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와 경찰에 '단골 신고'가 접수되는 경기도 성남의 아파트 단지. 정성욱 기자"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쌀이 없다'는 민원이 계속 온다는데…"
60대 남성 A씨 집에서 민원이 계속된다는 제보였다. 경기도 성남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다. 가족 없이 홀로 지낸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집 안에는 각종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고, 숨쉬기 어려울 만큼 악취도 심하다고 했다. 구조 신호는 아닐까.
A씨 집을 찾았다. 파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복도를 오고 갔다. 이들은 호별로 돌아가며 주민에게 안부를 물었다. 조끼에는 '행정복지센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나 장애인인데, 정기적으로 방문한 날이라고 했다.
복도 맨 끝에 있는 A씨 집에서는 한 청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왔다. 양 손에 든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흐를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A씨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나왔다고 한다.
취재는 허탕이었다. 센터는 생필품뿐 아니라 후원금도 모아서 A씨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게 벌써 8년째다. 조만간 A씨의 정신건강 검사도 받는다. 치매가 인정되면 요양보호사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사람들은 집 안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 2개에 가득 채워 현관문 앞에 내놨다.
A씨는 수년 전 아내와 헤어졌다. 자식은 있지만 집을 나가며 왕래가 끊겼다. 정부에서 받는 50만원 조금 넘는 생활비가 전부였다. 말동무가 없다 보니 정신마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휴대전화를 들고 여기저기 '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목소리에 센터는 귀를 기울였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센터에서 A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많을 땐 하루에 100통 넘게 전화를 걸어 '밥이 없다'거나 '살려달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내용이 와전된 것 같다"며 "대부분 사실이 아닌 신고이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분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나가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A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A씨는 올해만 경찰에 40차례 신고를 했다. 배가 고프다거나 삶이 힘들다는 것. '단골 신고자'의 신고를 받고도 경찰은 현장에 나가서 A씨의 상태를 확인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자체와 복지센터에 A씨의 사정을 알렸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업무 특성상 A씨를 지원하진 못했지만, 대신 지원이 가능한 기관에 전달했다"며 "같은 내용의 신고가 자주 들어오는 곳이지만,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에 매번 현장에 나가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안전망 속에 숨어있는 사각지대를 자주 봐왔다. 숨진 부모 시신을 곁에 두고 수 개월 동안 함께 지낸 자식들,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사건을 막지 못한 경찰 이야기가 매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무엇이 문제인지 묻고 듣기 전에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자칫 A씨도 '악성 민원인' 중 한 명으로 전락할 수 있었지만, 주위에 귀를 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어딘가 있을 또 다른 A씨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