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레고랜드 사태에 더해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 미(未)이행 논란까지 설상가상으로 불거지면서 신용 경색 기류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선 일단 시장 심리 안정이 급선무인 만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만큼은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흥국생명, 콜옵션 未행사 논란에 결정 번복…"예정대로 조기상환"
흥국생명은 기존에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에 대해 콜옵션을 예정대로 행사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콜옵션 미행사'라는 기존 결정의 여파로 채권시장에서 한국물(Korean Paper)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서 다른 회사들까지 외화 자금 조달 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과의 협의 끝에 방침을 바꾼 것이다.
앞서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 행사를 유예하기로 지난 1일 결정했다. 해당 신종자본증권은 그해 11월 싱가폴 거래소를 통해 연 4.475%의 금리로 발행됐으며, 콜옵션 행사 예정 시점은 오는 9일이었다. 해당 증권의 만기가 30년인데다가 콜옵션 행사가 의무사항도 아니지만 투자자들은 콜옵션 행사 예정 시점을 실질적인 만기로 인식하고 있고, 발행사들도 이를 감안해 꾸준히 조기상환을 시행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행적 약속이 깨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연합뉴스실제 시장에선 일부 한국물 가격이 급락하는 등 불신 심리가 반영되자 흥국생명은 이날 콜옵션 행사 방침을 밝히며 "최근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환 자금을 자체 자금과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 보험사 대출 등의 수단을 동원해 마련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앞선 콜옵션 미행사) 공시 이후 금융감독원 등 당국과 끊임없이 협의가 이뤄진 결과"라고 말했다.
일단 단기적으론 추가적인 유사 논란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콜옵션 행사 시점이 이번 달에 도래하는 보험사 자본성 증권은 푸본현대생명의 신종자본증권과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로 도합 1300억 원 규모다. 두 회사 관계자 모두 조기상환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한은, 추가 빅스텝 경계해야"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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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 상황은 글로벌 긴축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각종 위험 변수가 돌출하면서 시장 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적극적인 안정책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흥국생명 사안 자체도 일단 우여곡절 끝에 수습되는 모양새지만, 시장에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를 남긴 만큼 위기심리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오는 24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선 무엇보다 '시장 안정'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취지의 '추가 빅스텝 경계론'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정부와 금융권의 각종) 유동성 대책 등이 동원됐음에도 외형적인 채권시장 변화는 크지 않다"며 "그만큼 긴축 정책에 신중해야 할 여건임을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도 91일물 CP(기업어음 A1등급)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6%포인트 오른 4.94%를 기록하며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윤 연구원은 "11월에 한은 금통위가 연속 빅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외환시장 부담이 크지 않다면 내생변수인 금리는 현재 신용 위험 확산에 더 주목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신체의 모든 장기가 양호해도 혈관 하나가 막혀서 사망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단기 시장 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