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CBS가 지난 20일 장애인의날부터 오늘까지 '탈시설' 문제를 다룬 '장애인의 고려장' 기획 시리즈를 5편에 걸쳐 이어왔는데요.
'탈시설', 즉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다가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본 김정록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있습니다. 김 기자.
[기자]
네
[앵커]
시설에 있다가 지역사회로 나왔다는 장애인 가정을 만나보셨어요. 만나보니 시설 생활과 사회 생활, 어떻게 다르다고 하던가요?
[기자]
우선 서울 구로구 장애인 지원주택에 사는 중증 발달장애인 서지원씨를 만났습니다.
서씨는 2011년부터 약 10년 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다가, 2020년 5월 시설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서씨는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띄게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우선 시설에서 자유롭게 산책도 못하고 방안에 누워있거나 땅만 쳐다보다가
90도로 굽은 허리가 시설 밖으로 나오고 1주일 만에 꼿꼿히 펴졌습니다.
사람의 눈을 잘 못 마주치던 습관도 고쳐졌고, 같은 공간을 뱅글뱅글 돌던 불안 증세도 사라졌어요.
특히 시설에 있을때 체중이 28kg이었는데 나오고 2주가 지나서 40kg대로 금방 살이 붙었습니다.
서씨 어머니인 임현주씨는 당시 서씨를 '걸신이 들린 것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인서트:임현주]
"지원이가 설렁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맨날 설렁탕 도가니탕 주로 이런 거를 먹였는데 밥을 네공기씩 먹더라고요."
[앵커]
시설에서는 음식이 부족했나봐요?
[기자]
네, 시설에서는 '많이 먹으면 많이 싼다'면서 밥을 적게 주고, 정수기도 치워놨었다고 해요.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모든 탈시설 가정이 이렇게 성공적일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시설에서 몸무게가 28kg이었다가 탈시설 이후 40kg대로 회복한 모습. 임현주씨 제공[기자]
심한 자폐증이 있는 광호씨도 만나봤는데요.
광호씨는 처음보는 사람이 자신의 구역에 들어오면 물건을 집어던질 정도로 공격성이 강합니다.
180cm 가까이 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이라서, 살짝 밀기만 해도 광호씨 어머니가 나가떨어질 정도라 어머니 혼자 돌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정부에서는 활동지원금 210시간 어치와 장애인연금 30만 원을 지원하는데요.
현실적으로 활동지원사를 고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해요.
지금 지원으로 광호씨를 계속 돌보려면 지원사에게 시급 1만 1천 원을 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시급 2만 원은 줘야 한답니다.
결국 광호씨 어머니는 다른 지원사를 추가로 고용하는데만 사비로 월 250만 원씩 내고 있습니다.
광호씨 어머니도 광호씨를 시설이나 정신병원에 넣을까, 고민했다고 해요.
하지만 시설이나 병원에 가면 광호씨가 매일 아침 점심 빼놓치 않고 하는 산책조차 못할 걸 생각하곤 마음을 접었다고 합니다.
[앵커]
아무래도 아직 정부 지원이 충분치 않다보니, 장애인 자립이 쉽지 않겠네요. 그러다보니 탈시설 안된다, 시설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측도 있지 않나요?
[기자]
네, 그분들의 목소리도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닙니다.
일단 현재 정부 지원 수준으로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온전히 생활할 수 없다는 겁니다.
특히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더욱 어렵다는 거죠.
또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사회에 여전한데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홀로 나서면 자칫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설이라는 선택지도 장애의 유형이나 경중에 따라 고려할 수 있는데 탈시설이야말로 장애인의 주거선택권을 좁힌단 지적입니다.
[앵커]
결국 현실적으로 정부 지원이 부족하고, 당장 사회에서 준비가 안됐으니, 시설 거주도 할 수 있도록 두자, 이런 것이네요. 양측 입장이 팽팽한 것 같은데, 지금 정부 정책 방향은 어떤가요?
[기자]
네, 정부는 지난달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추진하겠다고 했는데요.
다만 정부의 장애인 정책을 뜯어보면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좀 거리가 멉니다.
일단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폐지"하라며 강력한 탈시설을 주문하는데요.
이게 이미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합의된 내용입니다.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의 말 들어보시죠.
[인서트:조한진]
"그 얘기 나온게 한 50년 전쯤인데 1970년대부터 그 얘기가 나왔어요. 50년 넘은 얘기에요."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엥커]
이미 50년 전에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았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사실 불과 2년 전엔 정부도 탈시설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이런 해외 사례를 강조했어요.
그런데 올해 정부와 서울시의 장애인 정책 예산을 보면 장애인 시설에 1조 원 넘는 예산을 쓰는데 탈시설에는 100억 원이 채 안되는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활동지원 급여 중 일부를 발달재활이나 의료비, 주택 개조 등에 활용하는 '개인예산제'도 있는데, 정작 예산은 늘리지 않아서 탈시설을 유도하기는 부족합니다.
박원순 시장때부터 있던 서울시 탈시설위원회도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소위원회로 격하되고 회의 소집도 잘 안되는 등 유명무색해졌어요.
[앵커]
그렇군요. 현실적으로 당장 모든 시설을 없애긴 힘들테고, 다만 장기적으로 탈시설 쪽으로 나아가야할 것으로 보이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정부는 지난 정부가 마련한 '탈시설 로드맵'에 따라 장애인 지원주택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탈시설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마음놓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24시간 활동지원 체계 등 정부가 지원을 확대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사회부 김정록 기자였습니다.