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하차한 황영웅과 넷플릭스 '피지컬: 100' 포스터. 크레아 스튜디오, 넷플릭스 제공그야말로 눈물 겨운 의리다. 인기 프로그램들이 문제 출연자 감싸기에 급급하다가 '자승자박'에 빠졌다.
잘 나가던 MBN '불타는 트롯맨'은 출연자 황영웅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자, 서혜진 PD가 제작한 '불타는 트롯맨'은 최고 시청률 16.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중심엔 유력한 1위 후보 황영웅이 있었다. 그런데 결승전을 앞두고 상해 전과가 밝혀지는가 하면, 온라인 상에서 학교 폭력(학폭), 데이트 폭력 등 폭로가 잇따랐다.
시청자들은 황영웅 하차를 촉구했다. 수억원 상금 수령 등 가해자의 성공 신화가 미디어로 노출돼 피해자를 두 번 고통스럽게 한단 지적이 일었다.
황영웅 사태는 그렇게 일반적인 출연자 검증 문제로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런데 '불타는 트롯맨' 제작진이 뜻밖의 결단을 내렸다. 황영웅을 결승까지 안고 가기로 한 것. 출연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당시 나온 입장문에 '하차'란 단어는 없었고, 예상대로 황영웅은 지난달 28일 방송에 보란 듯이 등장해 각종 찬사를 받으며 결승 1차전 1위에 올랐다.
제작진은 '폭로 내용과 다른 사실'에 대한 구체적 해명 없이 "제기된 내용에 있어서 서로 다른 사실이 있음도 확인했고,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도 된다. 향후 본 사안과 관련해 면밀히 살펴 올바른 회복이 있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안을 임의대로 판단하면서 황영웅의 출연을 정당화한 셈이다. 가해자 퇴출 대신 잔류를 선택한 제작진이 '올바른 회복' 운운할 상황도 아니었다.
전례 없는 전과자 출연 강행은 당연히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청자들의 여론 악화는 물론이고, 경찰은 2일 접수된 진정서에 따라 황영웅 특혜 의혹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했다.
결국 이날 밤늦게 황영웅이 사과와 함께 하차를 결정하고 나서야 제작진은 움직였다. '황영웅의 의사를 존중'해 하차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며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섣불리 한 사람의 인생을 단정 짓는 것을 우려해 최대한의 신중을 기하고자 했다"고 하차가 늦어진 이유를 전했다. 이미 나간 방송에 타격 받았을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이 황영웅의 입장만이 고려됐다.
여기에 덧붙여 "지난 여름부터 인생을 걸고 구슬땀을 흘려 온 결승 진출자들의 마지막 경연을 정상적으로 마치는 것이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다"며 다른 출연자들까지 황영웅 출연 강행의 이유로 내세웠다.
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인기 프로그램 '피지컬: 100'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연자 3명이 잇따라 논란에 휩싸인 '피지컬: 100'은 같은 날 '무편집'을 결정했다. 황영웅처럼 온라인 상 폭로를 넘어 각종 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에 넘겨진 출연자들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출연자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폭로를 통해 금전 갈취, 폭행 등을 저질렀다며 학폭(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됐고, 또 다른 남성 출연자 B씨는 전 연인에게 자해 협박을 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대표 남성 출연자 C씨 역시 연인에 대한 특수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피지컬: 100'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는 다수의 출연진을 비롯해 화면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제작진과 파트너사 및 수많은 스태프들이 밤낮으로 노력해 제작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의 노고가 깃든 작품이니 만큼, 다른 출연진 및 제작진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 현재로서는 작품을 통째로 편집하는 방향은 지양하려 한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출연자들의 논란에 대한 구체적 해명은 없었다. 각 출연자들이 구설에 오를 때마다 넷플릭스는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내보냈지만 끝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출연자 검증에 문제가 발생하자 좀처럼 책임지지 못하는 형국이다.
두 프로그램 제작진 입장문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인기와 흥행, 제작진 욕심에 포기 못한 '문제 출연자 분량'을 프로그램 참여자의 노력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는 지점, 피해자를 향한 사과가 일체 없는 지점 등이 그렇다.
우연치 않게 이들 프로그램은 현재 모두 공정성 시비가 붙었다. '불타는 트롯맨'은 황영웅 특혜 의혹, '피지컬: 100'은 결승전 재경기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또 다른 공통점은 여기서 발견된다. 프로그램 신뢰에 치명타를 입히는 이들 의혹엔 열심히 반박하다가 출연자 문제만 나오면 구체적 해명이 사라진다. 마치 제작진의 책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인기나 흥행이 모든 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출연자들 논란까지는 단순 검증 문제였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제작진이 '잔류'를 결정한 순간, 또 다른 가해에 적극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불타는 트롯맨'과 '피지컬: 100'은 정도(正道)를 잃어버린 미디어의 유해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충분히 보여줬다.
어찌 됐든 제작진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프로그램의 명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잘못된 판단에 퇴색했다. 쏟아지는 비판과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면서까지 지켜낼 성과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