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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 전향인가 프락치인가…증언 주장은 '침투망원'

사건/사고

    김순호 경찰국장, 전향인가 프락치인가…증언 주장은 '침투망원'

    초대 경찰국장 김순호, 과거 경찰 '밀고' 논란
    강제 징집돼 적극적 '망원' 활동…경찰 '밀고' 이어졌나
    운동권에서 전향 해명…프락치 활동 의심 여전

    행안부 산하 경찰국 공식 출범일인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왼쪽)이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행안부 산하 경찰국 공식 출범일인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왼쪽)이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의 초대 국장을 맡은 김순호 치안감이 보안대에서 '특수망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노동 운동 동료들을 경찰에 밀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국장은 "소설 같은 소리"라고 일축하지만 과거 함께 운동했던 동료들의 의문 제기로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 국장은 성균관대 재학 중 운동권 서클에서 활동하다가 1983년 4월 7일 '시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군에 강제 징집됐다. 그는 같은 해 11월 17일 국군보안사령부 심사를 받고 녹화공작(학생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강제 징집 대학생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통한 정보 수집을 시킨 일) 대상자가 됐다.

    당시 함께 강제 징집돼 녹화공작 대상자였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국장은 적극적 활동을 하는 '침투 망원(프락치)'에 해당했다. 녹화공작 대상자는 군부독재의 피해자에 해당하지만, 김 국장의 경우엔 해당 활동을 제대 후에도 이어갔고 결국 경찰 입직에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제대 후 노동 현장에 복귀한 김 국장은 1989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들어가 지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1989년 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머지않아 잠적했다. 그해 8월 김 국장은 '대공 공작업무 관련자'로 특채 대상에 포함돼 경찰에 입직했다.

    인노회 출신이고 김 국장과 강제징집 동기였던 윤병기(61)씨는 "대공업무와 관련된 경력으로 경찰에 특채된다는 건 보이지 않는 프락치 활동 경력이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녹화사업에서 협박이나 회유에 굴복하면 망원이 되는데 종교계 및 노동계에 침투시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망원이 '침투 망원'이었다"고 덧붙였다.

    강제징집녹화공작진실규명위원회 조종주 사무처장은 "강제 징용자 중 녹화공작 관리를 받던 사람 상당수는 제대 후에도 1년에서 1년 반 동안 보안대로부터 계속 접촉과 정보 제공 요구를 받았다고 얘기한다"며 "경찰 입직 후 계속 그쪽 일을 한 것은 이전부터 깊이 개입돼 관계가 돈독히 형성돼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순호 치안감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박종민 기자김순호 치안감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박종민 기자
    김 국장은 경장으로 특채된 후 치안본부 대공수사3과에서 경력을 시작해 경찰청 보안5과, 보안4과 등 90년대 말까지 대공수사·보안업무를 담당했다. 대공수사3과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은폐 보고서를 만든 홍승상 전 경감이 속해 인노회 수사를 맡았던 부서이기도 하다. 홍 전 경감은 김 국장으로부터 인노회 수사 도움을 받아 김 국장을 특채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게다가 김 국장과 함께 강제 징집된 복수의 이들은 "김 국장이 외박과 외출이 금지된 부대에서 애인이 왔을 때 쉽게 외박했다"고 증언하며, "여러 정황상 김 국장이 보안대에 공을 많이 세웠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반면 또 다른 인노회 회원 A씨는 "녹화공작 대상자 중 특수한 조사를 거치는 이들은 '귀 사령부의 업무 협조 요구 시 만사를 제쳐놓고 적극 협력하겠다'는 각서를 쓰는데 프락치가 되겠다는 서약이나 다름없다"며 "프락치 활동이 중요했다기보다 심리전으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김 국장이 잠적한 1989년 4월 경찰에 연행돼 홍승상 전 경감을 만나 동료들을 밀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4월까진 부천에 있었고 이후 고향에 내려갔다고 하는데 직접 광주 집에 찾아갔을 때 김 국장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국장은 당시 경찰 시험공부를 하려고 고향에 내려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당시 한국 사회 학생 운동가 중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안 한 사람은 없다"면서도 "그 고민과 경찰에 밀고하는 건 별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적 갈등 겪는 후배들은 모임에 안 나오기 시작하고 시험공부를 하는 등 두세 단계를 거치는데 김 국장은 그게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김 국장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인노회 수사가 마무리된 시점(1989년 7월)에 경찰에 자백했고,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껴 전향한 것이라는 식의 해명을 한 바 있다. 그는 CBS노컷뉴스에 "모두 사실과 다르다. 곧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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