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로 구속된 이경우(36), 황대한(36), 연지호(30)가 9일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주범 이경우가 황대한과 공모해 범행을 처음 제안했고, 재력가 유모씨와 황모씨 부부가 이를 수락한 뒤 범행 전후에 걸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9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언론브리핑을 열어 최초로 납치·살인 범행을 이경우가 먼저 제안했고, 유씨·황씨 부부가 동의해 이경우에게 범행 자금 명목으로 착수금 등 7천만 원을 지급하는 등 범행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도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유씨 부부는 이번 납치·살인 사건 피해자인 A씨와 2020년 9월쯤 지인의 소개로 알게됐다. A씨의 권유를 받은 유씨 부부는 P코인에 1억 원 상당을 투자하고, P코인 회사에서 홍보 마케팅 업무도 담당해왔다.
하지만 2021년 1월쯤 P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P코인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은 이경우는 유씨 부부를 P코인 시세 하락의 주범이라고 생각해 이들 부부의 금품을 빼앗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이경우는 이번 '납치·살인' 사건의 피해자 A씨를 비롯한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유씨 부부가 묵고 있던 서울 강남구 소재 호텔에 찾아가 감금·폭행한 뒤 가상화폐 4억 원 상당을 빼앗은 바 있다.
이 무렵부터 A씨와 유씨 부부 간에는 소송전이 벌어졌다. 유씨는 A씨의 권유로 P코인에 1억 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었다며 A씨를 상대로 소송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도 2021년 10월 A씨에게 'P코인으로 인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9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최근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더구나 유씨 부부는 앞선 감금 사건의 배후를 A씨라고 생각해 원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이경우는 2021년 9월쯤 황씨를 찾아가 호텔 감금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금전적 어려움을 토로해 황씨로부터 3500만 원을 받았다. 이후 황씨가 이경우를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을 시켜주고, 이경우 또한 유씨 부부가 A씨를 상대로 벌인 민형사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주는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유씨 부부와 친분을 쌓던 이경우는 지난해 6월쯤 대학 동창 사이인 황대한에게 A씨의 직업, 재산과 유씨 부부와의 갈등 관계를 설명하며 범행을 제안했다.
이어 이경우는 지난해 9월쯤 이들 부부에게 'A씨와 A씨의 남편을 납치하고 금품을 빼앗으면 코인을 현금으로 '돈세탁'해달라'며 자신이 먼저 범행을 제안했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제안을 받은 유씨 부부가 "A씨에게 코인이 몇십 억 정도 있을 것이다. 잘 해보자"며 수락했다는 것이 이경우의 진술이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경우가 이들 부부보다 A씨를 먼저 알았고, 2천만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며 "이후 P코인이 폭락하자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후 이들 부부에게 찾아가 도움을 받자 범행을 통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유씨 부부는 이경우에게 착수금 2천만 원 등 총 7천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9월 황씨의 계좌에서 7천만 원이 현금으로 인출된 내역이 확인됐고, 이후 이경우 부인의 계좌에 12월까지 착수금으로 추정되는 현금이 수차례에 나눠 입금됐다.
이경우의 진술에 따르면 범행 이전에는 황씨가 사실상 이경우에게 범행 관련 질문을 하며 범행을 주도했고, 범행 당시와 직후에는 유씨가 주로 이경우와 통화하거나 직접 만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범행 직후 이경우와 유씨는 두 차례에 걸쳐 직접 만났다. 경찰은 범행 당시 이경우와 유씨가 통화를 하고 직접 만난 것을 CCTV 등의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연합뉴스범행 직후인 지난달 30일 오전 1시쯤 경기도 용인 소재 호텔의 한 객실에서 이경우는 유씨를 만났다. 경찰은 이들이 실제 납치·살인을 실행한 황대한에게 전달받은 A씨의 계좌 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계좌를 조회한 뒤 코인을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하자, 황대한과 연지호가 애초 계획한대로 피해자를 살해한 뒤 매장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우는 이날 오후 2시에도 유씨를 다시 만나 황대한, 연지호의 도피자금에 대해 논의했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황대한과 연지호의 도피자금으로 6천만 원을 요구한 이경우에게 "당장은 돈이 없으니 배를 알아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 또한 범행 직후인 지난달 31일 이경우의 아내를 만나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비롯해 소지품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 받았고, 이경우의 아내에게 '휴대폰을 부수라'고 지시하는 등 범행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유씨가 이경우와 범행 당시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 등이 드러났지만, 유씨와 황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 일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부부의 주거지와 차량 등에서 압수한 휴대전화 등에 대해 포렌식을 진행해 분석하고 있다.
전날 구속된 유씨에 이어 현재 황씨에 대한 구속 영장이 신청된 만큼, 경찰은 황씨의 구속 여부까지 살펴본 후 이번 주 초 이들 부부에 대한 신상공개 추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