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경기 성남시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 '리니지2M' 이용자들이 보낸 시위 트럭이 서 있다. 연합뉴스엔씨소프트가 '리니지2M' 방송을 하는 유튜버에게 프로모션(광고비)을 지급해 온 사실이 공개되면서 일반 유저들이 '트럭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측은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유튜버 프로모션'이라는 명목의 게임 광고료 지급 관행이 이번 파문을 계기로 투명해질지는 미지수다.
논란의 발단은 '리니지W'와 '리니지2M' 방송을 병행하던 한 유튜버가 지난달 말 '리니지W 방송을 대가로 프로모션을 받아왔는데, 리니지2M 방송을 해도 방송 횟수로 인정받았다'는 내용을 우연히 밝히면서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이용자들의 문의에 '리니지2M에서는 유튜버 프로모션을 일절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들은 '리니지W를 하기로 계약한 방송 횟수에 리니지2M 방송까지 포함할 경우 사실상 리니지2M 프로모션에 해당한다'며 반발했다.
6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리니지2M 이용자들은 전날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서 프로모션 사태를 규탄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초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계기로 게임 업계에 연쇄적인 '트럭 시위' 파동이 일어난 후 1년여만이다.
연합뉴스사태가 커지자, 엔씨소프트는 전날 오후 유튜브에 사과 영상을 업로드하고 "(유튜버들의) 리니지W 프로모션 방송 조건 때문에 기존 리니지2M 이용자들이 즐겨 보던 방송이 축소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문제의 프로모션 조항도 7월 29일부로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용자들께 리니지2M 유튜버 프로모션으로 읽힐 수 있다는 부분을 저희가 간과했다"며 "개발자를 대표해 언제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운영과 개발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쟁 구조 속 특정 유튜버 지원은 불공정"
연합뉴스하지만 엔씨소프트의 이런 해명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번 '트럭 시위' 주최자이자 리니지2M 출시 후 지금까지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했다는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게임사가 특정 유튜버에게 프로모션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게임에 이만한 돈을 쓰진 않았을 것"이라며 "노력해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강력한 BM(수익모델)으로 유명한 리니지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온 게이머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그만큼 컸다.
리니지2M을 비롯한 '리니지' 프랜차이즈가 공유하는 특징은 유저 간의 무한 경쟁이다. 필드에서 자유롭게 PvP(플레이어 간 전투)가 가능하고, 혈맹끼리 경쟁을 통해 사냥터를 독식하거나 성을 빼앗을 수 있다. 서버 내 랭킹 상위권에 들 경우 게임플레이에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다른 이용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사가 제공하는 확률형 아이템을 결제해 강한 변신과 장비를 얻는 것이 필수다.
게이머들은 이용자 간 경쟁을 강조한 게임에서 유튜버를 상대로 프로모션을 하는 것은 게임사가 앞장서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프로모션 관련 논란에 "유튜버 프로모션은 게임 내 재화가 아닌 광고료로 지급하며, 해당 유튜버가 이를 결제에 사용할지 말지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게임을 하는 유튜버가 프로모션으로 광고료를 받고 이를 게임에 재투자하면 일반 유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는 지적이다.
A씨는 엔씨소프트가 올린 해명 영상과 관련해 "게이머들은 그런 (프로모션) 방송을 원한 적 없다. 이제 와서 (리니지2M 프로모션 인정 관련)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것도 무의미하다"며 "문구를 바꿔 이달 말까지 예정대로 트럭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연한 비밀' 자리잡은 유튜버 프로모션, 지속 가능할까
유튜버 프로모션은 이미 국내 게임 생태계에서 빠질 수 없는 마케팅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엔씨소프트뿐만 아니라 높은 매출을 올리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위메이드의 '미르M'도 출시 초기부터 유튜버를 동원한 마케팅을 이어오고 있다.
게임에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유튜버들은 경쟁 구도의 MMORPG 속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일부는 게임사로부터 프로모션을 받는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자랑하듯 밝히며 시청자와 길드원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튜버에게 집행된 광고료는 곧바로 높은 매출 순위로 이어진다"며 "과거 출판, 음반 업계에서 문제가 된 '베스트셀러 사재기'와 유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대해 갖는 신뢰를 깎아먹는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씨는 "최소한 게임 속에서 싸우는 상대방이 프로모션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있게 해야 했다"며 "소수의 유튜버에게 광고료를 지급하기보다는, 모든 이용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로 기획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무더위 속 한강에 3만명 몰린 중국 게임 축제를 지켜보며
연합뉴스
리니지2M의 유튜버 프로모션 논란이 불붙던 무렵,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는 중국 게임사 호요버스의 게임 '원신' 여름 축제가 열렸다.
호요버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7일간 약 3만 명의 시민들이 행사장인 세빛섬을 찾았다. 한때는 세빛섬 최대 수용 인원인 6천 명을 넘는 인파가 몰려 주최측이 입장을 통제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축제를 방문한다고 해서 게임 아이템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수많은 10대·20대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폭염 속 행사장을 찾았다.
원신 역시 리니지처럼 확률형 아이템에 상당히 크게 의존하는 BM을 가진 게임이다. 좋은 캐릭터와 무기를 얻으려면 만만찮은 금액을 기원(뽑기)에 써야 한다.
하지만 올해 여름, 한국과 중국 게임 업계에서 각각 선두를 달리는 두 기업이 게이머들의 지갑을 열도록 한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한 쪽은 유튜버를 동원한 프로모션으로 불공정한 게임 논란을 자초했고, 다른 한 쪽은 '돈은 안 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
'공정성'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오랫동안 사랑받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게임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