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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1000일] "이만희부터 백신까지…5가지 키워드"

사회 일반

    [코로나19 1000일] "이만희부터 백신까지…5가지 키워드"

    대구 신천지서 시작된 집단감염 공포
    마스크 구매 대란에 마트앞 수백미터 줄서기
    2명 중 1명은 확진자…자가격리에 셧다운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비대면' 일상속으로
    백신 통한 '집단면역' 움직임…잔여백신 논란도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광일 (기자)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1호 확진자가 나온 날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바로 2020년 1월 20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이 딱 999일 지났습니다. 내일이면 1000일이에요. 벌써 그렇게나 오래 됐어, 놀라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그 1000일의 기억을 오늘 함께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김광일 기자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 김광일> 안녕하세요.

    ◇ 김현정> 진짜, 오늘 그러니까 우리가 1000일 동안 뭘 겪었고 뭘 함께 뛰어넘었는지 기억을 한번 더듬어보자는 말씀이죠?

    ◆ 김광일> 뭘 이렇게 새로운 걸 제가 갖고 온 건 아니고요. 3년 가까운 지난 시간을 정리해 드리는 느낌, 추억팔이에 뒷 얘기 조금 섞어서 드릴 테니까 그때는 그랬지 정도로 가볍게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어디서부터 가볼까요?

    ◆ 김광일>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요. 1000일 전 그날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던 다음 날인데요. 제가 음성을 하나 준비해 왔어요. 같이 한번 들어보실까요?

    [★김현정 앵커 / 2020년 1월 20일 김현정의뉴스쇼 中 >
    어제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하던 여성이 공항에서 발견이 됐습니다. 국내에서 발견된 첫 확진 환자. 걱정이 되는 건 이게 사람 간 전염이 되는 건가. 된다면 잠복기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중국인은 혹시 없겠는가]
     
    ◇ 김현정> 그러니까 이때만 해도 사람간에 전염이 되는 건가를 제가 질문하고 있을 정도로 뭐가 뭔지 몰랐어요.

    ◆ 김광일> 이름도 그때는 지금 우리가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라고 부르지만 그런 이름. 코비드, 이런 이름이 붙기 전이었고 그래서 국내에서는 우한폐렴이다.

    ◇ 김현정> 우한폐렴이라고 불렀죠.

    ◆ 김광일> 이렇게 불렸을 시절이었습니다.

    ◇ 김현정> 코로나 1000일의 기억, 첫 키워드는 뭡니까?

    ◆ 김광일> 집단감염입니다.

    ◇ 김현정> 집단감염. 제일 무서웠던 단어예요. 어찌 보면 이게.

    ◆ 김광일> 제일 충격을 줬던 것은 제일 먼저는 신천지였습니다. 대구에서 집단감염 터졌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그게 이단 신천지에서 확산했던 거였고요. 신천지 교회를 고리로 지역사회에 전파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이만희 총회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었어요.

    ◇ 김현정> 가평에서. 이게 20년 3월 일입니다. 2020년.

    ◆ 김광일> 엄청 집중되면서 난리, 북새통이 벌어졌었어요. 온 언론이 다 몰렸고 옆에서 신천지 피해자 가족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어요.

    ◇ 김현정> 맞아요. 기억나요.

    ◆ 김광일> 이만회 총회장이 사과문을 먼저 읽었고요. 질문들을 몇 개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좀 비판적인 언론사들을 무작위로 지목했는데 그게 지목이 됐어요. 그래서 국민일보 기자가 본인은 정말 영생불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했고 저희 CBS 김태원 기자도 총회장이 자가격리가 제대로 됐느냐, 이런 질문을 했었는데 이만희 씨가 제대로 답을 못했었거든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대리인이 귀에다 대고 답변을 불러주는 좀 희안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 김현정> 기억납니다. 그 여성.

    ◆ 김광일> 이것도 한번 직접 들어볼게요.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 2020년 3월 2일 기자회견 中 >
    이만희 > 27일 날 왔습니다. 그리고 또.
    (행정서무 > 17일).
    이만희 > 그런데 17일에 여기 왔다가 또 갔다 왔다 자꾸 그렇게 한 것입니다.
    (행정서무 > 총회장님, 움직이지 않고 여기에 있었다고 하세요.)
    취재진 > 정확히 말씀해 주세요.
    (행정서무 > 17일날 와서 여기에 계속 있었는지 물어봐요.)
    이만희 > 여기에 있기도 하고 어디 갔다오기도 하고 했습니다.
    취재진 > 어디를 다녀오셨나요.
    진행자 > 네, 이것으로 총회장님…
    취재진 >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진행자 > 질문 끝났습니다. 나가셔도 됩니다.]

    ◇ 김현정> 귀가 따가울 정도인데 저날 정말 대단했어요. 그리고 옆에 있는 그분이 무슨 평화 씨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 김광일> 행정서무였던 김평화 씨로 드러났습니다. 신천지 2인자냐 아니냐, 이런 논란도 그때 제기되기도 했어요.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 김광일> 이만희 총회장 같은 경우는 이 일이 있은 이후에 방역 방해 혐의, 감염병예방법 위반혐의로 기소까지 됐었는데 그거는 결국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요. 이거 하면서 횡령혐의 수사도 같이 받았었는데 그거는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 김현정> 집단감염. 그 후에는 어떤 사례가 있었죠?

    ◆ 김광일> 곧바로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100명대 집단감염이 터졌고요. 5월에는 이태원 클럽, 그리고 8월에는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서 각각 번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확진자한테 낙인찍고 죄인 취급하는 그런 분위기도 일부 있었어요. 아마 그때 두려움이 클 때라서 그랬을 텐데 동선이 공개되고 가족들이 죄다 격리되는 그런 불편도 있었고요. 제가 어제 당시 구로구 콜센터를 담당했던 역학조사관 한 분한테 전화를 했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어떤 확진자가 계속 울기만 해서 상담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 김현정> 그때는 진짜 막막했죠. 나 하나 걸리면 회사 전체가 폐쇄될 정도니까.

    ◆ 김광일> 그만큼 공포가 짓눌렀던 시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 김현정> 맞습니다. 집단감염 첫 번째 키워드. 코로나 1000일의 기억, 두 번째 기억은 뭔가요?

    ◆ 김광일> 마스크 대란.

    ◇ 김현정> 마스크 대란 진짜 줄이 100m였어요. 정말.

    ◆ 김광일> 이거는 사진을 한 장 같이 보실 수 있을까 싶어요.

    ◇ 김현정> 금일 마스크 재고소진으로 판매 종료됐습니다라고, 약국이에요. 약국 선반에 붙어있는 거. 그리고 긴 줄.
    대구 마스크 구하기 대란, 마트 앞 장사진 [출처 연합뉴스]대구 마스크 구하기 대란, 마트 앞 장사진 [출처 연합뉴스]
    ◆ 김광일> 이거는 대구 이마트 앞에 사진이고요.

    ◇ 김현정> 대구 이마트 앞, CBS 앞, 어디든 마스크 파는 곳 앞은 다 저렇게 세 겹, 네 겹 줄 서있었죠.

    ◆ 김광일> 어딜 가도 저랬어요. KF94 마스크가 그때 품귀현상이 벌어져서 저랬었는데 지금은 이런 비말 마스크도 나왔지만 그때 그랬고 마스크 사재기, 이런 게 있었고 그래서 정부에서 사재기 단속도 하고 공적 마스크를 마스크 5부제로 도입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때 마스크가 얼마나 비쌌는지 몰라요. 마스크가 진짜. 코로나 1000일 기억을 쭉 들여다 보면 제일 드라마틱한 변화가 우리 일상생활에 마스크가 깊이 들어왔다는 걸 거예요.

    ◆ 김광일> 그래서 호모 마스쿠스, 이런 말까지 나왔었습니다.

    ◇ 김현정> 맞아요.

    ◆ 김광일> 호모 사피엔스 이후에 현생 인류 이후 시대에 어떤 다음 세대라는 신조어였을 거고 처음에는 이걸 과연 다 같이 쓰고 다닐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 김현정>맞아요.

    ◆ 김광일> 지금은 오히려 벗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 김현정> 이제는 야외에서 벗어도 됩니다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쓰고 다닐 정도로 진짜 피부처럼 돼버린 이 마스크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죠. 세 번째는요?

    ◆ 김광일> 자가격리.

    ◇ 김현정> 자가격리.

    ◆ 김광일> 그제 기준으로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전체 우리나라 인구의 한 절반 정도가 되는 25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두 명 중에 한 명이 산술적으로 보면 감염된 셈이고요. 지금은 흔한 일이 됐지만 초기에는 확진자 한 명이 나오면 밀접접촉자까지 며칠씩 다 격리되고. 그리고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건물 전체가 셧다운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 김현정>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CBS도 방송국 중에 1호로 셧다운 됐었고 저도 밀접접촉으로 자가격리 일주일 하고 그랬잖아요.

    ◆ 김광일> 그때 우리도 녹음방송 체제로 이렇게 전환이 되고. 뉴스쇼 출연했던 기자가 확진 판정 받으면서 생겼던 일이었어요. 우리 김정훈 기자.

    ◇ 김현정> 김정훈 기자도 진짜 수칙을 진짜 잘 지키는 기자인데 그때 세 명까지는 식당에서 밥 먹어도 되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식당에서 밥먹었는데 그 셋 중에 한 명이 걸려 있어서 거기서 옮았던. 수칙 진짜 잘 지키는 기자예요.

    ◆ 김광일> 그 수칙 잘 지키는 기자의 심경을 목소리로 담아왔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 김정훈 CBS 기자 > 그 당시에는요. 여러분들이 기억하실까 모르겠지만 기자 1호(확진자) 였거든요. 아시는 것처럼 기자들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으니까 조금 더 파장이 클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CBS가 셧다운까지 했었고 제가 다른 방송, TV방송에 모자이크로 제가 나오기도 했고.]

    ◇ 김현정> 이제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는 진짜 큰일이었습니다.

    ◆ 김광일> 맞아요.

    ◇ 김현정> 진짜 큰일이었습니다.

    ◆ 김광일> 그날 같이 출연했던 출연자들도 덕분에 다 자가격리가 됐었거든요. 특히 민주당 이낙연 당시 당대표도 그 후보도 출연을 했었고 전당대회 준비 중이었는데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네 번째 키워드는 뭡니까?

    ◆ 김광일> 사회적 거리두기.

    ◇ 김현정> 사회적 거리두기. 사람들 모이는 걸 막아서 감염병 확산을 좀 막아보자라는 거였잖아요.

    ◆ 김광일> 혹시 거리두기 정책이 가장 강력했을 때 몇 명까지 제한했는지 기억하세요?

    ◇ 김현정> 몇 명까지 모일 수 있느냐. 몇 명이었죠?

    ◆ 김광일> 2명까지만 됐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출처 연합뉴스]
    ◇ 김현정> 2명까지만 모일 수 있는, 식당에서 밥 먹을 때.

    ◆ 김광일> 작년 여름이었는데 수도권 지역에서 오후 6시 이후에 2명까지였었거든요. 그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의아한 게 확진자 수가, 하루 확진자가 2000명도 안 됐었습니다.

    ◇ 김현정> 맞아요.

    ◆ 김광일>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런데 그때도 좀 더 확산이 무서웠기 때문에 그렇게 조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 김현정> 비대면이라는 개념이 그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했고 재택근무, 그다음에 학생들도 재택 수업, 이런 게 일상화가 되는 정말 우리로서는 신기한 경험들을 했어요.

    ◆ 김광일> 기자 입장에서 취재도 비대면으로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심지어는 코로나19 당시 상황을 브리핑 하는 그런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청 브리핑도 줌 회의를 통해서 이렇게 했던 경우들이 있었고 장례식, 결혼식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스몰웨딩 하거나 유튜브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일들도 그때는 있었습니다.

    ◇ 김현정> 맞아요. 유행 커지면 사적 모임을 조금 더 조였다가 조금 완화되면 느슨하게 가고 이런 걸 번갈아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 많았습니다.

    ◆ 김광일> 자영업자들이 대표적입니다.

    ◇ 김현정> 그럼요.

    ◆ 김광일> 좀 완화되면 다시 느슨하게 하기도 했지만 다시 또 조이기도 하고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힘들어 했던 경우들이 있고요. 영업제한까지 걸리면서 모두가 희생을 감수해야 됐고 심지어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들도 생겼었습니다.

    ◇ 김현정> 그리고 그 1000일을 지탱해 준 한가운데는 의료진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 의료진의 노고를 빠트리고 갈 수가 없어요.

    ◆ 김광일> 헌신하겠다고 막 그때 자발적으로 달려갔던, 대구로 달려갔던 의료진도 있었고요. 방역당국에서도 사실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서 대응을 했었거든요. 그걸 상징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사진으로 같이 보실게요.
    정은경 전 중앙방역대책본부장(전 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정은경 전 중앙방역대책본부장(전 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
    ◇ 김현정> 정은경 본부장. 저 머리 색깔 변한 거 보세요. 정은경 본부장 처음에 새까만 색깔, 염색한 머리였던 건데 얼마나 바쁜지 염색을 못 하는 상황이 됐어요. 나중엔 머리가 하얗게 백발인 상태로 매일 브리핑 했잖아요.

    ◆ 김광일> 그 담당했던 취재기자가 했던 얘기가 정은경 본부장이 집이 서울에 있는데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잘 씻지도 못하고 정말 시간을 쪼개가면서 대응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현정> 본부에서 중간에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서 청장이 된. 1000일이니까요.

    ◆ 김광일> 다만 지금 상황은 조금 안타까운 측면도 있습니다. 한 늘공 실무자, 그러니까 원래 공무원인 실무자가 했던 말인데 영웅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우리가 역적이 됐다, 이런 말도 하더라고요. 이게 현장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는 거냐면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과학방역이 아니라 정치방역이었다, 이렇게 평가된다는 점에서 속상하다는 얘기들도 조금 있고요.

    ◇ 김현정> 현장의 실무자들.

    ◆ 김광일> 반대로 또 어떤 자문위원 같은 경우는 저한테 한 얘기가 똑같은 일을 하는데 지금 정부를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안 실려서 안타깝다, 속상하다,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 김현정> 현장에서는 이래저래 힘들다는 얘기네요. 여전히. 마지막 키워드는 뭘 골라 오셨어요?

    ◆ 김광일> 백신입니다.

    ◇ 김현정> 이거 빠뜨릴 수 없죠. 백신.

    ◆ 김광일> 그 백신도 초기만 해도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어요. 그런데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 넘어설 때쯤, 그때쯤부터 서둘러 맞자, 집단면역 만들어야 된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었고 그러면서 우선접종 시작하고 빨리 접종하기 위해서 광클이라고 하죠. 그렇게 경쟁하는.

    ◇ 김현정> 맞아요. 그랬었죠.

    ◆ 김광일> 그런 시대도 있었던가 하면 뒤에는 백신이 남아서 잔여백신을 어떻게 처리하냐 이런 문제들까지 나중에 있기도 했습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서울 성동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 김현정> 코로나 1000일의 기억들 우리가 짧은 시간이지만 한번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봤습니다. 여러분, 1000일 동안 정말 고생많으셨고요.

    ◆ 김광일> 다만 아직까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어요.

    ◇ 김현정> 바로 그거죠. 1000일 동안 고생 많이 하셨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더 힘내고 이 남은 고비들 넘겨보자, 서로 등 토닥이면서 이 말씀을 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광일 기자 고생하셨어요.

    ◆ 김광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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