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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집 무너질 때마다 추억도 타버렸다" 강릉 산불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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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집 무너질 때마다 추억도 타버렸다" 강릉 산불의 상흔

    '강릉 산불' 양양·삼척 등지서 동원된 소방대원들 고군분투
    산불 시작된 내곡동 옆 저동 주민들 '망연자실'
    "꾸준히 그린 그림, 내일 전시회하려 했는데…" 무너진 집 떠나지 못하는 주민
    "무너진 저 집집마다 서린 사연과 추억은 어떻게 복구하겠나" 소방관들조차 눈물
    저동 펜션단지 13개 동 모두 불에 타…키우던 강아지도, 오리도 죽어
    곳곳에 튀는 불씨 직접 끄러 다니느라 머리 타고 멍 든 주민들

    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
    민가를 휩쓴 '강릉 산불'은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주불은 진화됐지만, 주민들은 아직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11일 오후 3시 30분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방문한 강원도 강릉시 저동 펜션단지에서는 소방대원들의 진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불이 시작된 난곡동 바로 옆에 있는 저동 펜션단지의 펜션 13개 동이 전부 불에 탔다. 일부 펜션들은 뼈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린 후였다.
     
    주불은 잡힌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솟구쳐 나와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고, 매캐한 냄새는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20여 명의 소방대원들은 남아있는 불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린 비와 함께 소방대원들의 호스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불씨를 잠재워 나갔다.
     
    큰 불길을 잡고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한 박흥석 삼척소방서장은 "(난곡동에서 이곳까지) 바람을 타고 불씨가 옮겨 와서 이곳이 1시간 만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며 "처음엔 불길이 심각했다. 가스, 기름 탱크가 타면서 회오리 소리가 났고, 냄새는 말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양구소방서에서 지원을 나온 11년 차 차봉택(41) 소방관은 "건물이 1시간 넘게 타고 있었던 것 같고 바람이 엄청나게 강하다"며 "집을 바라보며 떠나지 못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오래 독거노인으로 계시거나 집이 변변치 않은 곳에서 오래 사셨는데도 이렇게 다 타버린 걸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삼척소방서에서 지원왔다는 옥미라(55) 소방관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옥 소방관은 "피해를 얼마나 입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각각의 집들마다 다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고 소중한 것들이지 않냐"며 "주민 한 분이 내일 전시회를 하려고 자신의 화실에 오랫동안 그림을 열심히 그려 모아놓은 그림들이 있다고 하길래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했는데 이미 집안에 화염이 가득 차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화실이 있다는 펜션은 이미 전부 화마가 휩쓸고 간 후였다. 옥 소방관은 "그 주민 분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건너편에서 멀리서 지켜보고 계셔서 더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옥 소방관은 또 "그 옆 펜션 주인분도 자신의 펜션 3채가 다 불에 탔다고 되게 허망해했다"며 "한 군데에만 불이 났으면 바로 불을 끄면 되는데 이렇게 곳곳에 불이 나다 보니 안타깝게도 모든 곳에 대응을 할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집을 다시 짓는다 하더라도 원래의 추억이 있는 그 집은 아니지 않냐, 똑같이 복구를 할 수는 없지 않냐"며 "그런 걸 생각하면 되게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전소된 펜션단지 건너편 주택가에도 불씨가 곳곳에 튀어 일부 주택이 불에 타고 주민들이 다쳤고, 키우던 동물들을 잃었다.
     
    주민 최남순(75)씨는 산불에 놀라 뛰어다니느라 두 차례 넘어졌다며 바지를 걷어 시퍼런 멍이 든 무릎을 보여줬다.
     
    최씨는 "닭 9마리와 오리 5마리를 키웠는데, 오리 한 마리가 죽은 것 같다"며 "아들이 근처에서 펜션을 하는데 아들이 키우던 개 한 마리도 죽었다"고 전했다. 최씨는 아침부터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연신 가슴을 토닥이며 "며느리가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검은 가래가 계속 나온다고 한다"며 걱정을 털어놨다.
     
    다행히 최씨의 주택은 무사했지만, 최씨는 언제 또 불씨가 튈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최씨의 눈밑과 입술, 손톱 주변은 까만 재로 물들어 있었다. 최씨는 세수를 했는데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 김도영(80)씨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루종일 곳곳에 튄 불씨를 끄러 다녔다며, 상의를 벗고 온몸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김씨는 "뒷산에 불이 먼저 붙으면서 바람에 불씨가 날아와 머리카락이 불에 탔다"며 "바람이 너무 세서 저 큰 나무가 완전히 부러지는 걸 봤다"고 말했다.
     
    저동에 사는 친구들이 걱정돼 인근에 있다가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신재현(74)씨와 장헌극(75)씨는 폭삭 주저앉은 주택 한 채를 보여주며 "친구 집인데 전부 불에 타서 친구가 현재 대피소에 가있다"며 "다행히 다른 한 친구 집은 무사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오전 11시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주택 두 채가 그냥 폭삭 주저앉는 걸 봤다"며 "대나무가 아작아작하면서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불길이 4~5미터씩 올라갔다"고 아찔했던 화재 순간을 설명했다.
     
    장씨는 "사람들이 전부 하는 얘기가 이 정도 바람은 처음 봤다는 것"이라며 "칠십 평생 이런 바람은 처음 봤고, 사람이 날아갈 정도니 양간지풍이라고들 하는 데 그것보다 더 세다"고 혀를 내둘렀다. 주불이 잡혔음에도, 주민들은 산불 특성상 언제 다시 불씨가 튈지 모른다며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11일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인근 주택가로 번졌다. 민소운 기자다행히도 산림과 민가를 잿더미로 만들며 확산되던 '강릉 산불'은 강한 비와 잦아든 바람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날 오전 8시 30분쯤 강릉시 난곡동에서 난 산불의 진화율은 오후 4시 30분 기준 100%로 집계됐다.
     
    소방청은 이날 오전 9시 43분을 기해 '대응 3단계'와 '전국 소방 동원령 2호'를 발령했다.
     
    산림당국은 초대형 헬기 등 진화헬기 6대와 진화장비 107대, 인력 1410여명 등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현재까지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는 축구장(0.714㏊) 518배에 달하는 370㏊로 추정된다. 재산 피해는 총 72개 주택과 펜션이 불에 탔으며 주민 529명이 강릉 아이스아레나와 사천 중학교에 각각 대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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