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윤창원 기자 법원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당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을 상대로 낸 비대위 전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주 비대위원장에 대한 신청이 인용돼 본안 판결까지 직무집행이 정지되면서 이번 재판은 사실상 이 대표의 '완승'으로 풀이된다.
본안 소송이 남았지만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고, 국민의힘 측이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이의신청도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국민의힘은 이의신청마저 기각될 경우 항고할 방침이지만, 이 역시 장시간의 소송을 의미해 정치적 실효성이 크지 않다.
26일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 대표가 주 위원장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주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직무를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해 개최한 최고위원회·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신청은 채무자 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당 대표의 지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이 대표와 주 비대위원장 사이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국민의힘이 '비상상황'이라고 볼 수 있느냐 였는데, 재판부는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의힘 당헌 96조 1항은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대표 측은 해당 규정에 따라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는 '궐위'가 아닌 '사고'라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당 대표 2년 임기 중 6개월 정지는 '궐위'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및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요건인 '비상상황'은 엄격하게 해석하여 당 대표 또는 최고위원회의가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당헌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에 의하여 위 기능을 회복할 수 없거나 회복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 대표 6개월간 사고'는 당 대표 직무수행이 6개월간 정지되는 것에 불과하여 당 대표 궐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으로서 당 대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당을 대표하는 의사결정에 지장이 없으므로 당 대표 궐위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비대위를 만들기 위한 '비상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비상상황이라고 부를만한 외부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부 최고위원들이 국민의힘 지도체제를 전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상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는 지도체제 구성에 참여한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써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고 꼬집었다.
'최고위 정원의 과반수 이상 사퇴의사 표명'에 대해서도 최고위의 기능상실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라고 보지 않았다. 최고위원 일부가 사퇴해도 남은 최고위원들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의힘은 상임전국위원회 소집을위해 최고위원회를 개최했는데, 기능이 상실됐다면 의결 자체가 불가능했어야 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정당의 자율성 원칙에 비춰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는 국민의힘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정당 활동의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전국위 의결이 이뤄지기까지 과정에서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는 이 대표 측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헌에 따르면 상임전국위 임시회의는 최고위 의결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재적 위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개최할 수 있다.
이 대표 측은 일부 최고위원이 사의를 밝히고도 표결에 참여해 무효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더라도 지난 3일 재적 위원 54명 중 20명이 소집요구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개최 조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상임전국위 의결에 중대한 하자가 없고, 이에 따라 열린 전국위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 측이 지적한 전국위 의결에 사용된 ARS 투표방식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ARS 전화투표의 경우 비록 안건에 대한 찬반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으나, 코로나 확산 등으로 인하여 집회를 비대면으로 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를 위법하다거나 중대한 하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처분 일부 인용은 임시 조치라 본안 소송이 남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 다수다. 앞으로 본안 소송이 수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대표는 이번 가처분 결과로 '비대위 효력정지'라는 기대한 바를 손에 쥐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법원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 앞이 취재진들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측은 주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을 정지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불복하고 법원에 이의신청을 했다. 심문 기일은 다음달 14일 오전 11시로 잡혔다. 이의신청으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의신청은 같은 재판부의 같은 판사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대표는) 이미 가처분 결과로 (비대위 효력정지라는) 원하는 바를 얻은 것"이라며 "(국민의힘 측은) 이의신청을 해도 같은 재판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이후 고등법원에 항고를 하더라도 몇 년 뒤에 결과가 나와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판부가 결정문에서 당의 비대위 전환 자체의 효력이 정지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으나, 비대위 체제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단함에 따라 이 대표의 지위 또한 쟁점으로 남게 됐다. 이 대표의 복귀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에 대표로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