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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은 비좁아…中 각지로 세계로 진출한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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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호주

    동북은 비좁아…中 각지로 세계로 진출한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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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길을 묻다

    1992년 8월 한중수교는 한민족이지만 수 십 년을 떨어져 살아오던 조선족과의 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선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국 땅을 밟아 주로 저임금 기피 업종에서 일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했지만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전통적 집거지였던 동북지역을 벗어나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언론재단 지원으로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조선족 길을 묻다'를 준비했다.

    개혁개방 이후 주요 도시, 연해지방으로 진출
    베이징 1982년 3900→2020년 3만 2천
    '코리안 드림' 좇아 한국으로…2021년 현재 62만 8천명
    미국 일본 러시아 등에도 수만명 진출

    ▶ 글 싣는 순서
    한 핏줄부터 우리말 하는 중국인이라는 생각까지
    "이거 먹어 봤어?"부터 "한국 좋은 사람 많아"까지
    [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만주로 건너간 선조들은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중국 동북지역 개척자…황무지를 옥토로
    문화혁명 암흑기 건너 개혁개방의 주체로
    조선족의 자랑 연변대학과 주덕해
    ⑧동북은 비좁아…中 각지로 세계로 진출한 조선족
    (계속)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앙시장 일대 풍경. 연합뉴스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앙시장 일대 풍경. 연합뉴스 
    1. 옌지(연길)가 고향인 60대 조선족 A씨는 지금 베이징에 있다. A씨 자신도 한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부모님도 한중 수교 이후에 한국으로 건너가 돈을 벌었고 최근 귀국에 옌지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2. 연변 자치주 화룡이 고향인 조선족 2세 B씨는 조선족학교 일본어 교사, 자치주 무역부 등에서 일하다 1998년 산둥성 칭다오로 이주해 조그맣게 김치공장을 차려 한국에 수출하면서 사업규모를 키웠고 지금은 중국 내수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연매출이 우리 돈으로 1천억 원에 이른다. 
     
    해방 이후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아 중국인이 된 조선족들은 대부분 동북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강한 민족이지만 벼농사 특성상 한번 정착하면 떠나기 힘들었던 데다 엄격한 호적제도와 식량 공급제로 인구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중국 특색의 반영이었다.
     
    개혁개방으로 중국 남부 광둥성과 푸젠성 등에 일본 기업이 진출하면서 과거 일제 지배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배웠던 조선족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 기업에 취직해 돈을 벌자 많은 이들이 이들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전반만 해도 조선족의 이동은 제한적이었고 지역의 안정성이라는 기존의 구조가 유지되고 이었다. 1990년의 중국 인구센서스자료에 따르면 조선족의 97% 이상이 동북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고 도시화율은 34.%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풀리기 시작한 한중관계가 1992년 수교로 이어지면서 양국의 교류가 급속히 증가했다. 조선족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농촌·농업중심의 전통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동 목적지는 한국과 한국기업의 투자가 집중된 칭다오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연해지역이었다. 조선족들은 산업기술연수, 친척방문, 관광, 결혼, 밀입국, 유학 등의 방법으로 한국에 들어 온 이래 떠나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중국으로 진출하는 한국기업에게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쓸 수 있고 현지 사정에 밝은 조선족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고 교류가 확대되면서 조선족들의 수요도 증가했다. 이는 동북지역 조선족들의 남하와 전 중국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동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돈이 있는 곳으로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들을 부르면서 대규모 연쇄 이동이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한국에 불어 닥쳤던 '이촌향도'였다.
     
    이 결과 2000년에 한국에 체류하던 조선족은 비합법체류자 2만 6천명을 포함해 7만 6천명이었지만 2018년에 72만 8천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코로나19 등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2021년에는 62만8천 명이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족이 경제적 기회를 찾아 한국으로만 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통 집거지였던 동북 3성을 나와 중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경제가 발전한 연안지역은 물론 최남단 하이난다오에서 서쪽 끝 신장까지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1982년 베이징의 조선족 숫자는 3909명이었지만 가장 최근인 2020년 인구조사에서는 3만 2984명으로 늘었다. 930명이던 산둥성은 6만 2천명을 넘었다. 147명이 살던 광둥성에는 3만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상하이는 1982년 461명에서 38년만인 2020년에는 2만 5404명으로 늘었다.
     
    조선족들은 한국과 중국 전역으로 퍼졌을 뿐 아니라 일본, 미국, 러시아, 유럽 등으로도 많이 진출했다. 한 조선족 학자는 일본에 3만~5만명, 미국에 대략 2만 명, 러시아나 유럽연합에 1만명 정도가 나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대 10만 정도의 조선족이 한국 이외의 국가에 진출해 있다는 얘기인데 2020년 중국 인구조사에서 조선족 인구가 170만 명임을 감안하면 5% 정도 이상에 해당하는 무지못할 숫자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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