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이태원 참사' 약 4시간 전부터 해당 장소에 있던 시민들이 112에 "압사당할 것 같다", "안전 조치를 취해달라"며 10여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의 대응은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엔 고작 4번만 나가봤고, 그마저도 참사가 일어나기 1시간 전부터는 신고가 들어와도 "인근에 경찰이 출동해 있다"며 전화 안내만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경찰청에 특별감찰팀을 설치해 당일 112 신고 처리에 관해 감찰을 실시하는 등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12 신고 내역이 공개된 경위와 시점 등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측됐음에도 아무런 예방책이 없었던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당일 112 직원들의 미흡한 대응으로 '꼬리자르기'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관련 브리핑을 열고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에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청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엄정하게 사안의 진상을 밝히겠다"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경찰에게 맡겨진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제 살을 도려내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경찰청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당일 112 신고 내역 및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부터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참사 장소인 '해밀톤 호텔 부근 이마트24 편의점' 앞에서 한 시민은 112에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들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것 같다"며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다"고 신고했다.
이후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고, 오후 8시 11분 자체 종결했다. 이후 경찰에는 오후 8시 9분, 8시 33분, 8시 53분, 9시, 9시 2분, 9시 7분, 9시 10분, 9시 51분, 10시, 10시 11분 등 참사 직전까지 10차례의 유사한 신고가 이어졌다. 신고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쓰러지고 통제가 안 된다", "너무 많아서 압사당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 "인파들이 너무 많아서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다", "인원 통제가 필요하다. 위험한 상황" 등 반복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이태원 참사 현안 관련 보고 전 인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하지만 경찰은 총 11차례 신고 중 4건만 현장으로 출동했고, 나머지 7건은 "인근에 경찰이 출동해 있다"고 안내만 한 뒤 종결했다. 참사 약 1시간 전인 오후 9시 2분 신고에 대한 현장 출동을 끝으로 이후엔 전화 안내만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11건 전부가 사고 주변인 건 사실이다. 다만 실제 경찰관이 어떻게 조치했는지는 확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112 신고 내역이 공개되면서 경찰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수차례 참사를 예고하는 신고가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결국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전날까지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엔 매뉴얼이 없다', '예년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했다'는 등 변명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에 사후 대응조차 안일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참사 3일차에 뒤늦게 경찰이 112 신고 내역을 공개하고 감찰에 착수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작은 이날 오전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 브리핑이었다. 중대본은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대략 오후 6시부터 1건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최초 기록으로 봤을 때 오후 6시에 하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신고 정도에 불과했다"며 최초 신고가 참사 약 4시간 전부터 있었음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직후인 11시 30분 윤희근 경찰청장은 별도 브리핑에서 112 신고 처리에 대한 현장 대응이 미흡했음을 밝혔고, 특별감찰을 실시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윤 경찰청장은 "관련 내용을 언론을 포함한 국민들께 소상히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더니 오후 3시 30분쯤 경찰청 기자단에게 112 신고 내역과 녹취록을 공개했다. 하루 만에 참사의 원인이 당일 112 신고 대응 부실로 좁혀진 셈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론이 불거지자, 112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른바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당일 경찰이 112 신고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 역시 문제지만, 본질적으로는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측됐음에도 정부나 지자체 등 어떤 기관도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은 책임이 있는데 이를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오전 경찰청은 서울 용산경찰서에 감찰 인력을 투입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