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올해 3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노동개혁을 꼽았죠. 노동개혁에도 여러 과제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으로 제시한 게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거든요. 정부는 오는 3월부터 정부가 노동조합 회계감사원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작업에 착수할 계획이고요. 올 3분기까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도 구축한다고 합니다.
회계 투명성 강화. 당연히 모든 재정의 영역에서 당위성이 있고, 당연히 가야할 방향이죠. 그런데 다른 경제단체나 이익집단 단위들과 비교했을 때 노조의 회계에만 강한 의무를 들이댈 명분이 있는 것인지. 올해 정부의 핵심 과제로 굳이 '노조의 회계'가 꼽힌 이유는 타당한지. 알고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노동부 담당하는 김민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앵커]
어제 노동부 업무보고, 첫머리에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가 놓였어요.
[기자]
말씀대로 중대재해 근절도, 플랫폼, 재택근무 같은 노동형태 변화도, 또 노동개혁 최대 이슈였던 노동시간 유연화도 아닌 노조 재정 공개가 제1과제입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부패를 공직부패, 기업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꼽고, 더 나아가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앵커]
정부나 여권은 노조 재정 상태에 고양이에 생선 맡긴 꼴, 깜깜이 회계라고 말하거든요. 정말 이 정도로 심각한가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고용노동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기자]
현행 노조법에 안전장치가 있기는 합니다.
노조 규약에 조합비 기타 회계 사항을 꼭 담아라, 재정 장부도 최소 3년은 보존해라, 특히 최소한 6개월에 한번은 노조의 모든 재원과 용도, 경리 상황, 심지어 기부자 성명까지 회계 감사해서 조합원에 공개하라고 규정했어요.
실제로 양대노총은 국고보조금에는 외부 회계감사를 받고 조합비 운영 내역도 조합원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회계심사원 자격 등에 규정이 미비해서 전체 조합비 운영을 노조가 자체 감사하는 관행이 있으니 정부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겠답니다.
[앵커]
안전장치는 있지만 헐겁다, 이해가 가는데, 사실 노조 회계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최근 드러난 뉴스 중에선 못본 것 같거든요.
[기자]
이 모든 대책에 앞서 지금 정부는 노조가 회계 서류를 제대로 갖췄나, 자율점검기간을 줬거든요.
이렇게 정부가 노조 회계에 간섭한 게 이번이 처음인데, 뒤집어 말하면 정부도 노조의 회계 상태를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최근 노조 재정 비리를 고발한 사례가 딱히 터진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근거를 공개하지도 않고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요.
물론 모든 노조가 완전무결하지야 않을 거고 이런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대다수 노조 집행부가 쌈짓돈 쓰듯 돈 쓴다? 더 나가서 3대 부패라고 단정짓는 것, 과장됐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앵커]
그럼에도 정부는 공시시스템을 구축하겠다잖아요. 그럼 모든 노조가 앞으로 재정 회계를 공시해야 하나요?
[기자]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노동부 권기섭 차관도 기자들에게 업무보고 내용을 사전에 알리면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고용노동부 권기섭 차관]
"법적 근거가 강행규정은 아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공시를 하도록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공공부문이라든지부터 해서 먼저 자율적으로 사회적 책임이라든지 요구에 따라서 자율적 공시시스템을 우선은 시행할 예정이고요"
[기자]
하지만 이렇게 정부가 밀어붙이는 그림에서 노조가 여기에 응해줄 가능성도 낮고요.
정부는 공시대상 등을 법 개정안에 담겠다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공시를 의무화한다? 어렵지 않을까요?
[앵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결국 노조가 왜 회계 내용을 감추려고 하냐, 떳떳하면 밝혀야 하는 거 아니냐 싶을 것 같아요.
[기자]
돌이켜보면 지난해 12월에 윤 대통령이 공시시스템 구축하라고 지시할 때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전자공시시스템 다트(DART)에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면 마치 기업은 회계 정보를 다 투명하게 공개하는데 노조는 감추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일단 이런 비교 자체가 노조가 뭔지 모른다, 더 정확하게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얘기라고 봅니다.
[앵커]
왜죠?
[기자]
기업은 일반 시민 모두에게 회계와 재정 상태를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시민들도 투자자, 채권자로 회사 운영에 관련을 맺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애초에 노조는 노동자 조합원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조직입니다. 조합원에게는 당연히 회계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하지만, 조합 밖 일반 시민에게 회계 정보를 공개할 의무도 필요도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정부 등이 노조가 자유롭게 활동할 권리를 제한하거나 간섭하면 안된다,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에요.
그리고 다트와 비교해봐도요. 기업 규모가 작다, 유한책임회사다, 해서 전체 기업의 1% 수준만 공시 대상입니다.
이 요건에 그대로 노조를 넣으면 싹 다 빠집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본부 차원에서 봐도 빠져요.
그래서 노동계는 이럴 거면 아예 전국 모든 단체 재정을 다 공시하라고 반박합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얘기를 들어보시죠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이왕 할 거면 경제단체 또 중소기업들도 많잖아요. 회계 감독 안 받는 우리나라 모든 단체에 대해서 성역 없이 집행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공정과 법과 원칙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정부가 이런 사실을 잘 알텐데, 그럼에도 노조 회계를 문제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자]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을 추진하기에 앞서 노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보수층 결집을 노리는 전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입니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
"보수층을 결집하고 이런 측면에서 때리기가 좋은 먹잇감으로 생각을 하고 실제로 그만큼의 효과를 봤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기자]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결국 노조의 자주성, 독립성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시한다면 일반 시민도 노조 재정을 다 보도록 문을 여는 거죠. 이 일반 시민 자리에 사업주, 정부를 둬보세요.
정부가 노조 재정을 감시하는 아래 노조 활동을 하라, 이건 어용노조 만들기나 다름 없습니다.
노조의 자주성을 지키면서도 건전한 재정을 꾸리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것,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과제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