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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흉악범죄 변호는 죄악인가…김병찬 변호에 쏟아진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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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흉악범죄 변호는 죄악인가…김병찬 변호에 쏟아진 비난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8호 법정은 재판 내내 무거운 공기와 피해자 가족들의 울분 섞인 목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헤어진 전 연인을 1년 가까이 스토킹하고 끝내 서울까지 따라 올라와 무참하게 살해한 김병찬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사형 선고해달라" 부모의 호소에 재판부도 눈물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한형 기자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날 재판에선 숨진 여성의 부모가 '양형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매우 힘겹게 버티는 모습이 역력했고, 어머니는 재판 내내 김병찬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재판부는 신문에 앞서 피해 부모에게 "김병찬이 있는 자리에서 하시겠는가? 비대면으로 해도 피고인이 (부모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그래도 김병찬 앞에서 하시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죽인 흉악범 앞에 서게 된 부모, 재판 내내 힘겨워했던 부모를 배려하는 차원이었죠.

    부모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어머니는 "앞에서 하겠다. 김병찬이 반드시 직접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부모는 김병찬의 얼굴을 이날 처음 봤습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해 일하던 피해자는 부모에게 차마 김병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인석에 선 아버지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신문에 나섰습니다. 검사의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재판장님, 제가 좀 적어 왔는데, 꺼내서 읽어도 되겠습니까?"라며 재킷 속에서 흰 종이를 꺼내 들었습니다.

    김병찬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호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곧장 눈물을 터뜨립니다.
    22.03.31 서울중앙지법 김병찬 2차 공판, 아버지 호소문中 일부
    재판장님, 지난 3월 ○○일은 제 딸 ○○의 34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날 ○○의 유골을 뿌린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저 살인마에게 똑같은 범죄로 되갚아 줄 수는 없지만, 평생을 감옥에서 참회하며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 살인마는 칼을 준비했고, 저희가 준비한 것은 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한 맺히게 토해낸 한 글자 한 글자가 칼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딸에게 큰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에 이어 증인으로 나선 어머니는 처음부터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습니다.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했고, 얼굴엔 연신 눈물만 흘렀습니다.
    22.03.31 서울중앙지법 김병찬 2차 공판, 어머니 호소문中 일부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피눈물이 흐릅니다. 봄이 왔지만 제 아이는 꽃도 피지 못했고 세상에 없습니다. 딸이 세상을 떠난 지금, 가끔씩 중매가 들어오면 너무 슬퍼집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슬퍼 종교에 매달려도 보고 좋은 말씀도 들어봤지만 슬픔이 가시질 않습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말하지만 가슴에도 묻히지 않습니다.
    내 딸 ○○야, 엄마 아빠가 슬퍼서 울면 혹여나 네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할까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한다. 내 딸 ○○야, 엄마 딸이어서 고맙다.

    방청석에서 부모의 호소문을 듣고 있던 친척들은 오열했고, 특히 한 사람은 두 손을 꼭 모으고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듯 연신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부모의 호소문을 차분히 듣고 있던 재판부도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병찬 변호인에 쏟아진 분노…흉악범만큼 비난받는 변호인들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유가족들의 분노는 잔인한 살인범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김병찬은 3일 현재 로펌 한 곳에서 총 12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입니다.

    모두가 힘들어 했던 이날 공판에서 김병찬의 변호인의 얼굴에도 고뇌가 엿보였습니다. 부모가 호소문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병찬에 대한 변호는 여타 다른 형사사건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됐습니다. 앞서 1차 공판에서 "피해자를 스토킹 한 사정은 있지만, 살해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라며 계획 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행을 주장한 김병찬 측은 이날 재판에서도 같은 전략을 세우고 나왔습니다.
    22.03.31 서울중앙지법 김병찬 2차 공판
    재판부 "협박 사실은 인정하지만 위험한 흉기 휴대한 것은 부인하고, 감금 사실도 없다는 것인가요?"
    변호인 "피해자 동의 하에 찾아갔고, 공소장에도 사실 관계가 없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피해자가 죽었다고 막 씨불입니까?"

    재판부 "동의 하에 간 것이고 감금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인가요?"
    변호인 "네"
    재판부 "협박도 고의가 없었다는 건가요?"
    변호인 "네, 피고인이 죽이고 싶다고 말하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한 것은 인정하지만, 고의는 없었습니다"
    김병찬 측은 정신 감정도 신청한 상태입니다. 김병찬이 가정사를 이유로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는 취지인데, 이 또한 결국 양형에 참작하기 위함입니다.

    변호인의 변론을 듣던 피해자 부모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22.03.31 서울중앙지법 김병찬 2차 공판 中 아버지 발언
    변호사님은 제 딸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온몸을 칼에 찔리고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저 살인마는 열댓 명의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형을 낮추려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변호까지 해야 합니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어떻게 범행을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합니까?
    사형을 면하려는 술수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만약 변호사의 적극적 도움으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거나 이후 출소해서 우리 가족을 또 죽이면 그것은 온전히 변호사님의 책임이라고 단정 짓겠습니다.
    흉악범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의 존재는 늘 우리 사회의 딜레마였습니다. "어떻게 저런 자를 변호할 수 있냐"는 원초적 분노와 "그 어떤 흉악범이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헌법정신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원초적 분노는 변호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수임료와 연결되며 더욱 증폭되기도 합니다. 인천 초등학생 유괴 살인 사건과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때는 일부 변호인들이 분노한 여론 속에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의자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라고 규정합니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헌법의 어조는 무척 단호합니다. '누구든지', '즉시'라는 말은 법조문 상에 쉽게 등장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심지어 피의자가 변호인을 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국가가 변호인을 붙여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붙일 수 있다'가 아닌 것입니다.

    헌법이 이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무엇보다 누명을 쓴 피의자가 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형사 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피의자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유명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2019년 범행을 자백하기 전까지 복수의 무고한 시민들이 살인 혐의로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설혹 유죄가 맞다 하더라도 범죄의 경중에 걸맞은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변호사의 조력과 연관돼 있습니다.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과 강북구 경비원 갑질·폭행 사건, 이영학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의 변호를 도맡았던 신철규 변호사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의 분노는 당연하지만, 세상의 비난을 받는 피고인들도 사정이 있을 수 있다"며 "실제로 사건을 파고 들어가면 정상 참작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비난을 받는 피고인 입장에선 더 큰 비난을 받을까 차마 할 수 없는 얘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은 헌법 상 권리이고,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 대변을 해줘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라고 강조합니다.

    피해자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뉴스연합뉴스하지만 법의 이상은 법전 안에서만 완벽할 뿐입니다. 헌법의 취지가 아무리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라 해도 참혹한 딸의 시신을 목격한 부모들에게 '살인마'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아닌 주변의 시선입니다. 신 변호사의 말대로 피해자와 가족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쳐도 제3자들까지 피의자 변호인들을 '조리돌림'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변호사들에 대한 비난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사들에 대한 '여론재판'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흉악범들의 변론을 맡는 일이 죄악시되는 사회가 된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헌법의 이상은 김병찬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성연쇄살인 사건 때처럼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는 '미래의 피해자'들을 위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병찬의 공판이 있던 날, 취재 기자는 재판이 끝난 후 우연히 김병찬 측 변호인과 함께 승강기를 타게 됐습니다. 승강기 내에서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시종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그의 지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그에게 "수고했어"라며 어깨를 다독였지만 그는 끝내 침묵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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