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배포한 '부산아이 다가치키움' 팜플렛 중 다자녀 가정 지원책 내용. 박진홍 기자"각종 다자녀 가정 지원책이 백화점식으로 쭉 나열돼 있어요. 그것도 '낳아 보니 이런 게 있네' 정도지, '이런 게 있으니 아이 하나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부산에서 9세 딸, 7세 아들, 2세 딸 등 아이 셋을 기르는 박진우(40)씨는 부산시가 배포한 다자녀 가정 지원 정책 홍보물을 읽으며 "임팩트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다자녀 가정'은 통상 세 자녀 이상을 양육 중인 가정을 말한다. '다자녀'의 기준을 두 자녀 이상으로 확대해 규정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부산은 아직 세 자녀가 기준이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총조사 자료 중 '미성년자가 있는 자녀수별 가구'를 보면, 부산에서 아이를 기르는 29만 1809가구 중 세 자녀 이상은 2만 5725가구로 전체의 8.8%에 불과하다. 이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서울(8.1%)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20가지 넘는 부산시 '다자녀 우대정책'… 의지는 높지만 효과는 "글쎄"
이에 부산시는 지난해 다자녀 가정 지원을 위해 조례를 별도로 제정하는 등 각종 우대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출산지원금, 의료비 지원, 공공요금 할인 등 전국 공통 지원책에 더해 별도로 20가지 넘는 정책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현금성 혜택이다. 광안대교 통행료 면제, 공영주차장·도시철도 50% 할인, 부산시 체육시설 등 이용료 50% 감면 등이다. 대부분 다자녀 가정이면 발급받을 수 있는 '가족사랑카드'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식당이나 카페 등 가족사랑카드 참여업체 3300여 곳에서 할인이나 추가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 이 업체들은 시 예산지원 없이 시책에 동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부산시 홈페이지에서 안내하는 다자녀 가정 혜택. 부산시 홈페이지 캡처하지만 정책의 수혜자인 박씨는 이런 여러 가지 혜택이 실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사랑카드 참여업체 헤택은 음료수 하나 더 주거나 금액을 약간 깎아주는 정도인데 사장님한테 민망해서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고, 광안대교는 1년에 한두 번 이용하는데 이 다리와 연계된 부산항대교는 민자 도로라서 할인이 안 되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출산지원금은 말 그대로 출산했을 때 일회성 지원인데, 이것 때문에 아이를 더 낳지는 않는다"며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먹는 것도 더 먹고, 맞벌이 부부들은 한쪽이 퇴근할 때까지 소위 '학원 돌리기'를 할 수밖에 없어 교육비도 훨씬 많이 들어가는 데 이런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른 다자녀 가정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지난해 발간한 '부산시 다자녀 가정 지원 및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부산에서 3자녀 이상 자녀를 기르는 부모 350명 중 93.4%는 "정책이 다자녀 출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자녀 가정에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묻는 항목에는 교육비(학원비, 방과후 교실 등) 지원 확대가 54.6%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양육비(육아기관, 서비스 이용) 지원 15.4%, 주거 지원 확대 14.9% 순이었다.
연구를 진행한 부산여성가족개발원 강하라 연구위원은 "응답자들은 대부분 자녀 양육에서 교육비와 생활비 등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했는데, 지원 정책은 주로 생애 초기 출산과 양육에만 집중돼 있다 보니 정책 체감도가 낮게 나타나는 것"이라며 "단순히 현금 지원을 하는 것보다는 유아기 이후로도 계속 지원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후속출산 위해선 양육·교육 부담 덜 '획기적 정책' 있어야
다자녀 부모와 전문가 등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즉 첫 자녀 이후 '후속 출산'이 이어지게 하려면 지금보다 더 정교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박씨는 "대부분 주위 동료들은 첫 아이까지는 고민 없이 가져도 둘째를 낳을지 말지는 엄청 고민한다. 한 명까지는 어떻게든 맞벌이하면서 기를 수가 있지만 둘째부터는 육아를 위해 둘 중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라며 "아이 기르는 데 대한 부담이나 공포를 덜어줄 획기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다자녀 부모 350명이 꼽은 다자녀 가정에 필요한 정책. 그래픽=박진홍 기자그는 "돌봄서비스를 예로 들면 사람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부모의 성향과 맞는 아이돌보미를 찾는 일도 쉬운 게 아니라서 선뜻 맡기지 못하는 가정들도 있다"며 "이런 부분은 국가가 충분히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할 수 있고, 나아가 부모들이 바라는 최신 육아 경향 등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까지 질이 높아지면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강 연구위원은 "교육비 등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가장 필요한 부분은 돌봄인데, 단순히 양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질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돌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부모의 요구나 자녀 특성에 맞춰서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 차원에서 현재 제공 중인 서비스들이 과연 질적인 측면에서 충족이 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질 높은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해외 사례처럼 자녀 수에 따라 아동수당과 같은 지원이나 '가족사랑카드'와 비슷한 혜택을 차등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후속 출산이 이뤄지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