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 배우 김고은.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최근 종영한 '작은 아씨들'을 비롯해 '유미의 세포들' '도깨비' 등 드라마는 물론 영화 '은교' '차이나타운' 등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만의 색으로 캐릭터를 채울 줄 아는 배우가 김고은이다. 그런 김고은이 3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 '영웅'을 통해 이전과는 또 다른 '김고은의 색'으로 설희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첫 도전한 뮤지컬 영화에서 김고은은 연기는 물론 노래에 감정을 실어 독립군 정보원 설희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 연출자인 윤제균 감독은 "디렉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매 순간 놀라운 연기와 노래를 보여줬다"며 김고은의 연기를 극찬했다.
김고은이 그린 설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국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체는 물론 내면에 간직한 분노를 감춘 채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게 가슴 깊이 간직했던 내면을 마지막에 이르러 폭발시키기까지 김고은은 설희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진심 어린 모습으로 완성했다.
지난 9일 화상으로 만난 김고은은 이러한 설희의 감정선을 다양한 수단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잘 만든 뮤지컬 영화를 향한 소망
'영웅'과 김고은의 출연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난 2009년 초연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뮤지컬 장르에 도전한 김고은은 뮤지컬 영화가 개봉하면 바로 찾아볼 정도로 뮤지컬 영화의 팬이기도 하다.
그는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잘 만든 뮤지컬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영웅'을 제의받고 반가웠다고 이야기했다.
또 하나, 김고은이 스크린 복귀작으로 '영웅'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 "뮤지컬을 봤을 때 웅장해지는 기분과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느끼는 지점이 컸던 거 같다"며 "또 그 시대를 연기해 본 적이 없어서 그 시대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고 말했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김고은이 연기한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는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뒤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군의 정보원이 될 것을 자처한다. 신분을 숨긴 채 일본인으로 위장해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한 설희는 그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토의 계획을 알게 된 후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들에게 정보를 타전한다.
이처럼 복수를 위해 정체를 숨긴 채 원수에게 접근해야 했던 설희의 매력으로 김고은은 '상반된 모습'을 꼽았다. 그는 "내면에는 폭발적인 감정이 있는 인물이지만 겉으로는 그것을 감추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평정을 유지하는 상반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반된 감정이 설희를 표현하는 데 가장 힘든 지점이기도 했다. 김고은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선이 아니라 굉장히 극단적인 감정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표현이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화 '영웅' 비하인드 스틸컷. CJ ENM 제공 스트레스와 눈물 이겨내며 완성한 설희의 넘버
감정 표현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김고은에게 도전이었던 부분은 바로 '노래'다. 뮤지컬 영화인 만큼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 이상으로 가사에 감정을 실어 전달하는 것이 과제였다.
특히 윤제균 감독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시도된 바 없는, 촬영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하고 무려 영화의 70%가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가창 버전으로 담아냈다.
김고은은 "촬영 전에는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라이브에 대한 의사를 표현했는데, 막상 처음 라이브를 해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 해보는 작업이다 보니 감독님과 내가 동시에 느꼈다. 그때 감독님과 함께 이 어려운 작업을 잘해 나가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
결의는 다졌지만,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잘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스트레스도 컸다. 그래서 연습실을 빌려 연습에 매진했고, 한예종 동기이자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성철과 이상이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둘도 참 바쁜데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맞출 테니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빌고, 울고, '나 어떡하냐'며 신세 한탄도 하고, 연습실에 끌고 가서 앞에서 노래 부르다가 답답해서 울고….(웃음) 두 사람이 없었으면 이겨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나라사랑 동기사랑!"(웃음) 그렇게 노력한 결과 김고은은 완벽하게 설희를 노래로도 표현해냈고, 윤제균 감독의 극찬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뮤지컬은) 쉽게 도전을 할 수 없는 분야인 거 같다. 너무나 많은 훈련과 자기 절제가 크게 필요하다. 무대에 서서 라이브로 그 모든 노래를 한다는 게 상상도 안 될 스트레스인 거 같다. 지금이 참 행복하다"며 웃었다. 분명 힘들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영웅'은 '힐링'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영화 '영웅'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 배우 김고은. CJ ENM 제공 민족의 자긍심 느끼게 해 준 '영웅'
안중근 의사의 거사 100주년을 맞이해 제작된 뮤지컬 '영웅'은 2009년 초연 이후 한국뮤지컬대상을 비롯한 뮤지컬 시상식을 휩쓸며 단일 작품으로는 최다 수상을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영화 '영웅'은 첫 영상화 작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김고은은 영화 '영웅'만이 갖는 차별점으로 '디테일'을 들었다. 그는 "인간의 면면을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거 같다"며 "안중근 의사가 정말 저 때 저 표정이었을 거 같은 그 미세한 표정들, 감정의 변화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영화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영웅' 비하인드 스틸컷. CJ ENM 제공
이처럼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체험한 김고은은 '영웅'을 찍으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느꼈고, 이러한 감정을 관객들도 함께 경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의 역사를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해주는 영화인 거 같아요. 안중근 의사나 독립군들이 정말 의인이었기에 의인이었던 게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고 두려움도 똑같이 느꼈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나라를 지켜냈다는 것에 대해서 민족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해줬죠." 마지막으로 김고은은 웅장한 사운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꼭 극장에서 관람해 달라고 당부하며 휴지를 꼭 챙겨야 한다고 했다. 특히 나문희가 연기한 조마리아 여사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속절없이 흐르게 될 눈물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지를 안 들고 가면, 슬픈 영화를 보다가 당황스럽단 말이죠. 막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 눈물 콧물을 닦다 보면 영화에 몰입해야 하다가도 빠져나오게 되니까요. 혹시 모르 휴지 정도는 챙겨가는 게 '영웅'을 잘 관람할 수 있는 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