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왜 한국에서 노조 이야기를 꺼냈을까?
5일 간의 한일 순방 기간에 바이든 대통령이 남긴 의문 가운데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평택공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나 다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해 우리의 가장 숙련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미국 노조원들과 파트너십을 일구기 바란다. 스텔란티스(글로벌완성차기업)는 미국 노조와의 성공적인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이 발생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내 친구 레이 커리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전국적인 협정을 맺고 있다." 이어 22일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과의 만남에서 또 다시 자국의 노조를 찬양했다.
"현대를 포함해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미국 노조 조합원들과 협력해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미국 노조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숙련되고 부지런한 근로자들이다."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무노조 기업. 현대자동차는 강성 노조 때문에 노조리스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기업. 따라서 이들 두 기업의 오너에게 노조와의 협력을 당부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러면 평택공장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전미자동차노조(UAW)란 무엇일까. 우리로 치면 자동차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해당하는 대형노조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 친구'라고 치켜세운 레이 커리는 UAW 위원장으로서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 경영에도 간접적으로 참여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노조 찬미는 국내에선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따라서 국내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미국 노조와 협력해야할 일은 없다고 본 때문일 것이다.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조지아주의 경우 노조 가입이 자유다. 노조 의무 가입을 법(Right to Work)으로 금지한 27개 주 가운데 한 곳이다.
노조 설립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미국은 노동조합 회비를 내는 만큼 노조가 자신의 직장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노조 조직률이 10%를 밑도는 나라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이미 들어서 있고, 추가로 들어설 텍사스도 조지아와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현실성 없는 바이든 대통령의 노조 협력 발언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도 22일 기자들과 전화통화에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마당에 대체 대통령의 생각, 바이든 행정부의 생각이 뭐냐?'는 질문에 직면했다.
이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노조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거기(발언)에 모순(contradiction)은 없다"고 말했다.
질문의 취지를 대통령 발언의 '모순'으로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uaw 홈페이지 캡처대통령의 발언을 크게 받아들인 곳은 당연하게도 UAW다.
UAW는 홈페이지에 해당 발언을 대문짝 만하게 실었다.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해외 방문에서 노동자 조직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을 듣는 것은 주목할 만한 증거"라는 의미도 달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노조 메시지가 UAW를 염두에 두고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위스콘신대학 박홍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발언은 다분히 올해 11월 예정된 중간 선거를 겨냥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올해 선거는 바이든 대통령의 향후 국정 동력을 가늠케 할 분수령이 되는 아주 중요한 선거다.
미국의 전국단위 선거가 그렇듯 이번 선거의 성패도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 달렸다. 그리고 스윙스테이트의 향배는 백인유권자들이 좌우한다.
특히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쇠락한공업도시)에 위치한 스윙스테이트의 백인 유권자들은 상당수가 UAW 등 제조업체 노조원들이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서 한 발언은 오로지 이들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도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인 노동조합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바이든 내각 초대 노동부장관인 마틴 월시 역시 노조위원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