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사법부가 역점을 둔 법조일원화 제도.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판·검사, 변호사를 가르는 과거의 제도에서 탈피해 직군 간 벽을 허물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동안 판·검사를 대거 배출했던 특정 고등학교와 대학교 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인력들을 법원에 유입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2018~2022년) 임용된 경력 법관들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당초 도입 취지가 무색할 만큼 천편일률적이었다. 출신대학과 고등학교는 여전히 특정 학교들이 강세를 보였고, 6대 대형 로펌이 사법연수원을 대신하다시피 하는 상황이다.
SKY 출신 전체의 60%…김앤장은 5년간 독주
법조일원화 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엇보다 '다양성'에 있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젊은 법조인을 바로 법관에 임용했던 과거 제도와 대척점에 선 제도다.
25일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임용된 법관 574명 중 특목고(외국어고등학교·민족사관고·과학고 등) 출신은 111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특정 대학의 입김은 더 강했다. 서울대 출신은 188명, 고려대 102명, 연세대 57명 순이었다. 일명 'SKY'로 불리는 3개 대학 출신 경력 법관은 347명으로 전체의 60%에 육박했다.
경력 법관들의 출신 로펌 역시 편중 현상을 보였다. 국내 6대 로펌(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출신 경력 법관은 전체의 25%(148명)이었고, 이중 김앤장 출신만 60명이었다. '사법연수원 출신은 전관(前官), 경력법관은 후관(後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마냥 우스갯소리로 들을 수 없는 지점이다. 일부 대형 로펌에서는 경력 법관으로 보낼 인력들에게 사건을 덜 맡기는 등의 방법으로 따로 '관리'를 한다는 말도 법조계에서는 통할 정도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법조일원화가 중점을 둔 것은 이념의 다양성"이라며 "출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블라인드로 올리는 단계까지 특정 로펌 출신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위적으로 특정한 조건의 법조인들을 선발한 것이 아니고, '집단'으로서 선발 과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당초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 달리 법원 입맛에 맞는 인재들로만 뽑게 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만이 상수일까
이같은 편중현상에 대해 법원 안팎에서는 '문제는 있지만 과거 제도보다 낫다'는 인식도 상당하다. 별다른 사회 경험을 쌓지 않고 바로 판단을 내리는 자리를 맡겼던 과거 제도는 법원의 시각을 답습하는 법관들을 양산하는 경향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다만 법관 선발 방식이 소위 계량화 할 수 있는 지필고사에 방점이 찍혀 있는 한 자연스레 기존의 법원 인재상에 맞는 후보들이 선발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법조일원화 제도를 도입한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일찌감치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2017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지금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다보니 지금 7단계 임용절차 중 4단계가 성적위주로 돼 있다"며 "우수한 사람을 법원으로 들이기 위해 성적 이외의 요소를 고려하도록 선발제도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해외사례를 보더라도 지필고사에 무게중심이 쏠린 경우는 많지 않다. 흔히 두가지 다른 사법 체계를 꼽을 때 미국과 독일을 뽑는데, 두 국가 모두 법원에서 직접 법관을 선발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미국은 크게 선거와 임명, 두가지 방식으로 법관을 선발한다. 지방법원 판사는 주지사가, 연방 판사는 잘 알려진대로 대통령이 지명해 연방의회와 주의회의 승인을 거친다. 독일은 상원·하원에서 투표로 법관을 선발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국가 모두 법관 선발에 있어 정성적인 요소를 상당히 반영한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제도를 수혈할 필요는 없지만 법조일원화의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 경력법관 선발 시 정성적인 요소를 더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사회적인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법관 선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오히려) 그 사람의 일생의 경로들을 다 파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