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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약자에 귀기울이지 않는 세상에 고함 '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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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약자에 귀기울이지 않는 세상에 고함 '리슨'

    외화 '리슨'(감독 아나 로샤)

    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 스포일러 주의
     
    사회가 외면하고 방치한 시스템 바깥 사각지대 속 가족들에게 사회가 가져다준 것은 가족의 해체였다. 가족들의 목소리에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규정에만 몰두한 사회 시스템의 실패다. 영화 '리슨'은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시스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다.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는다는 건 어떤 건지 되새기게 만든다.
     
    벨라(루시아 모니즈)는 가난한 이민자 출신으로 런던 교외에서 3남매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각장애를 가진 딸 루(메이지 슬라이)의 몸에 난 멍자국이 정부 당국의 오해를 부르게 되고, 강제 입양 절차에 들어간 아이들과 벨라는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리슨'(감독 아나 로샤)은 루 가족의 가난과 실직, 그리고 장애에도 아무런 귀를 기울여주지 않던 세상과 이들의 헤어짐을 그린 영화로, '강제 입양'이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해체된 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작동되는 사회 시스템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영화 제목처럼 '리슨' 즉 '듣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사회가 정해놓은 시스템이라는 것부터가 루의 가족을 보며 의문점을 갖게 만든다. 이민자인 루의 가족은 사회 시스템 안에조차 편입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부모는 일용직으로 일하고 아빠의 월급은 밀려 있고, 아들은 아픈데 병원에 가기도 힘들고, 루의 보청기는 고장이 났지만 새 걸 살 수 있는 형편도 못 된다. 루의 가족이 처한 실질적인 상황은 반영하지 않은 채 사회가 마련한 복지 시스템은 루 가족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만들어 놓은 규정에 어긋나는 현상이 루 가족에게서 발견됐고, 정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흔적만으로 루의 가족을 재단하고 가족을 해체시킨다. 루의 가족들 목소리는 마치 들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시스템 속 정부 관계자들은 시스템이 만든 프로토콜대로만 움직인다.
     
    이러한 시스템과 시스템의 움직임 속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눈먼 시스템이다. 이는 사회 시스템의 가장 큰 허점이기도 하다. 정부가 만든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상황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원인과 상황, 사람을 시스템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 아이를 데려가려는 관계자들 앞에서 벨라는 '자신은 좋은 엄마'라고 항변하고,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좋은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골판지로 만든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루. 아이가 바라본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그러나 루가 가족들과 헤어진 후 벨라가 루의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깨져버린 유리처럼 금이 가버린 채로만 보인다. 루와 루 가족의 삶에 균열을 낸 것은 그들을 둘러싼 가난과 장애가 아닌, 시스템의 관점으로만 판단하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시선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방통행식의 사람이 낄 곳 없는 견고한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건 결국 사람이다. 사회 시스템 밖으로 나와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 루 가족에게 작은 귀띔을 해준 정부 관계자,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루의 부모 등 사람이 시스템을 흔들고 균열을 내가는 것이다.
     
    비록 현실과 스크린 안에서 벨라가 "이겨도 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사각지대 곳곳에서 실패의 기록이 이어지고 아주 간혹 반쪽짜리 승리가 보인다. 그러나 '리슨'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화 속 정부나 정부 관계자들과 달리 계속해서 루 가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 역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관객들이 끊임없이 시선을 시스템 바깥으로 돌리고 바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리슨'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외화 '리슨' 스틸컷. 워터홀컴퍼니㈜ 제공'리슨'이라는 제목만큼 영화에서는 '듣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공 루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 보청기가 없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대화는 수어를 이용한다. 루의 목소리는 보는 것까지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루와 루 가족의 수어 대화를 정부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통제한다. 처음부터 사회 시스템은 루 가족들에게는 마치 견고하고 높은 벽과 같았다. 그들의 외침은 계속해서 튕겨져 나와 허공을 맴돌다 가족들에게 돌아와 마음에 상처를 냈다.
     
    이처럼 영화는 그저 물리적으로 소리를 듣는 것만이 '듣는다'의 기능이 아님을 말한다.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 사회적 약자에게 귀기울인다는 것은 물리적 기능뿐 아니라 모든 감각을 열어 보고 듣고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루 가족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벽, 그리고 루 가족 사이 진정한 소통을 통해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어쩌면 감정적으로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감독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오히려 루와 루 가족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여기에 루를 연기한 실제 청각장애인인 메이지 슬라이의 얼굴과 수어, 몸짓은 그 어떠한 대사보다도 강력하게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자연스럽게 '듣는다'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만든다.
     
    78분 상영, 12월 9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리슨' 포스터. 워터홀컴퍼니㈜ 제공외화 '리슨' 포스터. 워터홀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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