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웅' 안중근 의사 역 배우 정성화.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지난 2009년 초연 후 무대에서 안중근 의사 역으로 큰 울림을 안겼던 오리지널 캐스트 정성화는 스크린에서도 진정성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로 옮겨온 정성화의 안중근은 더욱 깊어지고 섬세해졌다.
뮤지컬의 영상화를 오랫동안 바라왔지만, 자신이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없었다. 그러나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 역에 정성화 배우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그는 이를 연기와 노래로 입증했다. 왜 영화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정성화여야 했는지는 클로즈업으로 비춘 그의 얼굴과 눈빛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성화에게서 무대와 스크린을 모두 오가며 만난 안중근 의사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영화로 재탄생한 '영웅'의 매력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온 '영웅'…"꿈이 이뤄졌다"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발성과 정확한 가사 전달력으로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도 '영웅'의 안중근은 정성화가 적역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기에 영화 '영웅'에서도 그가 안중근 역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크린에서 모습을 드러낼 그를 기대하고 또 기다려왔다.
자신의 캐스팅에 앞서 정성화는 뮤지컬 '영웅'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꿈이 이뤄졌다며 기뻐했다. 그는 "창작 뮤지컬, 특히 작품 롱런하는 창작 뮤지컬을 하는 배우들과 제작사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은 작품의 영상화"라며 "왜냐하면 작품이 확장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대에서처럼 영화에서도 그가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적었다. 뮤지컬계에서는 '맨 오브 라만차' 속 돈키호테,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킹키부츠'의 롤라 등 굵직한 역을 맡으며 입지를 다져왔지만 영화계에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정성화에게 윤제균 감독의 부름이 있었고, 그는 14kg을 감량하며 역할에 대한 열의를 나타냈다.
14년을 무대 위에서 안중근으로 살아왔지만, '영화'라는 플랫폼에서 안중근을 연기하는 건 처음인 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그는 "영화 작업을 꽤 해오면서 영화 연기를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뮤지컬 연기를 하게 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그래서 치열하게 준비도 하고 현장에서도 노력했다"고 말했다.
바라왔던 소망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졌기에 더욱더 치열했다. 정성화는 "'뮤지컬 영화'하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품고 있는 선입견이 있다. 갑자기 노래하고, 지나가던 사람이 춤추기 시작한다는 그런 선입견을 반드시 깨야 한다는 게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숙제였다"며 "그렇기에 사람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게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영웅' 비하인드 스틸컷. CJ ENM 제공 카메라 앞에서 진실해진 '영웅'의 시간
정성화의 말처럼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장르인 뮤지컬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넘는 게 필수였다. 영화는 진입장벽인 갑작스러운 장르 전환의 충격을 상쇄할 방법으로 현장 라이브를 선택했고, 정성화 역시 이 점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는 스튜디오 녹음이 불가피한 분량을 제외하고 무려 영화의 70%가 현장에서 녹음된 라이브 가창 버전이 담겼다. 현장에서 테이크도 여러 번 갔다. 특히 솔로 넘버인 '십자가 앞에서' 장면의 경우 7번가량 불렀다. 테이크를 반복한 건 바로 '감정'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에서의 노래를 어떻게 하면 대사처럼 들리게 할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관건이었어요. 노래에 감정이 충실하게 담겨 있어야 하고 대사를 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노래해야 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했죠.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영화는 카메라 앞에서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들키거든요."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뮤지컬과 달리 영화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등 세밀한 감정과 움직임까지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영화 현장에서 배우고 경험한 연기는 무대로 돌아가 안중근을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정성화는 "넘버로 줄 수 있는 디테일이 굉장히 깊어졌다. 진짜 훌륭한 건 항상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 버전의 '영웅'에서 마음에 드는 넘버로 '내 마음 왜 이럴까'(설희/김고은) '장부가' '단지동맹'을 꼽았다.
"설희가 기차에서 죽기 전에 부르는 '내 마음 왜 이럴까'는 너무 잘 불렀어요. '마스터피스'예요. 배우가 가진 감정으로 표현하는데, 그게 뮤지컬과 너무나 달라요. '장부가'도 공연에서 하면 막연히 크게 부르는데, 영화에서는 크게 부르지도 않는 데다가 배우의 감정적 에너지가 고스란히 크게 느껴지다 보니 다르게 다가오죠. 나문희 선생님을 예로 들면, 뮤지컬 영화에서만큼 노래의 상위 개념이 바로 연기와 진실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영화 '영웅' 안중근 의사 역 배우 정성화. CJ ENM 제공14년 안중근으로 무대 오른 정성화에게 '안중근'이란
정성화의 뮤지컬 연기 인생에서 '영웅'는 결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무대에서 그리고 이제는 스크린에서까지 안중근 의사의 삶을 살아오고 공부한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할 때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집중하는 건 그 분이 이토를 쏘고 난 후의 의연한 삶이었어요. 그분이 쓴 '동양평화론'과 여러 유묵, 감옥 안에서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엄청나게 많은 일 등 그분의 철학과 사상이 저에겐 가장 인상 깊었어요."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자결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단순히 이토를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서구 열강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제대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안 의사의 목표는 사실 재판이었다. 재판을 잘 진행하기 위해 안 의사는 끝까지 의연하게 있었던 것이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은 넘버 '누가 죄인인가'를 통해서도 이야기된다.
영화 '영웅' 스틸컷. CJ ENM 제공또한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를 '좋은 리더'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가 '영웅'의 중심인 만큼 자신 역시 작품에서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 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중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자만하는 것보다 더한 외톨이는 없다)를 들며 "마치 안중근 의사가 내게 '네가 내 역할을 했다고 잘난 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다른 때보다 정성화에게 특별한 해일 것이다. 뮤지컬 '영웅'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동시에 영화 '영웅' 개봉과 함께 영화관에서도 관객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꼭 극장에서 '영웅'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받은 감동을 극장에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영웅'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