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18민주묘지. 연합뉴스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 용어를 삭제한 채 고시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인 지역 교육계도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관련 교육단체들은 진보·보수 성향에 따라 이 사안에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청들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진보성향 단체들 "하루빨리 5·18 복원하라"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경기지부 박도현 사무처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교육부가 개정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 용어를 삭제한 것에 대해 "하루빨리 2022 교육과정을 원래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사무처장은 "5·18민주화운동을 교육에서 다루는 건 아이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이를 삭제했다는 건 그동안 민주주의 역사와 정의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인천지부 김대환 준비위원장도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인천의 5·3항쟁, 부산과 마산의 부마항쟁 등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한 전국의 움직임을 포괄하자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미 그 의미와 의의를 인정받은 5·18 민주화운동을 교육과정에서 제외하는 건 그동안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교육부의 이번 행태에 대한 대응을 여러모로 검토하고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보수성향 단체들 "교육과정 정책연구진 판단 존중"
보수성향의 단체들은 대체로 이번 교육부의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특정 단어를 교육과정에 반드시 넣거나 빼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이 5·18을 교육과정에 표기하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4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광주ㆍ전남 지역 국회의원들이 교육부가 고시한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 용어 삭제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경기·인천교육청 "민감한 사안, 논의 아직 안 해" 침묵
경기도교육청과 인천시교육청은 이번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논란이 교육계를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자 '입장을 내고 비난을 받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인천시교육청 황보근석 대변인은 "이번 교육부의 개정 교육과정 고시로 인천시교육청이 추진하던 동아시아 민주시민 교육 등 민주화 관련 교육도 변화가 예상된다"면서도 "어떻게 대응할지는 논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현재 언론과 정치권, 교육부가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며 "경기도교육청이 이런 민감한 사안에 입장을 밝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5·18' 삭제…당사자·정치권 '부글부글'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022 개정 교육과정' 중 사회과목을 고시하면서 이전 교육과정에서 7차례 명시했던 '5·18 민주화운동' 용어를 명시하지 않았다. 즉 교육부가 사회과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4·19혁명에서 6월 항쟁까지 이어진 '민주화운동' 과정을 서술하는 항목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뺐다.
이를 두고 교육부가 '5·18 민주화운동' 단어를 일부러 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당사자인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유족회·공로자회 등은 전날 성명을 내 "5·18민주화운동 2022 개정 교육과정 삭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정부에 공식 사과와 교육과정의 5·18민주화운동 내용 복원 및 재발 방안 마련,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약속 이행 등을 촉구했다.
정치권도 비판에 가담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민형배(무소속) 의원은 이번 논란에 대해 "5월 광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만행이자 민주주의의 명백한 뒷걸음질"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같은 교육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정권 입맛에 맞게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급격히 뒤집혔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이재랑 대변인도 논평을 내 "지금껏 윤석열 대통령이 밝혀왔던 5·18에 대한 입장의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일"이라며 "교육과정에서도 지워지는데 (윤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했던)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은 언감생심(焉敢生心·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 아니냐"고 지적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가 4일 오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민주화운동이 제외된 개정 교육과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대통령실·교육부 "5·18 단어는 삭제했지만 내용 지운 건 아니다" 해명
비판이 이어지자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별도 입장을 내 '민주화운동 서술 부분에 따로 적시하지 않았을 뿐 그 내용이 삭제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에도 개정 교육과정을 논의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이 별도 적시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 내용이 사라진 건 아니고, 문제가 된 부분도 문재인 정부 시절 때부터 발생했던 문제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