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조금준 교수(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산모·태아 치료부장)가 지난달 30일 고대구로병원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슬기로운 의사생활> 보세요. 거기 병원에 상주하는 (주인공) 5인방 다 비(非)인기과잖아요."
지난달 30일, 조금준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율제병원 전문의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 '슬의생'을 두고 던진 말엔 뼈가 있었다. 극중 산부인과 조교수인 김대명을 비롯한 의대 동기 '99즈'가 몸담은 흉부외과, 소아외과, 간담췌외과, 신경외과는 모두 소위 '필수 의료'에 해당한다. 조금준 교수는 산부인과 중에서도 분만을 주로 담당하는 '산과' 의사다. 지금은 의대의 '기피 과'지만, 한때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1958년 산부인과 의원으로 시작해 상급종합병원으로 거듭난 가천대길병원이 좋은 예다.
고려대에서 산부인과 전공의를 거친 조 교수는 2009년부터 고대구로병원에서 산과 펠로우(전임의)로 일했다. 실습 때부터 새 생명이 태어나는 현장이 왠지 좋았다. 그가 진로를 정할 때만 해도 산부인과는 '의외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때는 (산부인과에 가려면) 경쟁을 해야 했어요. 오히려 그때 비인기과들이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과가 되었으니 (상황이) 완전히 바뀐 거죠." 이같은 격세지감은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된 한국의 '저출생'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2000년 64만 명 정도였던 연간 출생아는 2010년 47만으로 줄었고, 2020년에는 27만 명대로 가파르게 꺾였다.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1980년 2.8명에서 1990년 1.5명, 2005년 1.1명으로 떨어진 데 이어 2020년엔 0.84명으로 급락했다. 올 3분기 기준으로는 '0.79명'이다.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조금준 교수는 '분만인프라 붕괴위기'에 대해 "가장 좋은 건 분만건수가 느는 것이지만, 그건 산부인과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이 문제를 시장논리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대구로병원 제공신생아가 워낙 줄다 보니 대학병원의 치료대상은 '고위험 산모'로 자연히 좁혀졌다. 산후조리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개인병원으로 중심이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역할이 줄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되레 '고령 임신'을 정의하는 기준인
만 35세 이상 산모들은 개원의보다 대학병원을 자발적으로 찾는 비중이 높다. 개인병원에서도 '문제가 있는 산모'들에겐 대학병원 진료를 권한다.
조 교수는 작년 기준 35세 이상 산모가 전체 35.0%(35~39세 29.3%·40세 이상 5.7%)에 달한다는 출생통계를 놓고 "(체감 상) 서른다섯을 넘긴 산모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실제로 마흔이 넘는 임산부도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물론 '옛날 35세'와 '지금 35세'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결혼이 늦어진 만큼 본인 관리를 굉장히 열심히 하시기도 하고요. (산모의) 고령화 자체는 어쩔 수 없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당뇨나 고혈압 등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임신할 가능성이 많아지거든요. 그만큼 합병증 확률이 높아지는 부분도 있는 거고요. 근종도 많아질 수 있는데 그럼 임신도 어렵지만, 되더라도 유지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죠." 그는 최근 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토대로 연령에 따른 임신 합병증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항목은 임신성 당뇨, 임신성 고혈압, 산후 출혈 등이다.
"이런 질병은 연령에 따라 (발생 확률이) 쭉 높아져요. 일단 30대 후반, 40을 넘기면 산모들 스스로가 '내가 무슨 자연분만이냐' 등의 얘기를 먼저 많이 하세요. 분만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분만하고 나서 회복도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의사 입장에서는 산모들을 설득해서 자연분만을 시도했는데 진행이 잘 안된다거나 어떤 일로 수술을 하게 되면 (얘기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도 생기죠. 이런 게 35세 이상 고령 산모에서 제왕절개율이 높은 중요한 원인이에요." 고위험 및 다문화가정 임신·출산지원, 미혼모 및 청소년 산모지원 등 산모 진료에 힘쓴 공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표창을 받은 조금준 교수는 정부가 이들의 관점에서 실제 필요한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대구로병원 제공난임으로 인한 시험관 시술 등도 증가세다. 쌍둥이 같은 '다태아'의 비율이 올라간 이유다. 지난해 태어난 다태아는 약 1만 4천 명으로 전년도보다 800명 많다. 총 출생아 중 비중은 5.4%로 10년 전(2.9%)보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조 교수는 "(전체 출생아가) 26만이라 해도 쌍둥이가 많다 보니 산모의 숫자는 훨씬 더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결혼·출산이 기본값이었던 사회 풍토가 변하다 보니 의료 인프라도 달라진 수요를 좇고 있다. 품이 많이 들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과(科)보다는 피부과·성형외과 등 '돈벌이'가 되는 미용 중심으로 전공의가 몰린다. 지난 7월 말 근무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은 이 불균형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극소수 인원에 의존해 위태롭게 돌아가는 '24시간'은 산부인과도 예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부인과는 필수의료 7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비뇨의학과·신경외과) 중 전문의의 평균연령이 53세로 외과와 함께 가장 높았다. 30대 이하 비율은 12.78%에 그친 반면 50대·60대는 34.66%, 26.75%나 됐다.
고대구로병원은 다행히 산부인과 전공의가 충원된 상태지만, 산과 전임의는 없다고 했다.
"매년 절대적으로 산과 의사가 줄고 있고, 저희 병원도 전공의는 매년 차지만 산과를 안 해요. 산부인과 내에서도 부인과 전임의는 있지만 산과 전임의는 없어요. 결국 해가 지날수록 산모를 진료할 전문의가 줄어든다는 얘기죠." 조 교수에겐 저녁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는 '깊은 수면'이 낯설다. 그는 "(밤) 10시나 11시에 자다 일어났을 때 (오전) 6시였던 적이 별로 없다"며 "완전히 숙취로 뻗는 게 아니라면 (새벽) 2시쯤 한 번 깨서 핸드폰을 보고 놓친 게 없는지 살핀다"고 했다.
언제 분만 등 긴급상황이 생길지 몰라 '온콜'(On Call·긴급대기) 당직은 조 교수에게 일상이 됐다. 빠른 카톡 확인은 필수다.
"어제도 제가 다른 병원 교수님들과 모임을 했는데, 한 교수님은 한 달에 네 번인가 다섯 번 병원에서 자는 당직을 선다는 거예요.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낮에 근무하고 밤에도 원내에서 자고…예를 들면 응급의학과 같은 경우는 당직 선 이튿날 무조건 100% '오프'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밤에 나와서 뭘 해도 다음 날 똑같이 근무하는 거죠. 산과 교수들 대부분이 이런 업무 과중인데 어떻게든 '쥐어짜서' 가고 있는 게 굉장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조 교수는 이날 기자와 만난 지 30분도 채 안 돼 '콜'을 받고 분만실로 뛰어나가야 했다. 돌아온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개인병원에서 이송돼 격리 중이었던 코로나19 확진 산모라고 했다.
"아까도 (인터뷰) 오기 전에 (자궁 문이) 한 40% 열렸었는데, 그래도 두 번째(아이)여서 빨리 나왔어요. 35세 미만이라 원래 위험군은 아닌데 코로나에 걸렸으니까…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진료를 시작한 고대구로병원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 고대구로병원 제공방역당국은 임신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시 같은 연령대 비(非)임신 여성에 비해 중증 진행위험이 훨씬 높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조 교수는 질병관리청이 주최한 예방접종 관련 설명회에 참석해 임신부의 백신 접종을 적극 독려하기도 했다. 당시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메일까지 받았다. 스스로를 가리켜 '백신 오(5)적'이라는 농을 던졌지만 지금도 전문가로서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산모들의 접종률이 굉장히 낮아요. 제일 많이 (코로나19에) 걸리기도 했고…코로나 자체가 임신부한테는 상당한 고위험인 데다 진료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확진 산모는 이중으로 치료가 힘들죠. 코로나 전담병원이라 해도 분만실이 없으면 갈 수가 없는 거고요." 조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원년인 2020년 봄 진료를 시작한 원내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의 산모·태아치료부장도 맡고 있다. 복지부는 임신·출산 중 임산부와 태아에게 발생 가능한 건강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고위험 산모를 전담 치료하는 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합병증이 수반된 고위험 분만 및 산모 치료, 신생아 기형수술 등 고도의 의료행위를 전문적·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다.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급 어린이병원으로 신생아집중치료실 20병상 이상, 연간 분만실적이 100건 이상 되는 병원이 사업대상에 해당된다. 정부는 인구 수, 생활권역을 기준으로 전국을 15개 권역으로 나눠 총 20곳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현 19개소).
자궁경부 무력증으로 내원해 수술로 아기를 낳은 환자 등 매일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며 마주한 산모들의 얼굴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때 겪는 고충도 가까이서 목도했다. 힘겹게 아기를 품에 안고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사연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여기 지지기반이 없고, (부부 중) 어느 한쪽이 무너져 버리면 완전히 끝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조금준 교수. 고대구로병원 제공앞서 조 교수는 지난 2014년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토대로 국회입법조사처와 결혼이민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한 논문을 펴내기도 했다. 이들이 한국 생활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말한 '언어 장벽'은 의료이용의 허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산모들이 비교적 젊다 보니 물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온전한 진료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대체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나라 출신인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국내에서 영유아 때부터 맞히는 각종 접종도 미비한 사례가 많다. 지원의 필요성은 누구보다 느끼지만, 섣부른 접근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도 느꼈다.
"예전에 다문화 가정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 접종하는 사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역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당사자들도 '우리는 취약계층이라 해주는 거구나'라고 받아들이니 아이들은 오히려 상처를 받더라고요."
장애인 산모, 10대 미혼모 등 관리 사각지대가 되기 쉬운 이들에 대해서도 보다 '세심한' 맞춤형 지원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지원정책이 형식적 '생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들의 필요를 정부가 꼼꼼히 경청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또 아직도
10대 산모를 '사고 친 애'로 바라보는 부모와 사회의 색안경을 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방으로 갈수록 병원 한 곳의 역할은 더 커진다. 비수도권 한 지자체에선 병원 근처 숙소에 관할 고위험 산모들을 함께 임시 입주시키는 사례까지 있었다고도 했다.
"그 지역의 분만이 한 달에 5~6건이라 해보죠. 그럼 정부나 지자체에서 평가할 때 '우리가 5명 때문에 수억을 써야 돼?'라고 생각하는데, 돌려 생각하면 '그랬으니 그나마 5명을 지킬 수 있었'던 거거든요. 몇 년 지나 지방에다가 '돈을 엄청 줄 테니 산부인과 의사 하세요'라고 하면 다들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워낙 (그 지역의) 산모 수가 적다 보니 목소리를 못 내는 거지, 분만병원이 한 곳 사라지면 그쪽은 (인프라가) 다 망가지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해요."조 교수는 이같은 위기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건 분만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그건 산부인과 의사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
적어도 산모가 있을 때 (안전)분만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시장 논리로 '환자가 없으면 접는 거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정부에 제안한 '분만수가 연동제'와 관련해선 "유지비도 안 나오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대책) 예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난임 치료' 지원 확대에 공감하면서도 좀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 성급하게 난임을 의심하기보다는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차분한 치료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