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고양 오리온의 머피 할로웨이. KBL 제공고양 오리온 이대성과 이정현. KBL 제공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이 자서전 '매직스 터치(Magic's touch)'에서 1990년대 쇼타임 LA 레이커스의 속공이 위력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속공에서 중요한 포인트 한 가지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요약하면 빅맨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했다. 수비 리바운드를 따낸 빅맨이 패스를 받을 가드를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드리블을 시작해 골밑에 있는 상대 1~2명을 제친다면 속공의 질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비보다 공격 숫자가 더 많아지고 드리블을 하는 빅맨은 그 속도 그대로 속공에 가담하기 때문에 득점 확률이 상승한다는 설명이다.
고양 오리온의 외국인 센터 머피 할로웨이가 요즘 코트에서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다.
할로웨이는 13일 오후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6강 플레이오프 홈 3차전에서 달리는 빅맨의 진가를 발휘했다.
팽팽하던 1쿼터 중반 할로웨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수비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스타트를 끊어 최현민의 속공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수비 리바운드를 따낸 김강선에게서 곧바로 볼을 넘겨받아 코트를 질주했고 최현민의 베이스라인 3점슛을 어시스트 했다.
오리온이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장면들이다.
할로웨이는 이번 시리즈의 키플레이어다. 현대모비스의 주득점원 라숀 토마스가 부상으로 뛰지 못하기 때문에 할로웨이의 존재 자체가 오리온에게 유리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할로웨이는 울산 1차전에서 27득점을, 2차전에서는 12득점을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세트오펜스에서는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이 준비한 함정 수비 때문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3차전을 앞두고 "우리가 트랩으로 실패를 하지는 않았다. 성공했다고 본다. 1차전 때는 그 수비가 성공해서 11점 차까지 앞서다가 실책 때문에 졌다. 2차전에서는 트랩을 조금 수정했고 머피의 득점이 줄었다. 대신 나머지 선수들에게 점수를 많이 준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5대5 상황에서 백다운 공격을 하는 할로웨이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할로웨이는 미리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전반에 할로웨이가 이대성에게 스크린을 건 후 패스를 받아 그대로 덩크를 터뜨리는 장면도 나왔다.
오리온은 2쿼터 득점 난조로 위기에 몰렸지만 할로웨이와 이정현의 활약으로 고비를 넘겼다. 36대31로 앞선 가운데 전반을 마쳤다.
3쿼터 들어 화력이 살아났다. 3쿼터 10분 동안 30득점을 퍼부었다. 전반까지 비교적 잠잠하던 이대성이 3쿼터에만 13득점을 몰아쳤다. 할로웨이는 공수에서 빠른 볼 처리로 동료들의 득점 기회를 도왔다. 속공 전개를 이끄는 패스 역시 할로웨이에게서 시작될 때가 많았다.
66대51로 크게 앞선 가운데 4쿼터를 시작한 오리온은 특별한 위기 없이 승부를 마무리했다.
현대모비스를 89대81로 누른 오리온은 파죽의 3연승 무패 행진으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할로웨이는 26득점 21리바운드 9어시스트 3스틸 4블록슛으로 활약했고 이대성은 22득점으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신인 이정현과 베테랑 최현민은 각각 18득점, 14득점씩 보탰고 경기 내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승현은 9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오리온은 이날 속공 득점에서 현대모비스에 16대4로 크게 앞섰다. 할로웨이의 열정과 재능 넘치는 백코트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강을준 오리온 감독은 프로 사령탑 데뷔 후 처음으로 4강 무대를 밟게 됐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 전 시즌 내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할로웨이를 언급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시즌 때마다 갈등 혹은 기량 부족 등 외국선수 관련 이슈가 있었던 강을준 감독에게 할로웨이는 보물같은 존재다.
할로웨이는 원래 오리온 외국선수 중 2옵션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미로슬라브 라둘리차가 제 몫을 하지 못하자 오리온은 어쩔 수 없이 할로웨이의 출전시간을 늘려야 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할로웨이는 정규리그에서 평균 28분 동안 뛰어 15.1득점, 10.8리바운드, 2.7리바운드, 2.2스틸로 활약했다. 특히 마지막 6라운드에서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오리온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앞장 섰다.
강을준 오리온 감독은 "머피가 한국에 와서 본인은 은퇴도 생각하고 있었다며 자신을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다. 연봉은 적고 팀의 2옵션이지만 이번 시즌에 네 진가를 증명해 내년에 다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나도 도와주겠다고 했고 머피도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머피를 좋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이 그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너무 잘 맞아서 머피도 너무 좋다고 한다. 좋은 분위기로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이대성과 한호빈, 이정현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백코트, 고양의 수호신 이승현 그리고 할로웨이가 버티는 오리온은 4강에서 정규리그 챔피언 서울 SK와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