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 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여당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되고 있다. 황진환 기자파업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가압류를 막고 하청 노동자 등의 교섭권도 보장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날 노조법 개정안은 법안을 반대해온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회의장에서 퇴장한 가운데 야당 주도로 처리됐다.
개정안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노조법 체계 안에서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 권리분쟁까지 쟁의범위가 확대된 점은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손배소 막는 노조법 개정안
지난 2013년 쌍용차노조 천막농성장.노란봉투법 논의는 2013년 쌍용차노조가 회사·경찰에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 후 촉발됐다. 19·20대 국회에서 재계의 반발로 폐기됐던 노란봉투법 논의는,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다시 불이 붙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시한 노동조합·간부·조합원을 대상으로 제기된 손해배상·가압류 소송 실태조사에서 2009년부터 2022년 8월 사이 151건(2752억 원)의 손배 소송이 제기됐고, 30건(246억 원)의 가압류가 신청됐다.
노동부가 실태조사에 참고한 쟁의행위 손배소 대응 시민단체 '손잡고' 운영 사이트에 따르면 노동자가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을 당하면 1심까지 평균 2년 이상이 걸리며 이 기간만큼 선고금액에 이자가 붙어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돈"이 된다.
노조법 개정안은 단체교섭·쟁의행위·노조 활동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돼도 배상 의무자의 귀책 사유·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게 했다. 합법적인 파업까지 탄압·봉쇄하기 위해 사측이 무분별하게 노조에 안겨온 '손배폭탄'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그간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권고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성신여자대학교 권오성 법학과 교수는 "심지어 사용자가 파업에 관여한 노동자에게 손해액 전액을 부담시켜 소송을 제기하고 일부 근로자만 소를 취하하는 대신 노동조합 탈퇴 등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며 "소권 남용 등의 문제가 있어 개정안은 입법적으로 이를 제한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파업만능주의 조장" vs "교섭권 보장되면 파업 줄어"
이에 대해 재계는 '파업만능주의'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한 반면, 노동계는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겨우 첫걸음을 뗐다는 반응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노란봉투법이 개정되면 기업 투자 심리를 악화시켜 국민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며 "원청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쟁 대상으로 삼는 산업현장 파업과 불법이 만연해지고 노사관계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하청 노조의 원청 사업자에 대한 쟁의행위를 허용하고 노동쟁의의 대상을 확대하면 노사 간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고 파업이 만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정부도 경영계의 주장을 쏙 빼닮은 입장을 밝혔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 20일 긴급브리핑까지 열어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민법상 손해배상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이는 피해자가 일일이 과실비율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불법행위자 모두에게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여 피해자 배상을 우선하는 대법원 판례와 충돌한다"라고 주장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날 "노동조합의 불법 행위에 대해 배상 의무자별로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신원 보증인의 배상 책임을 면제시켜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 책임 원칙(손해 연대 배상 책임)을 훼손하고 피해자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노동부가 발표한 손배소·가압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쟁의행위 배경에 기업의 불법행위가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며 "사실상 노동부에서 기업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된다"고 지적했다.
또 윤 활동가는 "노동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발언에서 공통적으로 기업을 '피해자'라고 명명하는데 노사 갈등관계에서 기업을 일방적으로 피해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지금 정부가 노동권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을 반영한다"고 비판했다.
"진짜 주인 원청 나와라" 법 밖에 놓인 하청노동자 위한 노조법 개정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황진환 기자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은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 된 파업 대부분 특수고용 노동자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며 "실질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원청이 계속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에 떠넘기면 하청은 아무 권한이 없다며 원청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쟁의행위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장관이 '일부 대규모 사업장 9곳에 집중된 소송'이라고 밝힌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살펴보면 대부분 하청·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다. 손해배상 청구액 기준 상위 9개 기업 가운데 현대제철(2021년), 대우조선해양(2022년) 등이 최근 낸 소송 대상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하청 노동자가 대상이었다.
환노위 문턱을 넘은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그간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로만 봤던 사용자를 간접고용·특수고용·하청 노동자를 지휘하는 원청까지 넓힌 것이다. 원청으로부터 법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하청 노조나 화물노동자, 일용직으로 분류된 건설노동자, 플랫폼·방송작가 노조 등도 교섭권을 갖게 된다.
한 대변인은 "원청이 명확하게 교섭의 대상자로 규정이 되면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을 할 수 있게 되고 실질적으로 쟁의행위는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치주의 강조'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국회 법 따르는 것이 법치"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을 포함해 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하겠다는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만약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의석의 3분의 2는 차지하지 못해 재의결은 힘들 전망이다.
이에 대해 권오성 교수는 "법치주의 훼손 운운하는데 삼권분립이라는 게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판례의 법리 등을 바꿔낼 수도 있다. 국민의 총의로 국회에서 입법하게 되면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국회의 법에 따라 통치하는게 법치"라고 꼬집었다.
한상진 대변인은 "정부는 14%의 노조 가입 노동자들이 불평등 구조의 핵심이라고 하는데, 나머지 86%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교섭해 쟁취해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많은 부분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고용노동부와 정부, 여당은 개정안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보호하고 다수 미조직 근로자에게 비용을 전가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법안의 내용을 완전히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라며 "이 법이야말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초석이 되는 법이다. 다양한 산업을 그대로 반영한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또 예술인·소상공인까지 모든 일하는 시민에게 노동권이 부여되는 '일하는 시민 기본법' 재정에 정부가 더 힘을 쏟아야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