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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세계화·전국화 좋은데…없어지는 그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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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호주

    조선족 세계화·전국화 좋은데…없어지는 그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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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길을 묻다

    1992년 8월 한중수교는 한민족이지만 수십년을 떨어져 살아오던 조선족과의 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선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국 땅을 밟아 주로 저임금 기피 업종에서 일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했지만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전통적 집거지였던 동북지역을 벗어나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언론재단 지원으로 조선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조선족 길을 묻다'를 준비했다.

    한국으로,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농촌공동화 발생
    옌지, 선양 등 일부 도시는 조선족 인구 증가
    주변 농촌 인구 흡수, 귀국자 정착지로 도시 선택
    조선족 97% 살던 동북3성 현재는 60만명 정도로 추정

    ▶ 글 싣는 순서
    한 핏줄부터 우리말 하는 중국인이라는 생각까지
    "이거 먹어 봤어?"부터 "한국 좋은 사람 많아"까지
    [르포]옌지는 지금 공사중…조선족의 서울 옌지를 가다
    만주로 건너간 선조들은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중국 동북지역 개척자…황무지를 옥토로
    문화혁명 암흑기 건너 개혁개방의 주체로
    조선족의 자랑 연변대학과 주덕해
    동북은 비좁아…中 각지로 세계로 진출한 조선족
    ⑨조선족 세계화·전국화 좋은데…없어지는 그들의 고향
    (계속)

    중국 조선족들은 자신들을 '과경민족'이라고 부른다. 국경을 건너해 이주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우리민족의 중국 이주는 1945년 일제 패망 당시 216만 명에 이르렀고 동북지역에 집중됐다. 이중 절반 정도가 이런 저런 이유로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아 조선족이 됐다.
     
    일제가 망하고 국공내전을 거쳐 신중국이 성립됐지만 조선족들의 생활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한반도에서처럼 한 마을을 이루고 우리말을 쓰고 우리의 풍습을 지키며 살았다. 땅만 중국 동북이었지 농사와 말, 생활은 우리 것이었다.

    조선족들의 생활상. 연변박물관 전시품 촬영. 안성용 기자조선족들의 생활상. 연변박물관 전시품 촬영. 안성용 기자 
    조선족 집거지, 구성원이 100% 조선족인 마을, 조선족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조선족의 97% 이상이 동북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족 숫자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192만 명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개혁개방 이후 특히 1992년 한중수교는 조선족이 장기간 생활해오던 삶의 터전인 동북지역을 을 떠나 한국으로, 일본으로, 중국 각 지역으로 흩어지는 계기가 됐다. 일부는 관내에서의 이동, 즉 살던 농촌을 떠나 옌지(연길) 같은 도시로 이동했다.
     
    조선족의 이동은 경제적 풍요를 제공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과 안목을 제공하는 등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다. 농촌 공동화다.
     
    농촌은 비어가기 시작했고 노인들만 남아 마을을 지키게 됐다. 아이 울음소리는 끊겼다. 1970~80년대 이후 한국 농촌에서 일어났던 현상이 30~40년 뒤에 중국 조선족 농촌 마을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헤이룽장성 하이린시에 있는 조선족 마을 중흥촌. 1980년때까지 조선족 300호 1천여명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수 십호로 줄었다고 한다. 바이두 캡처헤이룽장성 하이린시에 있는 조선족 마을 중흥촌. 1980년때까지 조선족 300호 1천여명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수 십호로 줄었다고 한다. 바이두 캡처
    벌써 20년 전의 얘기지만 헤이룽장성 하이린시의 한 조선족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은 위기상태의 조선족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돈 벌러 한국으로, 연해지방으로, 도시로 나가면서 촌장을 맡을 사람이 없게 되자 55세 남성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촌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서기가 문제였다. 당서기는 당원이어야 하는데 역시 마땅한 젊은이가 없자 55세 농부가 뒤늦게 입당원서를 쓰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은 해림시 산하 38개 조선족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졌던 일이었다고 한다.

    랴오닝성 선양의 대표적 조선족 거리. 선양에는 9만 2천명 정도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다. 안성용 기자랴오닝성 선양의 대표적 조선족 거리. 선양에는 9만 2천명 정도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다. 안성용 기자 
    랴오닝성 선양시에 있는 만융촌은 조선족으로만 호구가 구성된 100% 조선족 마을이다. 하지만 880호 3천여 명이 호적에 등록돼 있지만 2500명이 한국에 가 있고 남아 있는 사람은 노인들과 아이들뿐이다.
     
    조선족 인구 유출은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옌지, 선양, 대련 등 일부 도시에서 조선족 인구 감소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주변 농촌 인구를 흡수하고 한국 등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지 않고 도시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특수한 현상이다.
     
    조선족의 중심도시 옌지시의 인구는 2019년 말 기준 55만 6천 명으로 이중 55.6%인 30만 명이 조선족이다. 그러나 이는 호구 기준으로 실제로는 상당수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조선족의 전통적 집거지던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의 조선족 전체 조선족 인구는 2000년 177만 4천명에서 2020년 144만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 또한 호구 기준이어서 실제 인구는 훨씬 적을 게 분명하다. 2022년 현재 60만명 정도의 조선족이 동북3성에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3성 조선족 인구 변화동북3성 조선족 인구 변화
    조선족이 있는 곳에 조선족학교가 있었지만 집거지에서 인구 유출이 심해지면서 조선족 학교 유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랴오닝신문에 따르면 2천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선족 정규학교는 1천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225개만 남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학생신문인 조선족중학생보는 1990년대 초만해도 조선족 중고등학교 재학생이 40만 명에 달했지만 2015년에는 2만 3천명으로 급감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100% 조선족 마을 '만융촌'에는 1938년에 만들어진 조선족 초등학교가 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학생이 500명 정도 됐지만 지금은 6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이 마을 사정에 밝은 한 조선족 인사는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학교가 가장 큰 문제다. 이제 곧 끝난다. 애가 없는데 어떻게 하겠냐"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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