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장례식장 모습. 가장 많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안치된 동국대 일산병원에는 14명의 희생자가 이송됐고, 현재 2명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고양=황진환 기자"자식을 잃은 부모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는 거예요. 서로 의견은 다르다지만 비판은 너무 가혹해요. 자식을 먼저 보낸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듭니다. 부탁드려요."
31일 수도권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A(64)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게 가하는 비판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조카 B(20대·여)씨를 잃었다.
슬픔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새벽까지 지켜보던 뉴스 속 장면에 조카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메시지 수십 통을 보냈고, '괜찮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안심했다. 하지만 다음날 B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A씨는 "다들 안부 문자에 답장을 하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우리 조카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B씨의 친부모들은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터져나오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전날도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일각의 날선 비판은 유족들의 마음을 쥐어짠다.
A씨는 "이태원 관련 기사 댓글을 봤는데,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며 "누구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숨진 이들과 유족을 향한 비판은 잠시나마 멈춰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부모는 혼이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된다"며 "나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들은 정말 힘겨운 시간을 겨우 버티고 있다. 애도를 부탁드린다"고 거듭 말했다.
유족들은 참사가 발생한 과정을 되돌아 볼 때도 속이 탄다. 10만 인파를 예상하고 경찰 등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박종민 기자
앞서 이태원 핼러윈 축제 이틀 전 경찰은 "일일 약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이태원 관광특구에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찰병력 200여명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압사 사고에 대한 예방책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담당 지자체인 용산구청도 압사사고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A씨는 "예상할 수 있는 사고는 없다지만, 이태원에 10만 명이 몰릴 거라는 예상은 다들 했더라"라며 "경찰도 실제로 인력을 투입했는데, 이렇게 참사로 번질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은 지역 행사를 할 때도 안전 매뉴얼을 갖추고 응급차도 부르는데 이태원엔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그 좁은 골목길에서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는지, 안전조치는 제대로 이뤄진 게 맞는지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라고 덧붙였다.
A씨는 "내 가족이어서,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사고 자체가 안타까운 참사"라며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10시 20분쯤 이태원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서 인파가 쓰러지며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현장 일대의 폐쇄회로(CC)TV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이태원역 인근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합동감식을 실시한다.
한편 이번 참사로 현재까지 154명이 숨지고 149명(중상 33명·경상 11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중 여성은 98명, 남성은 56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14개국 2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