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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일하고 한달 휴가? '칼퇴'라도 해봤으면…

산업일반

    몰아서 일하고 한달 휴가? '칼퇴'라도 해봤으면…

    尹 정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기' 식 근로시간 개편안 추진
    연차 휴가 인색한 국내 중소기업 현실에 '한달 휴가는 꿈' 비판 잇따라
    "노조 전무한 중소기업에 '노사합의'로 추진한다는 것은 기만" 비판도

    연합뉴스연합뉴스
    "사장이 그렇게 놔두지를 않아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서 두루 근무한 A씨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기'식의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중소기업 현실에 비춰보면 '몰아서 일하기'는 지금도 하고 있어서 충분히 실현가능하지만 '몰아서 쉬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많이 일했으니 이번주는 조금 덜 일하도록 놔둔다고요? 중소기업에서는 그런 거 없어요. 중소기업은 '무조건 출근'하는 거 좋아하고 일이 없어도 출근해야 되고 '칼퇴근'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현재 주 52시간으로 묶여 있는 근로시간제를 주 69시간까지 풀고 초과 근무시간을 모아 '한달살이' 등 장기휴가로 쓸 수 있다는 정부 개편안에 대해 A씨는 "(장기 휴가는커녕) 법으로 보장된 연차 휴가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차 휴가는 집에 급한 일이 있으면 한두번 정도 어렵게 부탁해서 겨우 쓰는 정도"라며 "휴가를 받아도 '일이 있으니 출근하라'고 해서 출근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번은 연초에 회사가 직원들에게 현금 30만원씩을 갑자기 지급했어요. 무슨 돈인지 선배 직원에게 물어보니 회사가 연차 수당(쓰지 못한 연차 휴가를 금전으로 보상하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퇴직한 직원이 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회사가 어쩔 수 없이 지급하는거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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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연차 휴가는 낮설지만 공휴일 출근은 그렇지 않다. A씨는 "회사가 돌아가려면 자재 부서는 쉴 수 없다면서 '빨간날'에도 출근하라고 했다"며 "일요일 아침에 출근해 오후 1,2시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평일에도 A씨에게는 잔업과 야근은 일상이었다. 그는 "시무직이지만 낮에는 생산도 직접 하고 지게차도 몰아야 하고 '까대기'(상하차 작업)도 해야 한다"며 "밤에는 사무실에 돌아와 낮 시간에 처리했어야 할 서류작업을 하느라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는데 퇴근은 저녁 8시, 9시 대중이 없어요"
     
    이렇게 일하고도 A씨는 제대로 된 연장근로 수당이나 연차 수당을 받지 못했다. 각종 수당이 연봉에 다 포함됐다는, 이른바 '포괄임금제' 때문이었다.
     
    고용노동부도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A씨와 같은 '공짜 노동'을 초래하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사례를 적극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정부의 이런 약속을 믿지 못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영세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대구 성서공단노동조합의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은 "사업장 관리 감독 문제가 나올 때마다 고용노동부에서 매번 하는 대답이 '인력 부족'"이라며 "이런 고용노동부가 포괄임금제 위반 사례를 적극 감독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의 새로운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몰아서 일만 하고 쉬지는 못하는 '장시간 근로'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A씨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부서 담당자가 1명씩이고 한사람이 2,3개 부서의 업무를 겸하는 경우도 흔하다"며 "'몰아서 쉬기'를 중소기업이 실현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가능한 '(남성) 육아휴직'도 5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는 실효성이 거의 없는게 현실이에요. 출산 당시 휴가 사나흘이 전부이니 (장기 휴가 같은) 그 외의 것은 바라지도 못하죠"
     
    A씨는 "법에는 돼있는데 왜 안되냐고 회사에 따지면 찍히고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대기업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의 힘'이 있어 회사와 협상이 가능하지만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는 회사와 협상이 불가능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1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8%에 불과하다. 30인 미만 사업장으로 좁히면 노조 조직률은 0.2%로, 노조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새로운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노사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반수 노조나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와 합의를 하겠다는 것인데, 중소기업은 살펴본대로 노조도 없고 노사협의회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용철 노동상담소장은 "노사협의회는 30인 이상 사업장이면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있다"며 "하지만 허위로 노사협의회를 거친 것처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노사합의로 근로시간 개편안을 추진한다는 것은 기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소장은 주52시간 근로제에서도 노동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사측의 편법과 꼼수가 난무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출퇴근 기록카드를 평일용, 주말용 따로 두는 겁니다. 평일 카드에는 주 52시간에 맞게 기록하고, 이를 넘어가는 거는 주말용 카드에 따로 기록하는 식인거죠"
     
    "최근에는 사업장을 아예 5인 이하로 만들어 버리는거에요. 왜냐하면 5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 자체가 안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소기업도 부서별로 외주나 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5인 이하로 쪼개 근로시간 제한을 피해가는거죠"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 출신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소기업의 이런 노동 현실을 모를리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근로시간 개편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 시각이 그만큼 뿌리 깊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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