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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윤석열 대통령의 '주 69시간'과 저출산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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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윤석열 대통령의 '주 69시간'과 저출산 걱정

    야근하는 직장인들. 연합뉴스야근하는 직장인들. 연합뉴스
    '일'이란 무엇일까, '노동'이란 무엇일까. 누군가 이 질문을 던진다면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만큼 '노동'을 단 여섯 글자로 정의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일이 없으면 마음 둘 곳이 없다'라는 뜻이다. 노동·일은 '신성하다'라고 한다. '신성'이란 말엔 단지 노동이 생산과 돈을 벌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라는 뜻이 포함된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면 무료하고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므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방황엔 긍정적 방황과 부정적 방황, 두 개의 큰 방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방황'은 절대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점점 병 들어가는 '방황'이라 할 수 있다. '일'이란 그만큼 삶의 근본에 관한 것이다.
     
    정부가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주 69시간으로 늘리려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급기야 20·30세대의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 69시간 근무제 도입 법안의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그런데 '보완 검토'라는 대통령 지시를 놓고 언론마다 해석이 엇갈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서 박수받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서 박수받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언론은 주 69시간 도입 자체가 문제가 있으니 내용을 수정 보완하라는 지시라 해석하고, 또다른 언론은 69시간제 도입의 취지 설명이 제대로 안됐으니 충분히 설득하라는 보완 지시라 논평한다. 후자의 논평은 한덕수 국무총리 말에 근거한다. 한 총리는 "대통령과 통화했는데 정책 원점 재검토가 아니고 당초 프레임에 하나도 변화가 없다"고 했다.

    다시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돌아가 보자. 노동은 활력을 주는 삶의 근본에 관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노동에 지쳤을 때 그 삶은 피폐해지기에 십상이다. 노동 시간 기준으로 어느 정도, 몇 시간이 '피폐선'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노동시간을 법제화 했다. 장시간 노동이 인간의 삶에 미친 산업사회 시대의 질곡과 인간성 상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경험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주 69시간을 일한다는 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로 계산한다면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1시 퇴근을 반복하는 일이다. 물론 전체 노동시간이 절대 늘지 않는 것이라고 정부는 말한다. 연장근로시간을 일주일 단위가 아닌 한달·석달·여섯달·1년 단위로 합쳐 계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째, 둘째 주에 64시간씩 일 했다면 셋째, 넷째 주엔 40시간만 일하는 방식이란 계산이다.
     
    정부는 전체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안 바쁠 때 길게 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 설명에 시각은 극단적으로 둘로 쪼개진다. 정부와 경영계는 "거봐! 유연한 대응이지"라고 자찬한다. 반면 대다수 근로자·노동자는 "몰아서 일하기! 그게 현장에서 작동할 것 같아. 내 업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란 거야"라고 기함한다. 대한민국에서 몰아치기 할 여건이 되는 직장·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는 걸까.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주 69시간제는 전형적인 검찰 특수부 검사의 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이 있을 때 날 밤 새고 목표·타깃으로 전진하는 검사들의 근무방식 얘기다. 압수수색 하고 자료 분석 하고, 피의자와 참고인 불러 조사할 계획 짜고, 실제 불러 다그쳐야 하는 일들에 적격인 시스템인 것이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심심찮더니 인사 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조차 '전지적 검찰 시점'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에 이르게 된다.
     
    전형적 몰아치기 방식인데 '몰아치기'가 실례되는 단어라면, '물 들어올 때 집중적으로 일하기' 정도로 표현을 완화 할 수 있겠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한 뒤 쉴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고 스타트업 청년들에게 말했다. 뇌피셜 이지만 대통령이 특수부 검사 시절을 떠올리며 한 얘기라 생각된다. 목표와 타깃을 위해 전진하는 직업군이 아니라면 주 120시간, 주 69시간은 '기절초풍 노동'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엊그제 윤 대통령이 새로 구성된 여당 지도와 만찬을 했다. 세계일보는 만찬에서 "대통령 되고 보니까 어느 나라에 무슨 사건이 나도 워낙 세계화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게 우리 경제에 곧바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더라. 관심을 갖고 확인해야 할 일이 전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는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더라"라고 전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안도가 된다. 정책은 다면적·다층적으로 국민 삶과 초연결돼 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주 69시간제가 대한민국 국민의 다양한 삶 가운데 '저출산과 상관관계가 깊지 않은 의제'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하루 12시간씩 초주검으로 일 하고 퇴근하면 권태롭고 피폐한 일상 외에 무슨 삶의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러잖아도 힘든 일상에 출산과 육아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은 또 존재하는 것일까.
     
    무항산무항심. 일이 없으면 마음을 둘 데가 없는 것이 삶의 이치지만, 회사에 죽도록 갈아 넣는 삶 또한 '이치'라 하긴 어렵다. 세상은 뫼비우스 띠처럼 초연결 돼 있다.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으로 우리 금융시장을 걱정하듯, 정부의 노동 시간 개편이 대한민국 소멸위기를 더 부추기지 않을까 염려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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