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한국과 교류가 빨랐던 산둥성 옌타이시에는 조선족들도 많이 산다. 하지만 넓은 지역에 하나의 학교를 꾸릴 정도의 인원은 안 되다보니 다른 도시에서처럼 조선족 아이들의 우리말 교육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2년 옌타이한글학교가 세워졌고 10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많은 조선족 학생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과 노하우도 쌓이면서 우리말 교육도 깊어지고 있다.
7월 29일에서 8월 1일까지 칭다오에서 열린 도시우리말학교협의회 교사연수회에 참석해 모범사례 발표를 한 옌타이한글학교 박경화 교장을 만났다.
옌타이한글학교 박경화 교장선생님이 도시우리말학교협의회 교사연수회에서 사례 발표하는 모습. 해안선미디어 이계옥 특약기자 제공-2012년에 옌타이 한글학교가 시작됐는데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몇 명의 학생이 거쳐갔나?=지금 한 한기에 100명 정도 되는 학생이 수업을 받는다. 이들이 모두 신입생은 아니고 1년에 160명 정도가 이 곳을 거쳐 간다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2년 출발 때는 10명 정도에서 시작했고 제가 합류하던 2016년에는 40명 정도됐다. 학생이 100명 정도 된 지는 3년 정도 됐다. 그간 여기를 졸업한 학생이 700~800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학생들이 오나?=부모 모두가 조선족인 경우는 50% 밖에 안 되고, 조선족이 한족이나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도 많다. 간혹 옌타이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못하는 한국 아이도 온다.
-여기서 공부를 한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어떻게 되나?=중급 과정을 놓고 보면 사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중급 수준에는 많이 못 미친다. 집에서 한국말을 쓰는 경우가 아주 적기 때문에 중급이라고 해도 읽는 것은 괜찮은 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말을 쓰는 게 좀 어려운 정도라고 보면 된다.
-주말 한글학교 과정을 마친 아이들의 민족에 대한 생각 등이 달라지나?=그렇다. 많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배워서 한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공부를 통해서 우리민족이 이런 것을 입고 먹고 쓰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배우고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된다.
옌타이한글학교 박경화 교장선생님이 도시우리말학교협의회 교사연수회에서 사례 발표하는 모습. 안성용 기자-우리말 학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아이가 집에서 한국말을 잘했다. 그런데 유치원에 들어가서부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말을 잊어버리고, 하지 않으려고 하더라. 이러다가 중국 아이가 되겠구나 한족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들 마음이 다 그렇다. 그런 마음들이 합쳐져서 우리말학교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족 가운데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우리말을 제대로 못하고 한족화된 경우는?=우리가 이민 3세다. 우리까지는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커왔다. 그런데 우리 아랫세대들은 정체성이 확 약해진 게 사실이다. 이민 4세대가 부모가 됐을 때 우리말에 대해서 얼마나 애착을 갖고 후세들에게 교육을 시켜줄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이다.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옌타이 한글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지금 후원회장 하시는 분이 방학때 한국국제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해서 두 차례 한글수업을 했었다. 그런데 그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이 내가 조선족이고 고국이 한국과 조선(북한)에 있다는 걸 느꼈나 보다. 이후 열심히 공부해서 고려대에 합격했다. 그 학생 어머니가 연락을 주셔서 한글학교 덕분에 한국에 좋은 학교에 가게 됐다면서 감사의 뜻을 밝히셨다. 2018년부터 매년 1만위안(약 190만언)을 후원해 주고 계신다.
-한국에는 조선족에 대해 편견도 가진 사람도 많은데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 있나?=저도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 한국에는 편견을 가진 분보다는 편견을 안 가진 분이 많다. 편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편견이 존재하고, 한국 사람들 내부에서도 지역 등으로 라벨을 붙이고 하는게 있지 않나.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를 하려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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