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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상실에 관한 기묘하고도 슬픈 우화 '램'



영화

    [노컷 리뷰]상실에 관한 기묘하고도 슬픈 우화 '램'

    외화 '램(Lamb)'(감독 발디마르 요한손)

    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 스포일러 주의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의미를 가진 '상실', 잃어버린 것이 소중한 무엇이라면 우리는 그 슬픔을 무엇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이러한 상실을 마주하고 오롯이 벗어나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과정일까. 이에 대한 기묘하고도 슬픈 우화를 그려낸 영화가 바로 '램'이다.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이후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부부는 양 목장에서 태어난 신비한 아이를 선물 받는다. 그러나 잉그바르의 형 피에튀르(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가 나타나며 운명처럼 다가왔던 신비한 아이와의 시간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램'은 '미드소마' '유전' 등 믿고 보는 독창적인 호러 명가 A24가 선택한 호러 무비라는 점과 '월요일이 사라졌다' 배우 누미 라파스의 열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램'은 호러 영화에 대한 기대를 비껴가면서도 비껴가지 않는, 예측 가능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 놓인 작품이다. 심리 호러의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신화적인 요소를 가져와 상징적이면서도 심정적으로 이끈다.
     
    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에는 '양'(Lamb)이 등장한다. 아이를 잃은 후 상실감에 빠져 살아가는 마리아와 잉그바르 부부에게 새끼 양과 인간의 모습이 동시에 공존하는 존재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부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과거 자신들의 아이 이름인 '아다'를 붙여준다.
     
    짐승의 얼굴과 인간의 몸을 지닌 존재는 이성적으로 봤을 때 기괴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리고 마리아 부부에게 있어서 괴이한 새끼 양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후 등장하는, 잉그바르를 죽인 새끼 양과 닮은 존재의 정체 역시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램'에서 중요한 것은 상실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비틀린 모성과 행복이란 무엇인지다.
     
    운명의 끔찍한 장난처럼 보이는 상실과 슬픔, 행복과 모성을 포함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뒤쫓아 가도록 하기 위해, 영화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인물의 표정과 감정, 행동, 배경이 가진 분위기와 이미지를 따라가게끔 한다.
     
    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함부로 이해하기도, 다가가기도 어려운 '상실'이라는 감정과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과정을 편견 없이 따르게 하려고, 영화는 새끼 양과 인간의 혼종인 아다의 온전한 모습을 처음부터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다의 탄생부터 관객들은 새끼 양이 이질적인 존재임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보이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우리에게 새끼 양의 머리만 보일 때는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거리감은 옅어진다.
     
    부부가 새끼 양 아다에 보내는 애정과 관심을 먼저 본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새끼 양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지 그 감정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짐승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한 새끼 양 아다의 온전한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후에 머릿속과 내면에서 벌어지는 혼돈과 낯선 감각은, 과연 무엇이 마리아와 잉그바르 부부에게 짐승이나 사람 그 무엇도 아닌 존재를 자신의 아이 '아다'로 받아들이게 한 건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감독은 기이하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한 원인, 즉 상실과 아픔 그리고 사랑에 관해 관객이 아무런 편견이나 거리감 없이 받아들이고 질문하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마리아가 보여준 비상식적인 행동과, 무조건적으로 아다를 받아들이며 '선물'이자 '행복'이라 말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자 상실을 치유하는 것인지 고민하게끔 한다.
     
    어쩌면 마리아에게 중요했던 건 아다라는 존재나 상실의 원인보다 자신의 상실 그 자체다. 그렇기에 기이한 존재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새끼 양에게서 과거의 아다와 자신들의 상실을 비춰 보며 그것이 행복이자 상실의 치유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외화 '램' 스틸컷. 오드 제공특히 마리아와 어미 양 사이 관계를 통해 뒤틀린 모성과, 본능에 가까운 모성이 대립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결국 마리아의 선택이 진정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곱씹어 보게 된다. 상실로 현재와 현실에 발 디디지 못하는 마리아의 내면이 가져온 결과는 또 다른 상실이자 슬픔이고 고독이다.
     
    사실 새끼 양 아다는 인간도 짐승도 아닌, 경계에 걸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다. 영화 내내 보여줬던 혹독한 자연의 공간에서 인간은 혹독함에 저항하지만, 동물들은 이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사람과 자연의 경계에 놓인 아다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고, 혹독한 자연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마리아의 사랑이 또 다른 상실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상실을 덮어버리기 위해 다른 존재에게 상실을 안긴 자에게는 다시금 어둠이 돌아오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결말은 이 영화가 결국 상실에 관한 기묘하고 슬픈 우화였음을 알린다.
     
    '램'을 마지막까지 이끌어 간 것은 독특한 상상력과 화면, 사운드 디자인도 있지만 마리아를 연기한 누미 라파스의 힘이 크다. 영화 내내 아다를 따르는 마리아의 눈빛과 표정은 어느 한 가지로 정의할 수도, 재단할 수도 없는 깊고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어미 양을 죽이러 가는, 그리고 죽이고 난 후는 물론 마지막 모든 것을 빼앗기고 홀로 남아 온몸으로 감정을 조용히 폭발시키는 누미 라파스의 얼굴은 잊지 못할 엔딩으로 남을 것이다.
     
    106분 상영, 12월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램' 메인 포스터. 오드 제공외화 '램' 메인 포스터. 오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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