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2년 전이었죠. 아파트 주민의 지속적인 갑질 때문에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경비원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 시행됐는데요. 지난 21일로 꼭 1년을 맞았습니다. 상황은 좀 바뀌었을까요? 직접 경비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온 사회부 민소운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안녕하세요.
[앵커]일단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라는 게 시행되고 있었는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서 먼저 짚어보고 가죠.
[기자]네,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라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시행됐는데요.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서, 경비노동자들이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그러니까 경비원이 해도 되는 업무와 해선 안 되는 업무를 비교적 자세하게 명시한 건데요. 예를 들어 재활용품 분리수거나 택배물 보관 업무를 경비원이 해도 되는 일로, 제초 작업이나 대리 주차, 그리고 주민들 집에 택배물을 배달해주는 일은 경비원이 해선 안 되는 일이라 못 박은 겁니다.
[앵커]경비원의 업무를 '허용 업무'와 '제한 업무'로 구분한 건데, 법 시행 후에 경비원들의 근무 환경은 좀 나아졌나요?
[기자]오히려 일이 늘었다는 경비원들이 많았습니다. 택배 보관, 분리수거 등의 업무들은 해도 되는 일이라고 규정하다 보니 원래는 안 했던 업무를 추가로 하게 됐다는 겁니다. 구로의 한 아파트에선 해당 법률 시행 이후, 갑자기 경비원들을 불러 모아 '오늘부터 나무에 물 주는 것은 경비원들의 업무'라고 통보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목 식재'는 해당 아파트 경비원들의 일이 아니었는데, 법률에 경비원의 업무로 명시되면서 경비원들의 업무가 오히려 늘어난 겁니다.
[앵커]현행법에는 경비 업무가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로 정의돼있는데, 이 법 시행 후에 오히려 다른 업무가 늘어난 상황이에요. 그렇다면 폭언, 폭행 같은 갑질은 좀 줄었습니까?
[기자]이건 당사자의 목소리로 먼저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 장모씨입니다.
[인서트1/경비원 장모씨]"아니 우리 옆에 단지 보면 주민이 뭐 저 담배 사와라 하고…그럼요 그런 것 듣기도 하고… 전직장 있을 때는 주차 단속하다가 막 폭행당한 적 있고 그래서"
[앵커]아직도 담배 심부름을 하시고… 전직장에선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
[기자]또 제가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였는데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던 주민의 갑질로 인해 5년간 무려 24명의 관리소장이 교체됐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해당 아파트엔 경비원이 따로 없어 사실상 관리소장이 경비원 역할을 했었는데요.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소장은 갑질을 일삼은 주민에게 욕설을 듣고 끊임없는 감시 등에 시달렸다며 경찰 고소를 준비 중입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경비원들은 분리수거를 잘못한 주민에게 방법을 설명하면 '다른 아파트로 가고 싶냐, 경비 주제에 뭘 가르치냐, 니가 뭔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사를 안 했다고 용역업체에 불려가 각서를 쓴 경비원도 있었습니다.
경비원 홍모씨의 말도 들어보시죠.
[인서트2/경비원 홍모씨]"아니 나 주차 자리가 없다고 막 전화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내 차 거기 주차돼 있는데 내차 뺄 테니까 거기 가져다 대세요 그렇게 하는 수밖에…"폭행 사건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데요. 몇 달 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차를 하면 안 되는 곳에 차를 댄 주민에게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가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앵커]이런 갑질,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뭐죠?
[기자]이 부분 역시 취재 과정에서 한마디로 딱 나오더라고요. 경비원 이모씨의 말 들어보시죠.
[인서트3/경비원 이모씨]"경비들은 원래 주인이, 뭐야 입주민이 갑이잖아요 경비원은 을이고. 그러니까 그게 시키면 하는 거야 그냥. 그게 아니면 (다른 데) 가야 돼"
[앵커]시키는 거 안 하면, 그냥 다른데 가야 한다.
[기자]이걸 용어로 정리해보자면 '다중사용자 구조' '불안정한 고용', 이렇게 2가지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다중사용자 구조'라는 특성부터 말씀드리자면. 경비노동자의 '갑'이 되는 사용자는 한 명뿐이 아니잖아요. 용역업체를 비롯해 관리사무소부터 입주자 대표회의, 심지어는 개별 입주민들 모두가 경비원의 사용자로 인식되는 그런 '다중사용자'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입주민이 경비원의 고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갑질을 하게 됩니다.
또 경비원들은 대부분 3개월,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계약 형태로 근무하는데요. 이런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갑질을 당해도 그냥 침묵하게 됩니다. 2~3개월마다 사실상 계약이 끝날 가능성이 크니까 입주민들이 시키는 일을 거부하거나 본인이 당하는 문제에 대해 고충을 털어놓기가 되게 어려운 상황인겁니다.
[앵커]고용 불안이 갑질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실제로 고용 불안을 겪는 경비원들이 많나요?
[기자]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는 경비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마포구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15명 중 11명도 해고를 앞두고 있는데요.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갑자기 70세 이상은 다 자르겠다고 한 겁니다.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도 이달 초 87명의 노동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정말 안타까웠던 건, 해고된 경비원 중 10명 이내의 경비원들은 임금을 깎고 청소 업무라도 하겠다며 청소노동자로 남았다는 겁니다.
[앵커]이런 '고용 불안'이나 갑질 방지…법률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기자]우선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선 '기간제법' 개정이 필요한데요. 3개월 단위 초단기 계약을 계속해 갱신할 경우에는 경비원을 상용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을 도입하는 겁니다.
또 경비원을 파견하는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고용 승계'를 법률로 보장하거나,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뜻하는 '갱신기대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방법이 해결책으로 제시됐습니다.
[앵커]'갑질' 방지는요?
[기자]일단 아까 지적한 대로 오히려 과다노동을 발생시키고 있는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정을 손봐야 하겠고요. 법률 위반 시 즉각적으로 과태료 부과가 이루어지도록 제재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앵커]제도도 그렇지만 옆집 이웃과는 존중하며 잘 지내는 사람도 경비원에겐 당당하게 갑질을 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비합리적이고 안타깝거든요.
[기자]맞습니다. 경비원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경비원들은 그저 주민들이 경비원들을 바라볼 때, 경비원 또한 다른 노동자처럼 정당한 권리를 가진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동등하게 바라봐주길 바랐습니다. 시혜적인 시선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