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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무언'으로 쌓아올린 숭고한 잔혹동화 '더 마더'

영화

    [노컷 리뷰]'무언'으로 쌓아올린 숭고한 잔혹동화 '더 마더'

    외화 '더 마더'(감독 후안마 바호 우료아)

    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스포일러 주의
     
    자신을 되찾으려 간절하게 기도하던 시간마저 잊고 그저 자신을 놓아버린 채 존재하는 이가 있다. 그에게 두려움을 마주할 시간과 그것을 극복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허무에서 간절함으로 변해가는 이를 따라가는데 필요한 것은 어떠한 말보다 그의 얼굴과 발걸음에 집중하는 것일 테다. 영화 '더 마더'는 무언(無言)으로 쌓아 올린 두려움에 관한 아름답고 섬뜩한 동화다.
     
    한때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였던 여자(로지 데이)는 약물에 중독된 채 홀로 아이를 출산한다. 아이는커녕 제 몸 하나 돌볼 능력이 없던 여자는 브로커(해리엇 샌섬 해리스)에게 아이를 팔아버린다.
     
    하지만 아이를 데려간 사람들이 유아 인신매매단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자는 브로커를 처음 만났던 외딴 숲을 다시 찾아간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저택에 들어간 여자는 정체 모를 여인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자신의 아기를 발견한 데 이어, 뜻 모를 붉은 표시들로 덧칠된 달력을 보게 된다. 이후 여자는 아이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시작한다.
     
    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스페인 스릴러의 계보를 이어갈 '더 마더'(감독 후안마 바호 우료아)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통해 긴장을 유지해 가는 스페인 스릴러 특징에 더해 '무언'이라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그려낸다.
     
    영화는 마치 발레리나인 주인공 직업에 맞춰 세팅한 듯, 무언극의 예술인 발레처럼 표정과 몸짓과 음악, 배경만으로 모든 걸 표현한다. '더 마더'는 '말'을 배제시킴으로써 오히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세밀한 감정까지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심리를 자극하며 관객을 러닝타임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감각을 죄어오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한때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였으나 알콜과 마약에 중독된 채 나락으로 떨어진 삶을 사는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를 계기로 자신을 둘러싼 온갖 두려움을 떨쳐내고 재활의 기회를 얻는다.
     
    이 과정은 마치 영화의 인서트처럼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격동하는 생명, 생과 사를 오가며 살아가는 생명들의 모습과 같다. 인서트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내밀하게 연관돼 상징성을 갖고 많은 것을 은유하는 동시에 발레의 막 전환처럼 장면 전환의 역할도 수행한다.
     
    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먹이를 사냥해 먹는 독수리, 그물에 걸린 곤충을 잡아먹는 거미, 쥐덫에 걸린 쥐, 뒤집어진 몸을 바로 세우려는 딱정벌레, 묶여 있던 줄에서 풀려나 자유로이 보행하는 백마 등은 모두 늘 위협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삶과 죽음의 반복, 그 안에서 생동하는 생명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은 결과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삶의 의미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요 무대인 수상한 저택은 고딕 호러 혹은 잔혹동화에 등장할 법한 외관으로 주인공을 외부 세계로 쉽게 나가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내면의 상징처럼 비친다. 주인공의 집도, 저택도 모두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더욱이 알콜과 마약 중독은 물론 미혼모에 생활고까지 시달리는 주인공은 사회적 약자다. 저택의 구성원인 브로커와 소녀, 알비노 여성 역시 일종의 사회적 비주류에 속하는 무리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과 아이가 어떻게 브로커를 통해 저택까지 흘러들어오는지 경로를 살펴보면 사회적 사각지대와 불법지대에 내몰린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비극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이는 영화 속 저택의 모습과 맞물리며 '현대판 잔혹동화'로 다가온다. 사회에서 목소리가 배제된 이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은 결국 주인공 직업의 예술성과 더해져 '무언극' 형식의 연출로까지 이어진다.
     
    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외화 '더 마더'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대사가 없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건 오프닝과 후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닉 드레이크의 '리버 맨'(River Man)'이다. 이 노래는 주인공과 영화가 말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모든 것은 왔다가 사라진다는 이 노래 가사처럼 인서트는 자연에서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잃어버린 꿈과 자신을 찾고 싶어했지만 그저 바라기만 할 뿐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했던 주인공이 타인의 아기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두 번째 기회를 잡는 모습을 대신 전해준다. 과거도, 두려움도 왔다가 떠나버리는 것처럼 주인공의 아이는 죽음으로써 주인공에게 생을 주고 떠난다.
     
    또한 '더 마더'는 발레라는 여성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예술과 모성으로도 불리는 여성성 사이에서 커리어나, 삶, 젠더적으로 극단에 몰린 주인공을 통해 '여성성'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영화에는 '남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여성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해석과 상징, 은유를 보여주는 '더 마더'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이자 구성 요소인 화면과 사운드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건 단순히 대사, 즉 '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 마디 말보다 영화에서처럼 누군가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려는 관심일지도 모른다.
     
    103분 상영, 2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더 마더' 메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외화 '더 마더' 메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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