 수년째 운영하지 않고 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하정화 박사는 "산부인과 분만실의 경우 유지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들어 민간 의료기관 상당수는 대개 비보험 진료나 검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산모들에게 비용을 전가시킬 수 밖에 없다"며 "임신과 출산을 민간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공영역에서 인프라 확충과 다양한 서비스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