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 StephanRabold 제공 "이번 음반 준비할 때 태어나서 가장 많이 연습했어요."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이 6번째 정규 앨범 '헨델 프로젝트'(도이치그라모폰)로 돌아왔다. 지난 1월 미국에 이어 이달부터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 유럽 투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조성진은 최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앨범과 연주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2021년 가을 무렵부터 팬데믹 이전과 비슷하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 1월에는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와 협연했고 시애틀과 LA에서 리사이틀(독주회)을 했죠. 이달 초부터는 하노버, 도르트문트, 함부르크 등 독일 도시에 이어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져요. 뭔가 살아있는 느낌도 들고 동기 부여되는 일도 많이 경험해서 저는 바쁜 게 좋아요."
이번 앨범에는 1720년 런던에서 처음 출판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2권 중 세 곡을 담았다. 조성진은 "팬데믹 첫 해였던 2020년에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 악보를 많이 사서 이것저것 쳐봤는데 특히 헨델이 와 닿았다. '2022년 쯤에는 헨델을 녹음해보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음먹은 대로 지난해 9월 베를린 지멘스 빌라 등에서 녹음을 마쳤다.
헨델은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꼽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다. 헨델을 선곡한 이유가 뭘까. "아직 바흐를 녹음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바로크 음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터라 지적이고 복잡한 바흐의 악보보다 좀 더 멜로딕한 헨델이 다가가기 쉬웠는데 막상 연습해보니 헨델도 만만치 않았죠." 조성진은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 태어나서 가장 많은 연습을 했다. 지난해 2월, 투어가 취소돼 한 달간 집에 있었을 땐 하루에 7~8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은 2번 F장조 HWV 427·8번 F단조 HWV 433·5번 E장조 HWV 430 등이다. 조성진은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1권과 2권을 모두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쳐본 다음 그중 제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곡을 골랐다"고 했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연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같은 건반악기이지만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고 피아노는 현을 친다. 강약 조절을 하며 제 방식으로 해석해 연주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는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와 1733년 출판된 헨델 악보집에 있는 'B플랫 장조 사라방드 HWV 440/3'와 빌헬름 켐프 편곡 버전의 '미뉴에트 G 단조'도 들어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스타 연주자로 발돋움했고 지금은 거장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연주자로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좋은 음악인과 좋은 커리어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좋은 음악인이 좋은 커리어를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요즘은 유명세를 떠나 마음이 맞는 사람과 연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연주할 때마다 팬덤을 몰고 다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마흔 전에는 바흐 평균율 전곡과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조성진은 언제 가장 행복감을 느낄까. "투어 마치고 집에서 쉴 때 가장 행복해요. 집 밖에 나가기 보다는 새로운 악보 사서 배우는 걸 좋아해요. 투어하면서 곡을 익히기가 쉽지 않아요. 하루가 30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음악은 클래식을 많이 듣는데 음원보다는 음반을 사서 듣는 편이에요. 다만 비행기 안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해요. 최근에는 넷플렉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재밌게 봤죠."
조성진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 보다는 연주에만 집중하길 원한다. "피아니스트는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관객에게 좋은 음악, 위대한 음악을 선보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연주자로서 투어를 다니다 보면 '내가 쓸모가 있구나' 싶고 레퍼토리를 찾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죠."
요즘 세계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며 K클래식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조성진은 "유럽 음악가보다 뛰어난 한국 음악가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콩쿠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승하면 인지도를 쌓고 연주할 기회를 얻어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등용문이라서 한국인이 콩쿠르에 많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