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서울시 시유지에 자리한 '밥퍼' 건물 모습. 뒤로는 초고층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허지원 기자하루에 수백명이 찾는 무료 급식소 '밥퍼'가 당장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 동대문구는 현재 밥퍼 건물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전부 철거하지 않는 이상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은 "서울시가 지은 건물이고 증축도 전임 동대문구청장의 제안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밥퍼 건물은 14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길거리에서 무의탁 독거노인 등에게 무료로 배식하던 밥퍼에 현재 쓰고 있는 건물을 지어준 건 서울시였다. 그런데 당시 토지 사용이나 건축 허가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민간에 맡긴 복지를 뒤늦게 법적 테두리 안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취약계층은 소외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동대문구청은 지난 16일 다일복지재단에 무단 증축으로 인한 이행강제금 2억 8300만 원을 부과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의견 제출 기한은 오는 27일로, 그때까지 의견을 제출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앞서 구청은 10월 4일과 11월 15일 2차례 건축물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구청 관계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 지켜줘야 하는 건축법상 내용을 본인들이 이행하겠다고 건축 허가 신청을 했는데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려도 무시하면 방법은 이행강제금 부과 혹은 강제 철거인데, 강제 철거할 수는 없어 이행강제금 부과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밥퍼 건물 무단 증축을 둘러싼 논란이 촉발된 시점은 지난해 12월이었다.
밥퍼는 1988년부터 길거리에서 활동하다가 서울시가 2002년 처음 가건물을 세워주고, 2008년 시유지(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553, 554번지)에 지은 가건물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무료급식사업 밥퍼나눔운동(밥퍼) 본부 모습. 연합뉴스재단 측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유덕열 전 동대문구청장은 "바깥에서 줄 서고 고생하는 분들이 건물 안에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서 건물 증축 제안을 했다. 밥퍼 건물 옆 컨테이너를 쓰는 동대문구 해병전우회와 협의해 공간을 만든 이도 유 전 구청장이었다고 한다.
다일복지재단 최일도 이사장은 "유 전 구청장이 건축 허가권자로서 자기 임기가 끝나기 전에 건물을 짓게 해주겠다고 했다"며 "새로 짓는 거면 시에서 토지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미 사용하는 곳에 증축하는 거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서울시가 무단 증축으로 재단을 고발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밥퍼가 그동안 따로 토지 사용 허가나 건축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행정 공백에서 비롯된 문제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재에 나서며 서울시는 기부채납 형식으로 토지 사용을 승낙하고,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
이어 재단은 지난 6월 30일 동대문구청으로부터 노유자시설(노인복지시설) 신축 허가서를 받았다. 기존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조건이었다.
재단 측은 "유 전 구청장이 이미 짓고 있던 건물을 양성화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 짓고 있던 건물까지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는 식으로 건축 허가를 내줬다"며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과 협의한 결과 서울시가 3년 안에 재건축 예산을 확보해 건물을 지어줄 테니 그동안 기존 건물을 쓰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처음에 건물을 지어준 만큼 재건축도 할 것이란 전제로 건축 허가 신청을 했다는 뜻이다.
재단 측은 이전 구청장 재임 때 이 같은 건물 증축에 관해 협의를 마쳤으나 올해 7월 새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이를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여름 장마 기간 비를 막기 위해 증축물에 지붕을 올리면서 구청은 단속을 시작했다.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지 않은 채 증축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다일복지재단 최홍 사무총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도 서울시가 재건축하기로 논의했는데 시장을 포함해 담당자들이 다 바뀌면서 서울시의 약속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졌다"며 "저희는 행정 책임자들의 안내에 따라 진행했는데 그 책임은 서울시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가건물은 (서울시가) 공사해 밥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건 맞는데 이제 다일복지재단이 기부채납하고 기존 건물과 증축물을 건축법에 맞게끔 수정해서 건축 허가받는 걸 전제로 토지 사용을 승낙했다"며 "먼저 기존 건축물부터 다 철거하는 조건으로 구청에서 허가받은 점은 나중에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재단으로부터) 서울시가 재건축을 해달라는 건의를 받아 '하려면 최소 3년은 걸린다'고 답했지만 어렵다고 계속 얘기했다"며 "건물을 지으려면 행정 절차가 있는데 밥퍼 건물로 예산 확보도 어렵고 입찰 공고를 통해 밥퍼에 위탁을 줄 수 있다고 장담 못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재단이 건축물을 합법적으로 지어 기부채납만 받으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서울시가 지은 건물이라는 책임은 남는다. 이에 동대문구청은 서울시에도 밥퍼 건물 본관에 대해 이행강제금 부과를 예고 통지했다고 밝혔다.
구청과 서울시가 법적 논쟁을 하는 사이, 건물을 당장 철거했을 때 밥퍼를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필형 현 동대문구청장은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밥퍼 이용자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만들어진 지역공동체를 없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 동대문구청은 "타지역 주민들이 밥퍼를 많이 이용하는데 각 지자체 복지관에서 맡아주면 될 일"이라며 "지역공동체 유지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안전과 다른 주민의 재산권 행사가 보장되는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구청장이 재단 측의 면담 요청에 답하지 않고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선 "구청장은 불법이 해소되면 면담에 응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지금으로선 이행강제금을 매년 부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