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산하 클래식 & 재즈 레이블 SM 클래식스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15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에스엠 클래식스 라이브 2025 위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열었다. 벽면에 SM 아티스트명이 쓰여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클래식과 K팝. 둘은 극과 극처럼 멀어 보였다. 전자는 모범답안이 있고 이를 얼마나 정밀하게 구현하는지가 관건이라면, 후자는 장르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각양각색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직접 들어보니, 오케스트라로 듣는 K팝은 신선했다. 평소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던 클래식이 반가운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고 음역을 담당하는지, 함께하면 또 어떤 앙상블이 만들어지는지 더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SM엔터테인먼트가 '에스엠 클래식스 라이브 2025 위드 서울시립교향악단'(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을 개최했다. CBS노컷뉴스는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각각 열린 공연을 다녀왔다. 이번 공연은 클래식 & 재즈 전문 레이블 SM 클래식스와 서울시향이 함께 만든 전 세계 최초의 'K팝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지휘는 김유원 지휘자가 맡았다.
2020년부터 SM의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제작해 온 SM 클래식스는 과거 발표곡에 신곡을 더해 총 14곡이 실린 정규앨범 '어크로스 더 뉴 월드'(Across The New World)를 지난달 24일 발매했다. 이번 'SM 클래식스 라이브'는 앨범 수록곡 전 곡을 포함해 약 20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을 기회였다.
내레이터로 나선 샤이니(SHINee) 민호는 SM 대표곡을 오케스트라로 선보이는 이번 콘서트를 '최초'와 '최고'의 만남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SM이 가장 잘하고 가장 진심인 것이 음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샤이니 민호는 14~15일 이틀 동안 열린 공연에서 본 공연 전 내레이터를 맡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SM은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과 아티스트 세계관이 어우러진 SM만의 독창적인 통합 세계관인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개념을 내세운 바 있다. SMCU 이름을 걸고 지난 2022년 발매한 단체 앨범 첫머리에 실린 '웰컴 투 에스엠씨유 팰리스'(Welcome To SMCU PALACE)가 첫 곡이었다. 떨리지만 기대되는 모험을 떠나는 듯한 '디즈니 재질'의 곡으로 상쾌하게 출발했다.
지난 2020년 발매된, SM 클래식스와 서울시향의 첫 협업곡 '빨간 맛'(Red Flavor)이 곧바로 등장했다. 제목에 맞게 조명도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리드미컬한 피아노, 곡의 여린 부분을 소화한 목관악기에, 순간 집중도를 높여준 타악기를 거쳐 현악기 선율로 마무리됐다. 원곡의 시원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울시향의 연주로 색다른 개성이 더해졌다.
일부 무율 타악기를 제외하면 오케스트라 쓰이는 악기 대부분이 음높이를 표현할 수 있기에, 멜로디가 잘 살아있는 곡일수록 클래식 연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K팝 원곡에서부터 클래식 샘플링을 한 경우 더 착 달라붙었다.
기대가 컸음에도 그 기대를 충족했던 곡은 레드벨벳 원곡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이었다. 바흐 곡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만큼 음악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표현됐다. 모든 악기가 각자의 역할을 했으나, '협연'함으로써 한층 더 풍성한 감상이 가능했다. 관현악으로 만나는 익숙한 구절에선 '꽃가루를 날려' '바로 지금' 등의 가사가 절로 떠올랐다. 발랄한 분위기의 다양한 음향 소스가 귀에 꽂혔고, 캐스터네츠와 글로켄슈필은 산뜻한 킥을 날렸다.
15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는 레드벨벳 웬디가 출연해 '라이크 워터' '웬 디스 레인 스톱스' '버밀리언' 3곡을 가창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미디어 아트도 화려했다. 팅커벨을 연상케 하는 날개 달린 요정은 금빛 가루를 뿌리며 울창한 숲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여러 종류의 음표에서 시작해 악보를 그리는 오선이 등장해, 이곳이 '음악의 숲'임을 암시한다. 음악도, 미디어 아트도 마지막까지 달려 나간다. 생생한 색감이 눈에 띄는 꽃밭은 이날 접한 단연 황홀한 장면이었다.
엔시티 드림(NCT DREAM) 원곡의 '헬로 퓨처'(Hello Future)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 덕분에 더 인상 깊었다. 푸가 형식, 후기 낭만, 현대 재즈 등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담아내도록 편곡했는데, 새들의 지저귐 같았던 관악기 연주가 듣기 좋았다. 활기찬 원곡은 오케스트라를 만나 웅장해졌고, 아련한 동화같이 마무리됐다.
'어크로스 더 뉴 월드'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라이징 선'(Rising Sun)은 동방신기(TVXQ!) 원곡에는 없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가져와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했다. 잘게 쪼갠 피아노 연주는 긴장감을 조성했고, 댄스 브레이크 직전 '슬로우 다운'(Slow Down) 전까지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 전개 덕에 더 빠져든 채로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라이징 선'이 멜로디 위주의 곡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곡의 주요 부분이 수많은 악기의 힘을 받아 전에 없던 형태로 재현되는 것을 보고 탄성이 나왔다. 동방신기의 상징색인 빨간색 조명과 표면이 거친 행성 이미지 등으로 시각적 재미도 놓지 않았다.
지난 14일 저녁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첫날 공연. 넓은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가 눈에 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원곡에 없던 클래식을 접목해 새롭게 탄생한 곡은 또 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요소를 도입부를 포함해 노래 곳곳에 품은 '으르렁'(Growl)을 예로 들 수 있다. 후렴구는 다채로운 화성으로 변주하고 왈츠풍 리듬을 가져왔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2~3악장을 녹여낸 '사이코'(Psycho)는 집착적인 사랑을 다룬 레드벨벳 원곡보다 조금 더 밝고 희망차게 변모했다.
고(故) 샤이니 종현 원곡 '하루의 끝'(End of a day)은 드뷔시의 '달빛'을 샘플링해 편곡했는데, 유일하게 벽면에 가사를 띄워 가사를 음미할 수 있게 했다. '수고했어요/정말 고생했어요/그댄 나의 자랑이죠'라는 구절 일부가 사라져 '수고했어/고생했어/나의 자랑'이라고 끝맺은 대목에선, 관객석에서 일부 훌쩍임이 나오기도 했다.
깜짝 놀랐던 편곡은 라이즈(RIIZE) 원곡의 '붐 붐 베이스'(Boom Boom Bass)였다. 색다르지만, 이질적이지는 않게 현대적인 느낌을 준 일렉트릭 베이스의 공이 컸다. '붐 붐 베이스'는 중심을 잡아주는 베이스 연주와 비트의 존재감이 상당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멜로디컬한 곡이구나 하고 다시 보게 됐다.
샤이니 원곡의 '셜록'(Sherlock·Clue + Note)은 음악과 미디어 모두 아트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꾸며졌다. 관객석 맞은편 빈 객석에서 마치 범인을 찾는 듯 둥근 조명을 군데군데 비치는 연출로 몰입감을 더했다. 위급하고 긴박한 느낌을 잘 살려낸 연주 덕인지, 무대를 마쳤을 때 환호성이 유독 컸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14일 공연 당시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에스파(aespa) 원곡의 '블랙맘바'(Black Mamba)는 콘셉추얼하게 재탄생해 영화 음악으로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순 없어' '넌 광야를 떠돌고 있어'와 같은 후렴구는 보다 웅장하게 풀어냈다. 또한 비늘의 양감까지 구현한 거대한 뱀 미디어 아트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NCT 곡은 비트와 랩 위주 곡이 많아 클래식 편곡이 가장 까다롭지 않았을까 염려했는데,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나 '골든 에이지'(Golden Age)도 원곡의 핵심은 부족함 없이 드러났다. 특히 '메이크 어 위시'는 오케스트라로도 휘파람 소리를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으며, 독특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을 확인케 했다.
보아 2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공개한 '나무'(Tree)는 쓸쓸한 느낌의 피아노 독주만으로 노래 절반 정도를 채웠고, 차츰 악기를 더해 애절한 분위기를 짙게 했다. 반짝이는 타악기 소리를 적극 활용한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원곡 '메리 유'(Marry U)는 전체 공연 목록(세트 리스트) 중 제일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15일 공연은 일부 곡 순서가 바뀌었고, 가창 무대가 추가됐다. 레드벨벳 웬디가 출연해 '라이크 워터'(Like Water) '웬 디스 레인 스톱스'(When This Rain Stops) 등 본인 곡을 불렀다. 지난 2022년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노래한 적이 있는 웬디는 "좋은 기회로 다시 곡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고 말했다. 요구되는 음역이 넓은 고난도 곡이었음에도 웬디는 능숙한 완급 조절 속 막힘없이 곧게 뻗는 라이브를 선사했다.
왼쪽부터 14일, 15일 공연 프로그램. SM 클래식스 공식 트위터아티스트가 퇴장하더라도 끝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 앙코르가 있을 것이라는 내레이터 민호의 귀띔대로, 웬디는 뜨거운 함성 속에 무대에 다시 올랐다. 지난해 발매한 미니 2집 '위시 유 헬'(Wish You Hell)에 실린 따뜻한 분위기의 수록곡 '버밀리언'(Vermilion)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본 공연의 마지막 곡과 앙코르곡은 소녀시대(Girls' Generation) 원곡의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와 에스엠타운 라이브의 엔딩곡인 '빛'(Hope)으로, SM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노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곡 샘플링한 '다시 만난 세계'에 열광적인 관객 반응이 뒤따랐다. 손을 맞잡는 데 이어 폭죽이 터지는 미디어 아트로 멋진 피날레를 장식했다.
박수 세례는 지휘자 및 연주자 전원이 무대를 떠날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수고한 악기를 곁에 두고 일어나 인사하는 서울시향에,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경의를 표했다. 관객 박수에 맞춰 현악기 연주자들이 활로 박수를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3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K팝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친 SM 클래식스는 앞으로 공연·악보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여, 오리지널 IP를 전 세계에 확산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 내일(17일)은 'SM 30주년' 기획 3편으로 평론가가 꼽은 '한 사람이라도 더 들었으면 하는 SM 앨범/노래'가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