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곡물을 식량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 등에 싸게 넘기려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은 관련국에 약탈 곡물 수입 자제를 요청했지만, 이들 국가는 곡물 출처를 따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가 국제 시장에 내놓은 일부 곡식이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장물이라는 내용의 외교 문서를 아프리카 국가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터키 등 14개국에 발송했다.
미국이 약탈 곡물로 지목한 것은 지난달 크림반도에서 출항한 선박 10여척에 실린 밀이다.
연합뉴스NYT는 이들 선박이 무전기를 끈 상태에서 지중해를 건넜고, 터키와 시리아 등에 정박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국무부에서 열린 식량 안보 관련 회의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곡물을 팔아치워 이익을 내고 있다는 보도는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공급량의 10%를 차지하는 농업 대국으로, 러시아가 침략 이후 약 1억달러(1252억 원) 상당의 밀 50만톤을 약탈했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밀 뿐 아니라 식용유의 원료가 되는 해바라기씨와 야채 등 각종 농산물을 약탈했으며, 2천만 달러(약 250억 원)에 달하는 농기계도 훔쳐 갔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이다.
약탈한 장물을 재판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로서는 러시아가 싼 가격에 넘기는 곡물은 큰 유혹일 수 밖에 없다.
유엔에 따르면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케냐 등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 가뭄 탓에 170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공동으로 낸 보고서에서 세계 곳곳에 식량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케냐의 싱크탱크 HORN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하산 카넨제 소장은 "식량난이 극심하기 때문에 곡식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서방이 밀 부족 문제 등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귀를 기울이겠지만 서방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응에 히스테릭하게 반응할 경우 아프리카 국가들을 러시아의 품으로 더욱 밀어넣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