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회복지원시설에서 바리스타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사단법인 세진회 제공"옛날 모습과 엄청 달라져서 친구가 혹시 몸속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게 아니냐고 했어요."
지난 2월, CBS노컷뉴스와 만난 고등학생 현우(가명)는 세나청소년 회복 지원센터에 1년 2개월째 생활하며 달라진 모습들을 설명했다. 현우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보육원 형들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패싸움을 시작했고, 중학교 들어서 방황이 심해졌다. 징계는 선도위원회 10번에 학교폭력 2번. 학교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고 도망가 놀러 다니기도 했다.
소년법상 만 10~18세 청소년은 비행을 저질렀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현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보육원 유리창과 벽, 문 등을 부수는 폭력 행위로 아동복지시설에 감호 위탁되는 6호 처분을 받았다. 처분이 끝날 때쯤 보육원에서 현우를 다시 받아주지 않자 1호 처분으로 변경돼 지금 센터로 왔다.
현우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학교에 다닌다. 학생회 임원을 맡고, 모범상과 교과우수상도 탔다. 학교에서 잘못한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지나갈 때 고개를 숙이고 찡그리던 아이들은 이제 현우를 반겨준다고 한다. 현우는 "비행 청소년이 안 좋게 보이지만 희망을 주고 싶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년범의 재범을 막을 수 있도록 재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검 '2021 범죄분석'에 따르면 만 14~18세 소년 범죄자들 중 전과가 있는 경우는 33%에 달했다. 이중 전과 9범 이상 비율은 5.9%였다. 재범 기간은 6개월 이내가 52.5%, 1년 이내가 81.7%였다. 비행 청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이라는 소년법의 목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소년범을 교화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고 과밀화돼 있다는 점은 특히 문제로 지적된다. 한 해 소년보호처분 건수는 약 3만여 건, 법원 소년부로부터 소년을 위탁받아 분류 심사하는 소년분류심사원은 전국에 1곳(서울소년분류심사원)이다. 다른 지역은 6개 소년원에서 기능을 대행하고 있다. 8~10호 처분으로 가는 소년원은 전국에 10개(여성 소년원 2개, 남성 소년원 8개), 6호 보호치료시설은 12개뿐이다. 1호 처분에 해당하는 청소년 회복 지원시설은 전국 18곳이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적절한 제재로 행동 교정
'호통 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청소년 회복 지원시설 법제화에 앞장섰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비행 청소년들이 보호처분을 받고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현실을 보고 2010년 처음 '사법형 그룹홈'을 만들었다. 정원 10명 이내의 청소년 회복 지원시설은 2016년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정식 시설로 인정받았다.
세나청소년 회복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세진회 이일형 사무국장은 "아이들을 가정에서처럼 돌보니까 개개인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보호관찰 처분 받은 아이들 재범률은 90%가 넘는데 센터 재범률은 25~30%가 안 넘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학교 갈 때는 오전 7시 30분에, 방학 땐 오전 8시 30분에 기상한다. 식사를 하고 운동 후 교과목 공부를 한 뒤 저녁 시간에는 휴식을 취한다. 취침 시각은 오후 10시. 주말에는 오전 10시에 일어나 영화를 보거나 독서 토론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바리스타 실습이나 여행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사단법인 세진회 제공휴대폰 사용은 제한된다. 휴대폰으로 온라인 접속 시 이전에 같이 비행을 저지르던 친구들과 재비행을 모의하거나 성매매 피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후 일정한 시간 동안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빡빡해 보이지만 중학생 다현이(가명)는 오히려 "규칙적인 생활로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다현이는 상습 가출로 보호 처분을 받았다. 소년분류심사원에서는 1호 처분을 받고 '꼭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재판에서 아버지의 우울한 표정을 보니 집에 돌아가 잘할 자신이 없어 시설로 왔다고 했다.
다현이는 사춘기 때 아버지로부터 혼나고 매를 맞으며 반항심이 커졌다. 어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8살 차이 나는 오빠도 비행 청소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을 시작한 다현이는 아는 오빠들과 '조건만남 사기'를 쳐 돈을 벌기도 했다. 성매매하려는 남성으로부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다.
현우는 "불량한 조직에 익숙했던 이전에는 친구나 선배 밑에서 명령대로 행동하고 폭력적이라고 소문이 나서 힘들었다"며 "여기서 원래 알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차단하고 (선생님) 말대로 하니까 결과가 좋아 억지로 습관을 들였더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인권 의식이 높아지다 보니까 보육원이나 일반 그룹홈, 학교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다"면서 "우리는 법원에서 관리를 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바꿔나가는 데 충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별적 관심으로 '재범하지 않을 힘' 길러줘
사단법인 세진회 제공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24시간 감호로 자유가 제한됐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스스로 일해서 돈 벌고 싶다", "요리학원에 다니고 싶다", "자격증을 따고 싶다" 등 여러 포부도 나타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건강 요리 개발자, 일식집 사장, 바리스타, 공인중개사 등 꿈도 다양했다.
청소년의 자율성을 키우는 것도 교화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다.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환경에서 옳은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년범죄자의 재범 실태 및 방지 대책 연구'(2018)를 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최정원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소년범들이 부모의 양육 환경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처분 받고 집에 돌아오면 범죄를 처음 저질렀을 때와 동일한 환경에 다시 놓인다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천 판사는 "격리 교정시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수용돼 있는 동안 살려는 의지를 꺾어 나오면 수동적으로 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격리시설에 수백 명을 데려다 놓으면 아이들이 군중심리에 끌려 뭔가를 자발적으로 할 수 없다"며 "소규모로 운영해야 개별적인 아이들 확인도 가능하다"고 했다.
3년간 세나청소년 회복 지원센터에서 일한 세진회 홍웅기 전 사업팀장은 "소년원이나 6호 시설같이 큰 곳에서는 아이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없다"며 "아이들 5~6명이 오면 각각의 우주가 온 듯이 다 환경이 달라 하나하나 왜 비행을 저질렀는지 보고 그 배경에 맞게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배상균 부연구위원은 "성인은 어느 정도 생각이 굳었고 생활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데 소년은 변화의 가능성이 큰 시기"라며 "국가가 범죄가 발생한 근원인 가정을 대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소년을 보호하거나 육성하는 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6호 처분 시설인 나사로청소년의집 박재숙 원장도 "청소년들이 멋있는 이유는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 너무 달라지고 깜짝 놀랄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6개월 있는다고 아이들이 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최소한 1년에서 2년 정도 있으면 아이들이 같은 환경에 돌아가서도 견딜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오는 4월 센터에서 1년 위탁 기간을 채우는 다현이는 "똑같은 환경으로 돌아가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저라도 바뀌었으니 한번 가보고 싶다"며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시설에 도와달라고 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